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은 밥 내가 내린 커피 #2
흙비가 내리는 전쟁터에서 잠시 얻은 휴식은 어쩌면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천국 문턱까지는 도착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더군다나 담배 한 모금의 맛을 아는 병사라면 그 휴식의 맛은 어떤 순간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송 병장과 정 상병은 전쟁의 고통과 더불어 괴로운 담배 냄새로 휴식이 아닌 화생방 훈련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 사람에게 정상병의 수통의 커피, 그것도 핸드드립 커피는 향과 맛을 보지 않아도 이미 이 세상의 어떤 맛과 비교할 수 없으리라 믿는다.
봄비가 제법 내린 도쿄에서의 일정은 전쟁터에서 귀하게 만날 것은 커피 맛 덕분에 바뀌었다.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을 보이자 커피점 직원이 종이에 '合羽橋(합우교)'라는 적어 주었다.
도쿄에 출장을 자주 왔기에 지명과 전철역 정도를 잘 알고 있었는데, '合羽橋(가파바시)'는 조금 생소했다.
처음 방문한 가파바시에서 그날 아침 커피점에서 보았던 구리 주전자와 청동 깔때기 그리고 상점 주인이 손에 들어 보이는 것들을 모두 구입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것과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유튜브보다는 지식 검색으로 자료와 영상을 찾아보던 시절은 핸드 드립에 관한 자료가 생각보다 귀했다.
누군가 핸드드립을 조금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먼 길을 달려갔다.
춘천도 가보고, 한참 유명해지고 있었던 강릉도 틈나면 다녀오고는 했다.
물의 온도에 집중한다고 온도계를 열심히 확인했고, 원두의 분쇄도에 깊은 관심을 두면서 다양한 종류의 그라인더를 구입하기도 했다. 칼리타, 고노, 하리오 등등 다양한 브랜드의 드리퍼와 여과지도 평생 사용할 정도로 구매했었다.
핸드드립 커피에 푹 빠져있던 시절도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이제는 조금 열정이 식었을 것 같지만, 어디에 좋은 커피콩이 있다고 하면 기회를 만들어서 구하고는 한다.
나에게 커피 내리기는 생활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했다.
대단한 기술도 어떤 비법도 아닌 엄마가 매일 짓는 밥처럼 한결같이 맛있는 커피가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다.정말 대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때로는 무심하게 뿌리듯 던지는 물줄기로도 상당히 훌륭한 커피가 탄생한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원두의 신선도가 조금 사라지는 순간에도 심폐소생술 같은 물줄기 당기기 기술로 살려내기도 했다.
“커피 장비 어떤 거 쓰시나요?" "뜸 들이기는 몇 초 정도 잡으시나요?" "첫 물줄기 후 얼마 지나서 두 번째 물을 부으시나요?" 핸드드립 입문자는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어머니가 밥을 지으시면서 손등으로 물을 재는 것을 언제 보았나 싶다. 그렇다고 밥솥의 눈금을 확인하시는 것도 아닌 듯싶다. 하지만 항상 기름지며, 적당한 수분이 감싸 져 있는 밥을 만난다.
그 정도는 되어야 밥 좀 하신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다. 핸드드립 커피 역시도 20년 아침저녁으로 내려 마셨더니, 어머니가 지은 밥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같은 송 씨라서 그런지 가수 송창식 님의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사랑이야'라는 곡의 첫 시작에서 ‘당신은 누구 시기에 이렇게'를 무심한 듯 툭 던지며 깊이가 다른 바이브레이션의 여운을 사라지듯 만드는 그 내공은 최고이다.
핸드드립 고수의 첫 물줄기에서 가볍게 보여도 충분히 무게감이 있는 그 흩뿌림이 노래에 담겨있다. 항상 그런 상상이 몇 도의 온도인지, 몇 회의 드립인지 보다 더 중요했다.
바리스타도 커피 고수도 아니다. 하지만 20년 세월을 아침저녁으로 내렸다.
엄마가 밥 좀 한다는 이야기 안 하듯 무심하게, 하지만 항상 전쟁터에서 귀하게 얻어 마시는 커피를 만들 줄 안다.
오랜만에 정상병과 코스타리카 커피 내려서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