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은 허구입니다. 즉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한 것이죠. 완벽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한 사람이 지닌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정도가 과하면 오히려 회피와 무기력을 조장할 뿐입니다.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상당히 뜬구름 잡는 추상적 얘기지만, 매일 원서 읽기 누적 1000일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몇 달 간의 영어공부를 돌아보면 너무 완벽하려고 애쓴 것이 아닌가 되묻게 됩니다.
특히 영어로 말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년 11월부터 지난 달까지 네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문장 누적 암기를 지속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어 실력의 향상이 있었을까요? '네.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300문장 정도 외운 듯한데, 그에 비해 스피킹은 물론이거니와 라이팅에서도 별다른 효과를 못 본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효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들인 시간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방식이라는 느낌입니다.
결과적으로 문장 누적 암기는 제가 목표로 했던 누적 124일을 끝으로 중지한 상태입니다. 확실한 것은 암기에 대한 재미를 많이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작할 땐 재미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1월과 2월에 EBS Easy Writing을 월-토 아침 여섯 시에 본방 사수했는데, 이것도 3월부터는 중지 상태입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다 보면 그만큼 쉽게 지치고,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보다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기 마련입니다. 지난 네 달 간의 빡센 영어공부를 통해 이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I have to see it to believe it.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멀리 가려면 완벽주의는 버려야 합니다.[^1] 과도한 로딩에 나가 떨어질 바에야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는 게 낫습니다.[^2] 하지만, 영어공부 오래 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것으로 여겨지는데, 조금씩 매일 하는 것이 정신승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영어공부에만 목숨 거는 시기가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데드라인 없이 조금씩 매일하는 영어공부는 시간낭비일 뿐입니다.[^3] 영원히 바라는 성과를 못 얻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영어공부에 목숨 거는 시기 다음에는 전략적인 휴지기가 필요합니다.[^4] 지금은 휴지기라 생각하며 최소한의 영어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이라고는 하지만 하루에 원서를 60분 정도는 읽고 리스닝도 20분 정도는 합니다. 4월 말부터는 규칙적인 리딩 습관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스피킹에만 매진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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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매듭짓는 게 늘 어렵습니다. 개똥철학 같은 얘기로 마무리하고자 하니 가볍게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영어공부에서 시행착오와 좌절을 반복하다 보니 인생의 과정도 크게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공부나 인생이나 완벽한 답안지가 없기 때문에 본인이 계속 시의적절한 답을 찾아나가야 하고, 결과보다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실상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요즘의 제게는 전혀 진부한 얘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누구나 같지만 죽기까지의 삶의 과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영어든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든 '나는 정말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봤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심정으로 임하고자 합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에만 초점이 가 있는 purposive man[^5]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도 같습니다. 그게 마음챙김적인 방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1]:[[P - 멀리 가려면 완벽주의는 버려야 한다]]
[^2]:[[P - 나가떨어지지는 않을 만큼의 스트레스가 배움을 최적화한다]]
[^3]:[[P - 데드라인 없는 꾸준함은 독이다.]]
[^4]:[[P - 중도에 위치하기보다 양 극단의 전략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5]:[[O - The ‘purposive’ man - 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