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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SONG May 02. 2021

예수가 건넨 깻잎

타지의 삶, 거기서 만난 깻잎 이야기

타지의 삶을 가볍게 여기면 평생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된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프랑스 파리에서 잠시 살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방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었다. 심지어 군대도 서울에서 군악병으로 보냈다.


"서울 떠나면 다시는 특별시민 되기 힘들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대단치도 않게 여긴 서울 특별시민의 자격을 버렸다.


평생 색소폰만 불다가 큰 물고기 잡겠다는 생각으로 악기 장사에  뛰어들었는데, 강남으로 이사도하고 고급차도 타면서 나름 잘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삶의 질을 핑계로 맛을 본 사치의 관성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결국 그 선택은 독이 되어버렸다. 위기가 찾아왔고 더 이상 강남 생활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 변두리로 가기에는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특별시민?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어?"라며
선택한 곳은 '세종특별자치시'이었다.


사정도 모르는 지인들은 "역시 대세를 보는군" "부동산 오를 가능성이 좋은 곳이지"라고 했지만, 새 아파트 월세로 살다가 다시 일어난다는 생각만 했다. 어차피 다 잃고 명품시계 되팔아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대안도 없었다.


7년 전 세종시는 빚을 내서라도 구입했어야 하는 곳이었다.


사면초가로 시작하는 불안한 타지의 삶에 그것은 사치였다. 더군다나 세 딸아이가 한참 공부할 시기였다. 큰딸은 자사고를 나왔고, 둘째와 셋째도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구겨진 자존심은 가족 모두의 현실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기대할 것도 없는 삶이 앞에 놓여 있었다.


둘째 딸아이는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라는 글을 책상에 적어두고 세종시민이 부러워하는 세종국제고를 목표로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그 모습은 하루 종일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린 인생의 작은 희망이었다.



"세종국제고 합격을 축하합니다"


사는 아파트 입구와 기차역에 축하 플래카드에 둘째 딸아이의 이름이 붙은 날이었다. 정말 모든 빚을 탕감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다시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하지만 ‘무너진 삶’에 관해서 소문을 들은 지인들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더군다나 돈이 없으니 누굴 만나러 가는 것도 어려웠다. 가만히 있기도 그래서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고는 아파트의 뒤편 산책로를 따라 난  작은 저수지를 돌면서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면 귀농인지 귀촌인지 묻고는 했다.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 때문에 내려왔냐고 했다. 자녀를 국제고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했냐고 묻기도 했다. 그냥 웃음으로 그들의 상상의 자유를 선물했지만, 진실은 ‘도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잘 나갈 줄 알았다가 무너지니 창피해서 도망쳐 온 곳이었다.


조치원은 복숭아가 맛있는 농촌이다. 맛있는 복숭아 농사로 경제활동을 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더 많은 곳이었다. 그 덕분에 고급차 타고 훈장처럼 큰 로고의 상표를 단 트레이닝복을 입고, 태양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았나 싶었다. 그 구릿빛 얼굴에는 뭔지 모를 자신감도 담겨있었다. 다만 프로 골프선수의 태닝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농사도 골프도 아닌 그저 마실만 다니며 태운 그들의 피부는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들 앞에 서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어" "집도 사고 땅도 사자" "그래 일단 벌자"


허름한 건물 1층을 얻어서 색소폰 학원 개원 준비를 했다. 강남에서 10년 넘게 강사를 했는데, 알려지면 얼마나 많이 모이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증의 시작은 돈이었다. 직접 공사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용기를 내보려 했지만 아침이면 여지없이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점심을 넘기면 견디기 어려운 심한 두통으로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가끔 두통이 덜한 날이 있었는데, 이웃이 생겨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이었다.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며 하얀 피부를 드러내는 것이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깻잎 요리를 좋아하세요?”

 

아파트 뒤편 작은 저수지에서 텃밭과 농사일을 하던 귀농한 셰프가 말했다. 서울에서 유명 레스토랑도 운영했고, 유명 카드사에서도 요리강의를 하는 프랑스 유학파이었다. 파리의 같은 하늘 아래서 비슷한 시기를 보냈다는 작은 인연으로 이것저것 챙겨주는 사이였다. 빵을 맛있게 만들기에 그것으로 돈을 벌겠지 생각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시간을 농사일로 보내는 모습은 뭔가 꿍꿍이가 있나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적당히 긴 머리에 앞이마가 살짝 벗겨지고 인자한 주름이 꼭 예수처럼 보였다.


