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일어나는 공간 Affordance in SPACE 10
커뮤니티 광장, 리트릿 공간, 갤러리형 매장,
음악•도서 라이브러리, 카페, 주말 시장 등
공동시설로 구성된 가장 작은 도시
- FEZH
FEZH를 이루고 있는 각 공간들의 이름과 그 이름이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FEZH는 모로코에 있는 도시 이름인 FEZ(FES)와 힐링(Healing)과 한남동(Hannam Dong)을 뜻하는 H와의 합성어이다. 발음은 H를 묵음(默音)으로 페즈라고 읽는다.
FEZH는 위계적으로 만들어진 모더니즘 건축을 따르지 않고 한남동의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다. 외관으로만 본다면 분명히 대로변에 위치해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만, 그저 동네 골목길에 위치해 코로나 팬더믹 이후, 도심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최소 단위로 구성한 작은 도시가 되고자 했다. 건축가 승효상은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로 페즈를 설명한다. "페즈는 열 채 정도의 집이 하나의 단위로 묶여 있다. 빵집 하나, 우물 하나를 공동시설로 하는 최소 단위로 묶인 이 도시, 열 채만 있어도 하나의 도시가 된다.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는 부분이 전체와 똑같은 가치를 가질 때 이뤄지는 도시다. 즉, 도시 한 구석에 가도 전체를 알 수 있는 도시가 민주주의 도시다." FEZH는 그런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의 최소 단위가 되고자 했다.
FEZH의 로고는 오각형에 담겨 있는데 그 형태는 FEZH 건축물의 대지의 모양이다. 모든 것은 한남동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바로 전, 디지털다임의 사옥인 디투인터랙티브 빌딩이 있었던 자리이다. 70년대 미군부대 중령이 사택으로 신축을 한 후, 헝가리 대사의 사택으로 임대가 되었다가 디지털다임의 사옥으로 개조되었다. 기존 구옥 건물을 허물지 않고 앞마당에 신축한 건물과 중정을 중심으로 연결되게 하였다. 그곳엔 디지털다임 직원들과 기르던 애견인 미나와 폴과의 많은 추억이 남아있다. 2006년 처음 구매한 이 땅에서 18년 만에 FEZH로 다시 태어났다.
색상은 짙은 파란색을 띠고 있는데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있는 이브생로랑이 사랑한 마조렐 정원의 강렬한 파란색을 닮았다. 그 안에 FEZH의 슬로건인 "Be Gentle with the Earth" 달라이 라마의 뉴 밀레니엄을 사는 생활의 지침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the Earth는 지구에 대한, 환경에 대한, 타인에 대한, 동물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Gentle 부드럽게, 친절하게, 온화하게 대하자는 의미이다.
글쓰기에 대해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음악에서 배웠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BLUE CAT의 컨셉은 'Harukist Muzic Library'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 'Peter Cat'에서 영감을 얻었다. 재즈와 블루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블루 노트(Blue Note) 코드와 재즈에 자주 쓰이는 블루색에서 착안하여 'BLUE CAT'이라 이름 붙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내 다카하시 요코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1974년에 그들은 도쿄 서쪽 외곽의 고쿠분지에 재즈 바를 열고, 애완 고양이의 이름을 따서 바 이름을 Peter Cat으로 지었다.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며, 주말에는 라이브 재즈가 열렸다. 연기가 자욱하고 창문도 없는 방에서 무라카미는 설거지, 혼합 음료, 청소, 음악가 예약 등을 했다. 그는 3,000개의 컬렉션에서 끊임없이 음반을 틀었고, 주말에는 젊은 음악가들이 라이브 재즈를 연주했다. "나는 이것을 7년 동안 유지했습니다. 왜? 한 가지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재즈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9년 하루키의 데뷔작이자 군상신인상을 안겨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영업이 끝나면 바테이블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BLUE CAT의 인테리어는 하루키와 깊은 연관이 있다. 들어서는 출입문에는 BLUE CAT의 마스코트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유혹하고 있고, 그의 소설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데 등장하는 소재로 문이 사용되곤 하는데, BLUE CAT에선 두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루키의 음악 라이브러리가 펼쳐진다. 소설 책장을 넘기는 듯한 바 수납장, 전 세계에서 수집한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 JBL 스피커, 위스키와 칵테일, 그가 좋아했던 올드팝과 재즈 명반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특히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음반들의 연속인 1500번대 시리즈는 전음반을 컬렉션하였다. 창문을 통해서는 D-SQUARE 천장의 FEZH BLUE가 가득하게 눈에 들어온다. BLUE CAT의 마스코트인 고양이는 하루키의 Peter Cat에 간판으로 사용했던 고양이로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같은 체셔캣이다. 등장할 때마다 시종일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씨이익 웃고 있는 기이한 고양이 모습을 앙리 마티스의 BLUE NUDE를 오마쥬한 라인과 FEZH BLUE 색으로 로고를 만들었다.
