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동티벳 여행기
오후 8시. 어두침침한 하늘, 비는 많지 않지만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내린다.
저녁이 되어 산에 새겨진 불교 암각화에 조명이 비춰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닥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에도 강한 조명이 쏟아져,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무대의 주인공은 '암각화'와 '강'이다.
옥 빛의 강물이 지나치게 빠르고 거칠어서 오히려 인조적인 인상을 준다.
마치 실내 수영장에서 만들어낸 인조 파도 같다. 비까지 내려 체감 온도는 더욱 낮다. 얇은 반팔 티셔츠로도 충분했던 지난밤과는 전혀 다른 기온이다.
동티벳의 관문도시,
캉딩(康定)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청두에서 캉딩까지 가는데 버스로 6시간이 걸렸다. 예상 시간은 7-8시간이였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빨리 도착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계속 고속도로로 달렸다. 인터넷 상에 있는 몇 없는 정보들에 의하면, 사천에서 캉딩으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려야 했다. 그러나 나는 기껏해야 한 두 달 전에 개통한 것처럼 보이는 고속도로를 달려왔다. 도착하니 해가 이미 졌고 비까지와 무지 추웠다.
캉딩은 도시 사이로 강이 흐르고 있다. 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강의 유속에 놀라고야 만다.
정겹게 졸졸 흐르는 동네 시냇물을 떠올린다면 곤란하다. 위협적일만큼 빠르고 거친 물살이 도시 사이를 버젓이 가로지른다. 마치 인간은 본인들의 공간에 영원히 초대받지 못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듯하다. 그런 강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서서히 밀려온다. 유속이 빠른만큼 물소리도 거세고, 그 소리는 캉딩이라는 도시 전체에 마치 배경음악처럼 늘 가만히 깔려있다.
이제 내가 그리던 동티벳, 적어도 그 부근에 왔음을 실감했다.
숙소로 이동한 후 저녁을 먹으러 나왔으나 마땅히 배가 고프지 않아 산책만 하고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서는 혹시 모를 고산병 예방을 위해 아빠가 타준 생강차를 먹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전에 잠깐 호텔을 나섰다. 아빠와 캉딩이라는 도시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밥을 먹고 고산병 약을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은 해발고도가 3000m정도로 앞으로 갈 도시들에 비하면 '저지대'라고 할 수 있지만 고산병은 자칫하면 여행 자체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병이기에 약은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했다.
먼저 가보기로 한 곳은 이슬람 사원이었다. 티벳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에서 이슬람식 사원이 있다는 것이 특이해 그 곳에 가보기로 했다. 멀리서 청록색 모스크와 그 꼭대기 피뢰침 같은 곳에 달려있는 달과 별 무늬가 보였다.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보수 공사중인지 출입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안각사인데 캉딩에 오면 다들 한번쯤은 들르는 절이다. 작은 티벳식 절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으나 처음 보는 티벳식 절 이라서 흥미롭게 둘러보았다. 캉딩은 듣던대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안각사까지 보니 딱히 더 볼 것도 없고 이제 떠날 시간도 됐고 해서 호텔로 들어와 짐을 챙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캉딩을 가로지르는 물을 가만히 본다.
여전히 물은 빠르고 거칠다. 이제는 좀 적응이 될 만도 한데 강물을 보고 있는 나는 여전한 두려움을 느낀다. 가까이 보이는 산과 우중중한 하늘, 스산한 느낌을 주는 낯선 모양의 불교 암각화는 도무지 이 도시에 정 붙일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캉딩에 도착하니 장족(티벳인)들 _ 중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김새, 복장, 말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_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이제는 너무 익숙한 듯,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갈 길을 간다.
이제 시작이겠지.
내가 이 곳에서 느낀 것은 앞으로 동티벳의 다른 지역에서 경험할 충격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자극을 찾아다니는 나이지만, 때로는 그 새로움이 두려움으로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