오늘도 여지없이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주말엔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데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진다. 이왕 일어났으니 꾸물대지 않고 평일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야채 스무디에 달걀 삶은 거 하나랑 더블린에서 선물 받은 정말 너무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 한잔을 아침으로 먹으며, 알릴레오 북스를 본다. 원래 아침을 먹을 땐 책을 읽는데, 주말이니까 약간의 자유를 준 것이다.
이까지 닦고 거실 소파 쿠션에 등을 대고 얼추 누운 채 책을 읽으려는데 지금의 내 기분이 느껴졌다. 내 기분의 상태가 '좋음'이라는 게 좋았다. 지난 반년 내내 마음 바닥에 깔려 있던 불안과 분노 등이 이제 더는 없었고, 앞으로 점심을 먹을 때까지 재미있게 책만 읽으면 된다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다음 주에 있는 온라인 독서모임 책 <빌러비드>를 어제까지 읽고 오늘은 <작가란 무엇인가 2>에 있는 토니 모리슨 인터뷰를 읽은 뒤 오후엔 다음 주에 써야 할 일본 도쿄의 책동네 '진보초' 관련 에세이를 위해 진보초 관련 책을 읽을 계획이다. 오늘 하루가 나름 평화롭게 책과 함께 지나갈 것이란 얘기.
지난 6개월 동안엔 책도 많이 못 읽었다. 주의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문장을 눈으로는 읽었는데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 다시 앞으로 가기 일쑤였다. 과연 한 번에 몇 십 페이지를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책을 읽다가도 자꾸 뉴스를 검색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고 세상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봐야 할 것 같았기에. 이건 분명 세상 탓이야,라고 하며 책 읽기에서 자꾸 멀어지는 나를 속으로 많이 꾸짖기도 했다. 다 핑계야, 읽으려면 읽지 왜 못 읽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얼른 다시 책으로 돌아가, 너 이렇게 책을 안 읽어서 어떤 사람이 될래? 마음에 쌓인 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써? 정신 안 차려?
하지만 지난 며칠 책을 술술 읽어내는 나를 보며 나는 나에게 그건 핑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눈을 들었을 때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 걸 확인하는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기에. 앞으로 다시 열심히 재미있게 읽어갑시다!
이번 달은 주로 책을 읽으며 지낼 것 같다. 5월 중순에 끝낸 소설 초고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여러분, 저 다음 소설 초고 완성했어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소설을 열어보고 싶지만, 이 마음이 커지고 커지도록 놓아두려는 것이기도 하다. 7월이 되면 소설로 달려갈 수 있도록. 7월부터 몇 개월동안은 소설 퇴고 시간이다. 그렇게 올해 말 즈음엔 어디 내보여도 괜찮을만한 소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퇴고에 퇴고에 퇴고. 내가 믿을 건 이것밖에 없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단순 생활자>를 내기 전 몇 년의 공백이 있었고 <단순 생활자>를 쓰고 나서도 반년의 공백이 있었다. 이미 충분히 쉬었으므로, 이번 소설 완성하면 바로 다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할 생각이고, 그 에세이를 쓰면서 다음 에세이도 구상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준비도 안 됐는데 마구마구 쓸 생각은 없다. 충분한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나온다는 걸 아니까.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쓰고 많이 느끼는 생활. 이게 잘 안 되면 마음이 위축되기에, 나를 위해서라도 많이 많이 많이 많이를 잘 실천하며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