 "이거 가지고 가서 잘 키워보세요"

맛있는 깻잎 먹을 수 있을 거라며 건넨 것은 시들해 보이는 깻잎 뭉텡이 었다.

생전 농사는커녕 화분 관리도 안 해봐서 모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흙이 묻은 신문지의 깻잎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병아리의 주검처럼 보였다. 다 먹은 배의 뿌옇게 감싼 씨앗의 껍질 속 검은빛처럼 죽은 병아리의 감은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서울 촌놈이라고 무시하나? 이걸 살리라고?"

당장 먹기에도 볼품없고 불쌍해 보였다. 깻잎 모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씻어서 찌게에 구겨 넣는 것이 좋을 시든 깻잎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 성의를 봐서 살려는 보자”라는
아내의 말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흙을 얻었다.


텃밭일을 하던 할머니가 어떤 흙을 퍼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해보니 나름 재미가 있어서 정성을 다해서 옮겨 심었다. 신경 써서 정수기 물을 받아서 주고는 해가 잘 드는 베란다 창가에 놓았다. 짧게 기도도 드렸다. 하지만 믿음이 작은 자의 의심은 지울 수 없었다. "저게 살기나 할까?" 씨앗도 아닌 축 처진 깻잎은 아무리 봐도 살아날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하지 않았다.

 

"너도 이제 마흔을 넘겼으니 다시 일어서기 힘들지 않겠니?"

지인에게 돈을 빌리러 갔더니 차비와 롤케이크 한 줄을 건네며 하는 말이었다. 분명히 저주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 들리는 그 말이 환청으로 변해서 다른 생각을 가로막았다. 무심코 던진 말일 수 있지만 꼭 그럴 것 같아서 정말 괴로웠다. 이미 다 죽어가는 모습의 깻잎에도 내 모습이 들어있었다.


몸살을 심하게 겪고 두통을 겨우 이겨내느라 깻잎을 돌보는 것을 잠시 있고 있었다. 한의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나사못처럼 머리에 침을 잔뜩 꼽고는 편백나무 찜질도 했다. 약도 먹고 한 없이 잠도 자는 날이 이어졌다.


"잠시 여기로 와봐요"

몸을 겨우 추스르던 아침이었다. 아내가 베란다에 와보라고 했다. 잊고 있었던 깻잎을 보라는 소리라고는 생각했지만, 힘이 넘치는 청년을 볼 줄은 몰랐다. 죽은 병아리 같은 모습의 깻잎 쪼가리가 아니었다. 정말 그 시들했던 깻잎이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잎새'처럼 누군가 그려놓은 희망처럼 보였다.

깻잎이라기보다는 잘 생긴 청년을 만났다.

청년 같은 깻잎을 들고, 기쁜 소식을 지인에게 전하러 갔다. 비싸게 맞은 침 덕분인지 한결 발걸음도 가벼웠다. 역시나 밭일을 하던 셰프는 예수의 미소를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이렇게 잘 자라지요"

깻잎의 부활을 전하자. 너무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한 잔 주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좋아하셨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저는 사실 감자탕 속 열 받기 시작한 깻잎처럼 봤거든요"
"그냥 쌈이나 싸서 먹고 말까 했어요"


" 죽어가는 깻잎은 이미 힘이 빠져서 조금만 희망이 보이면 뿌리를 내립니다." 정말 예수의 말처럼 들렸다.

망해서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자존심과 힘이 독처럼 남아있었기에 병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했다.  아프고 어설픈  모습에 자연의 이치가 알려주는 것은 깊은 감동이 밀려오기에 충분했다. 다시 일어서려면 힘부터 빼라고 말하는  같았다.


쉰에 접어들고 한 두 해가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그날의 청년 같은 깻잎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또 얻은 것이 있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교훈일지라도 다른 이에게 힘이 빠지는 이야기라면 입을 다물겠다는 생각도 했다.


깻잎을 전해주던 그 예수는 어떤 이야기도 먼저 하지 않았다. 그냥 맛있는 깻잎 만들어 먹으라며 미소와 함께 건넸을 뿐이었다.


“당신의 인생 같아서 키워보세요”


만약 이렇게 말했었다면 정말 시시했을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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