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책
제목 :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저자 : 레베카 헌틀리
출판사 : 양철북
발간일 : 2022년 2월 9일
‘세계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이해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에서 주최한 <긱(GEYK)은영의 기후상담소>에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이 행사는 서울시가 주최한 ‘우리가 그린(Green) 페스티발’의 전체 행사 중 한 개의 행사였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GEYK은 ‘놀러오세요! 기후약국’ 부스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기후에 대한 고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저와 GEYK의 활동가들이 무대에 올라가 한 시간 추첨을 통해 사람들의 기후고민을 상담해주는 코너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 1) 10대의 기후 우울증에 대한 고민, 2) 20대의 사계절에 대한 고민, 3) 30대의 기후 정책에 대한 고민을 듣고 패널들과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그리고 집에 와서도 내가 이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상담할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최선이었나?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건 없는가?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고민을 해결하다가 고민이 늘어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호주의 작가 리베카 헌틀리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리베카 헌틀리는 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 부모이기도 하면서, 사회과학자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리베카는 본인의 책에도 밝혔듯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히고, 그리고 출근하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전 커피 한잔하면서 TV에서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정부를 향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는 외침을 봅니다. 이를 보면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느낌을 받아 기후활동가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책 제목에 스포일러처럼 밝혔듯이 그간의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키고 논쟁했다면,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기후변화를 감정적으로 다루고 사람들을 설득시키자고 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한마디로 기후변화가 이미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로 입증되었으니 이제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너무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점점 더 ‘비논리적’인 대화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43p
저자가 다루는 감정은 죄책감, 공포, 분노, 부정, 절망, 희망, 상실 그리고 사랑입니다. 특히나 저자는 기후변화와 감정에 관한 전문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와 사례를 인용하면서 감정적인 대화법의 효과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통해 사람들 설득하는 방식이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도 합니다. 때때로 죄책감에 호소하여 사람을 설득하더라도 사람이 따라 역효과가 발생할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저도 제 책 《기후피해세대를 넘어 기후기회세대를》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독자의 이성에 이야기하는 것이니깐요. 그러면서 에필로그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 책은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기후변화 피해를 받을 미래 ‘기후피해세대’를 위한 책이지만, 그 이면은 현재 세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른들을 위한 기후변화 지침서’다
《기후피해세대를 넘어 기후기회세대로》, 351p
책을 쓰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가 현재 세대로서 다음 세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의 ‘감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기르는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부모로서는 ‘기후변화를 완화합시다’ 보다는 ‘기후변화로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니 우리가 이를 위해 노력합시다’라고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고도 싶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과 레베카의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레베카가 말하는 기후변화와 유의미하게 연결 지을 수 있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에 매몰되어 나의 가치와 신념을 억지로 나누려 하면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기 어렵다. 중대한 첫걸음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을 발견해 그 대상을 기후변화와 유의미하게 연결 짓는 것이다. 나와 같은 열정과 헌신을 지닌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면 효과는 배가 된다.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260p
기후고민을 상담하면서 저 스스로가 고민에 빠졌었는데 많은 부분 이 책을 읽으며 해소가 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책에서 언급한 페르 에스펜 스토크네스의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생각하는 것》과 조지 마셜의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다음 책 리스트에 넣어 놨습니다.
17p
이 책은 자연과학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 그보다는 심리학, 사회학, 진화심리학과 같은 사회과학 관점으로 인간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기후변화 시대의 자기 계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21p
내가 불어놓고 싶은 희망은 우리가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간이 초래한 이 위기에 인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믿음, 각계각층의 모든 이에게 이 위협적인 상황을 알리고 미래를 구할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행동에 뿌리를 둔 희망이다.
24p
이제 나와 다른 사람들, 세상을 나와 다른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가 지구 살리기의 핵심 과제다. 이는 과학과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을 장려하느냐 하는 문제다.
33p
기후학자들은 특히 기후변화의 원인에 관해서는 더 연구할 거리가 없음을 인정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수없이 사실로 증명된 이론에 대한 데이터를 갱신하는 것 뿐이다.
43p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한마디로 기후변화가 이미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로 입증되었으니 이제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너무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점점 더 ‘비논리적’인 대화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48~49p
우리가 모두 지지할 대안적 비전을 만들려면 서로 다른 집단의 희망, 열망, 가치, 사고방식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공통점을 파악해야 한다.