음향시스템은 하루키가 젊었을 때 들었던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으로 스피커는 1950년대 당대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였던 로버트 하츠필드에 의해 개발된 JBL 하츠필드 스피커이다. 하츠필드는 발표당시 미국의 라이프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며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꿈의 스피커라 할 정도로 극찬이 대단했다.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데릭 하트필드에게서 배웠다. 거의 전부라고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데릭 하트필드는 가상의 작가로 하루키와 오디오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트필드가 하츠필드라는 사실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는 JBL 빈티지 스피커로 지금도 재즈를 듣고 있다고 한다. 하츠필드에 매칭되는 앰프로는 같은 시대 최고의 사운드 조합으로 알려진 전설의 McIntosh MC275 파워앰프와 Marantz Model7 프리앰프를 그리고 보조 앰프로는 McIntosh MA6800 인티앰프로 50~60년대 당시의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 일 년 이상 튜닝 작업을 하였다.
FEZH의 전면 입구엔 D-SQUARE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도로면과 같은 레벨로 설계되어 자연스럽게 인바이트를 하고 있다. 주민들이 그들의 반려견과 함께 지나가다 잠시 쉬러 들릴 수 있고 지나가는 외지인도 가볍게 들려서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했다. 이름은 디지털다임의 영어 약자인 D2로 SQUARE의 광장, D의 제곱 등 다중적 의미로 부여했다.
D-SQUARE 내부엔 MINA & PAUL 카페가 있다. 이름은 디지털다임의 사옥인 디투인터랙티브에서 기르던 두 마리 개의 이름이다. 지금은 모두 생을 마감했지만 직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진돗개와 골든리트리버 종이다. 그들과의 추억과 특히 저녁에 짖는 경우가 많았던 탓에 주변 이웃들에게 그간 감사한 마음에 개방된 공간에 카페가 위치하고 있다. 심볼로만 사용할 때는 & 기호로 꼬리를 흔드는 MINA와 듬직한 발을 가진 PAUL을 표현했다.
가장 높은 층엔 CASA DEL AGUA가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으로 한글로 까사델아구아로 부른다. 밖에서 보면 마치 수면위에 떠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CASA DEL AGUA의 로고는 잔잔한 수면 위로 바람이 불어 윤슬이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이다. 잡히지 않는 수면 위의 마음을 지나가는 바람에 날려 보내며 온전히 자신을 찾아가는 RETREAT SPACE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이 공간에서는 벽천의 물소리가 들리고 히노끼(편백나무) 향이 코를 스치며, 마치 물위에 떠있는 듯, 우주를 항해하는 듯, 공간과 빛과 소리와 향기로 경계를 느끼지 못하는 신비로운 경험으로 안내한다.
달동네의 변신, 놀랍고 아름답다 -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Blue Note 1500 Series discography
JBL사운드, 하츠필드 - 한국대중음악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