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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 Jan 31. 2019

긴 시간 속에서 우리 삶의 궤도는

지난해 초, 정말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의 근황이 궁금했고, 내가 전하고 싶은 근황도 있었다. 나는 늘 내가 사람 운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 역시 내겐 고맙고 소중한 운이었다. 대학이라는 어색한 공간에 뚝 떨어져 가뜩이나 낯을 가리는 아이가 허당 짓을 하고 있을 때, 차분하고 자기 색깔 확실한 친구가 내게 먼저 다가와줬다.


나와 친구는 대학교 1, 2학년 내내 사귀는 사람처럼 붙어 다녔다. 실제 친구는 걸핏하면 자기가 나의 남자 친구라며 내 스케줄을 챙겨줬고 밥을 먹을 때마다 전화를 해왔다(친구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다). 그러다 내가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내가 1년 후 복학하자 이번에는 친구가 휴학을 했다. 그렇게 엇갈리다가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그만둔 바람에 우리는 자주 보지 못했다. 휴학이 아니라 아예 그만둬 버린 것이다. 3학년 2학기까지만 다니고.


친구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휴학한 바람에 친구가 쓸쓸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쓸쓸했던 끝에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매일 같이 어울리던 친구가 사라졌으니 학교 다닐 맛이 사라졌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그렇지 않고선 친구가 학교를 왜 그만둬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는 우리 중에 성적도 가장 좋았다. 아마 끝까지 공부했다면 친구 역시 대부분의 동기들처럼 크게 어렵지 않게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친구를 붙들고 진지하게 물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왜 그만두려 하냐고. 그런데 난 그때 그러질 않았다. 복학 후 한동안 정신이 없기도 했고 서로 떨어져 있는 사이 친구와 조금 멀어진 탓도 있었다. 친구가 1년 휴학 후 복학했을 때 서로 과가 달라진  점 역시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나는 컴퓨터 공학, 친구는 전자공학.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밥을 먹을 때와는 확실히 조금 달라져 있었다.


친구의 고향은 속초다.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는 바로 속초로 갔다. 가끔 연락을 하긴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는 "그냥 집에 있어."라고만 말했다. 딱히 어떤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당시의 친구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의 마음과 비슷했겠지. 아직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 회사는 그만둬야 할 것 같은 기분. 친구 역시 우선은 학교를 그만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때는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계획도 없이 학교를 왜 그만둔 거지.


이후 우리는 1,2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됐다. 학교 선배나 동기의 결혼식이 있을 때면 친구는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교 때와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나는 친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예전에 매일 붙어 다녔던 것처럼 그날 하루 우리는 붙어 다녔다. 친구와 있을 때면 나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 너무 편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 친구랑 계속 학교를 다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가 학교를 그만둔 바람에 나 역시 꽤 쓸쓸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다 긴 시간 소개팅을 전전하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급하게 결혼을 한 한 선배의 결혼식이었던가. 결혼식장 근처 카페에 앉아 선배, 동기들과 대학교 때처럼 서로가 서로를 놀리느라 시끌벅적하던 때였나. 나는 이제야 친구에게 물었다. 더 빨리 물었어야 할 질문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왜 졸업 안 했어? 1년만 더 다니면 됐을 텐데. 너 학점도 좋았잖아."


친구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학과 공부가 나한테 안 맞았어. 재미가 없더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대학 졸업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하고. 의미가 없어 보였어. "


나는 친구에게 요즘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속초 어딘가의 과수원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영화와 영상을 통해 접했던 과수원의 풍경을 내 마음대로 상상해봤다. 상상 속에서 친구는 과수원을 거닐었고, 과일을 따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친구를 조금 걱정했던 것도 같다. 친구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보단 정말 신기하게도 친구가 과수원과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다면, 친구는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친구가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 시절. 대부분의 친구들은 회사에 다니거나 취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우리는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던 나는 뒤늦게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와 꿈을 좇았고, 다른 친구들도 이 회사에 다니다가 저 회사에 다니게 됐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도 있었고, 역시나 회사를 그만두고 느지막이 어학연수를 간 친구도 있었으며, 또 몇몇 친구는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또 한 친구는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회사는 다닐 만큼 다닌 것 같다. 이젠 그만 다닐 거야!'


지난해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을 때 나는 친구가 요즘엔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직도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을까. 친구는 지금은 공무원이라고 했다.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나는 이상하게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과수원에서 일하다 공무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했겠네?"


친구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했어."


나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그려볼 때처럼, 시청에서 일하는 친구를 그려 봤는데, 시청에서 일하는 친구 역시 그 공간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너, 공무원 잘 어울린다."하고 말해줬다. 그러자 친구는 특유의 수줍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며칠간 친구를 자주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단지 몇 개월의 시간, 1년, 2년, 또는 몇 년의 시간만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 그리게 될 삶의 궤도를 예상할 수 없는 거라고. 우리의 삶은 긴 시간 속에서만 자기 자신만의 궤도를 넌지시 보여줄 뿐이라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승패는 일생이라는 틀에서 보면 큰 의미 없는 것 같다고. 친구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궤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고, 나 역시 친구와 마찬가지로 내 삶의 궤도를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우리의 궤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뻗어갈지는 친구도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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