53p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의 갈등과 불화를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 체계와 이를 형성하는 정서적 반응, 사회적 영향력을 이해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고 대책을 논의할 때도 그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79p
세계자연기금 호주 지부 의뢰로 시행한 선거 후 분석 결과에서, 자녀가 많을수록 부모가 친환경 정당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그저 울고 웃고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찾느라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기후변화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까다로운 주제라고 생각해 버린다.”
83p
오직 과학에 근거한 이성적인 주장만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과학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89p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죄책감과 수치심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상대방의 양심을 찌르는 게 아니라 장단기적으로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려면 둘 사이의 까다로운 균형을 맞춰야 한다.
89p
죄책감은 옳고 그름에 대한 믿음에 얽혀 있기에 갈등을 극복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죄책감이 ‘친사회적’ 행동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사과나 보상을 토해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다.
96p
대기업과 정부의 정책이나 조치 없이 개인과 가정의 행동 변화만으로는 저탄소 경제로 신속하게 나아가기 어렵다. … 건설적인 죄책감은 집단적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수치심은 개인에게 손가락을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99p
죄책감을 일으켜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죄책감은 분노, 저항,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경청과 깊은 이해를 막을 수 있다.
100p
내 심경 전환의 촉매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죄책감이다.
109p
기후변화에 경각심까지는 없어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이나 수치심보다 자부심이나 동정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123p
단순히 공포심을 자극해 호소하는 일을 남발하면 사람들이 둔감해지기에 지속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다.
141p
분노는 우리가 어떤 공격을 당하거나 우리의 목표가 누군가 또는 무엇가 때문에 좌절됏다고 인식할 때 생긴다. 공포와 마찬가지로 분노의 주된 목표는 우리가 위협에 대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147p
분노라는 감정의 가장 큰 단점, 즉 ‘우리’와 ‘그들’을 만들어 내려는 경향으로 이끈다.
149p
분노로 인해 환경 운동과 같은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형성될 수 있지만, 기후 행동을 꺼리는 대중 영합주의 정부가 선출될 수도 있다.
153p
기후에 대한 분노는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정당하고 적절하며 때로는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분노를 적이자 친구로 본다. 너무 오래 함께하면 안 좋지만 궁극적으로 이 관계는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더 노력하게 만든다.
184p
절망은 상황이 심각하게 잘못되었고 절대 나아지지 않으리라고 비관하는 정서다. 절망은 인간의 가장 파괴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뿌리 깊은 우울증이나 OO과도 관련이 있다.
184p
절망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통제력 상실이다. 우리는 실절적으로든 관념적으로든 주체성이나 통제력이 부족할 때 절망한다. 끔찍한 상황에 부닥쳤는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때 절망하는 것이다.
189p
기후 부정론자와 파멸론자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테면 확실성과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점, 집단행동에 가담하거나 역경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이들을 멸시하는 점이 그렇다.
212p
희망은 ‘최악을 두려워하면서 더 나은 상황을 갈망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낙관주의 편향’에 따라 희망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불행을 겪을 가능성이 적고 현실이 암시하는 것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능적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213p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심각하고 위험하리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기후변화는 남의 문제인 것이다.
214p
기후변화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키우려는 낙관주의 편향의 힘은 엄청나다. 가장 교활하고 매혹적인 희망 사항은 기술 혁신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보는 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하리라’는 사고방식의 또 다른 문제는 변화의 길이 순탄하리라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18p
기후변화 시대에 최선의 희망은 기후변화가 지구에 이제껏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확실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단호한 투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목표를 이루려면 집단의 힘과 협력의 힘을 믿어야 한다.
221p
타인의 생각과 행동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의 설득력에 희망이 있다.
225p
감정적 측면에서 상실은 슬픔을 넘어 비탄, 고뇌, 고통으로 나아가는 단계다. 하지만 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억지로) 포기해야 하는 심리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한때 심리학자들이 이 상태를 특히 관심 있게 다뤘다.
252p
기후변화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걸 바꿀 수 있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기후변화를 ‘누구에가나 중요한 것’과 연결 지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
260p
과학에 매몰되어 나의 가치와 신념을 억지로 나누려 하면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기 어렵다. 중대한 첫걸음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을 발견해 그 대상을 기후변화와 유의미하게 연결 짓는 것이다. 나와 같은 열정과 헌신을 지닌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면 효과는 배가 된다.
263p
사랑은 나만큼이나 다른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 보호하고 인내하는 것, 쉽게 화내지 않고 원망을 담아 두지 않는 것,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진리를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후변화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277p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환경 중시 소비자 운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인들이 기후변화를 무시한 대가로 권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대로 지지부진하고 위태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