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이 시를 쓰게 하기
요새 LLM에 거의 광적으로 미쳐 있는데 그 중에서도 LLM의 창발성(emergent)를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있다. 다음은 정말 단순하고 나쁜 프롬프트("당신은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새벽 4시 라는 소재로 10행 이내의 시를 자유롭게 써보세요")로 시를 쓰라고 한 것이다. 일부러 temperature는 바꾸지 않고 1로 고정했다.
claude opus 4.1 :
네개의 시계가 멈춘 시간,
도시는 숨을 고르고
어제와 오늘 사이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
창백한 빛이 스며들기 전
마지막 별들이 속삭이는 이야기
꿈과 현실의 문턱에서
누군가는 잠들고 누군가는 깨어나
새벽 4시,
세상이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
Gemini 2.5 pro
세상이 가장 깊이 잠든 시간,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나는 홀로 깨어납니다.
창문에 서린 차가운 입김처럼
고요히 떠오르는 생각들,
오늘과 어제의 조각들을 맞추어 봅니다.
곧 밝아올 여명에 대한 기대와
아직 가시지 않은 밤의 흔적이
내 안에 공존하는 순간.
GPT-5 (thinking)
새벽 네 시, 도시의 체온이 가장 낮아진다.
전기주전자에서 흰 숨이 피어오르고
창틀에 걸린 별 한 알이 늦게 돌아온다.
엘리베이터의 심장은 층층이 느리게 맥을 짚고,
아직 보내지 못한 말들이 택배상자처럼 복도에 쌓인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고요가 먼저 대답하고
고요의 뒤꿈치에 작은 물방울 소리가 붙는다.
나는 하루의 해결하지 못한 문장들을 접어
머그컵 아래 깔개처럼 눌러 둔다.
동쪽의 유리창이 얇아지며, 어둠이 얇은 편지를 찢는다.
나쁘진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결과물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정말 평범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고 게 중 GPT-5(thinking) 버전이 좀 더 생활 밀착형(?)의 시를 써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이미지적인 시도도 다른 llm이 쓴 것보다 많이 추가되어 있다. 그리고 프롬프트를 바꾼후 동일한 프롬프트로 세 개의 모델에게 동일한 새벽 4시를 소재로 시를 작성하게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claude나 Gemini는 프롬프트를 바꾸자 훨씬 나은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claude의 경우 이미지적인 묘사가 풍부해졌고 줄바꿈도 훨씬 시적으로 바뀌었다. 새벽 4시라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새벽을 묘사하게 되었다. 이전 버전에 비해 마지막 행이 훨씬 상투적이지 않다.
claude opus 4.1 :
창백한 빛이 뼈처럼 굳은 커튼 사이로
스며든다. 도시가 숨을 참는 시간,
냉장고만이 낮은 웅웅거림으로 존재를 주장한다.
손끝에 닿는 찬 공기의 날카로움—
어제와 오늘 사이, 그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거리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것들이 떠돈다.
첫 번째 새가 울기 전,
세계는 미완성의 문장처럼
흔들린다.
개인적으로 Gemini가 쓴 시는 사람이 쓴 거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원래 다 사바사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음) 공감각적인 표현이 풍성해졌고 이미지의 결합이 더욱 아름다워졌다. claude와 마찬가지로 이전 버전에 비해 마지막 행이 훨씬 상투적이지 않아졌다.
Gemini 2.5 pro
차가운 금속의 맛이 입술에 닿고
푸른 잉크가 스미는 시간
세상의 밑그림 위로
가장 연한 살을 골라
별의 모서리가 박힌다
고요가 제 무게로 내려앉으면
나직이, 이름 하나가 발목을 적시고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닌 문장들.
개인적으로 가장 개선이 느껴지지 않은 버전이다. 취향이 많이 반영되겠지만 심지어 뭘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는... 어쩌면 GPT-5(thinking)을 위한 별도의 프롬프팅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GPT-5 (thinking)
새벽 4시, 숨이 유리처럼 얇아진다.
물컵의 수면이 작은 타원으로 스스로를 기억한다.
이름을 잃은 사물들—의자, 시계, 내 손—형태만 남아 선다.
창문 틈으로 바다가 들이쉰 숨이 골목에 풀린다.
빵집의 첫 냄새가 어둠의 마지막 주머니를 뒤튼다.
엘리베이터 케이블, 꿈을 천천히 삼키며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전등 아래 충전 중인 점 하나가 우주처럼 박혀 있고,
나는 그 미세한 중력에 기울어지며,
오늘과 어제를 봉투처럼 접어, 가장자리로 밀어 넣는다.
참고로 각 모델들에게 각자의 시를 평가하라고 했을 때 claude와 GPT는 개선된 프롬프트 버전의 Gemini 2.5 pro의 시를 꼽았다. gemini는 겸손하게도(?) 각 모델들의 강점이 있다고 답변했다. claude와 GPT가 각자가 쓴 시를 2등으로 꼽은 것도 재밌었다.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으니깐.
여러분은 누구의 시가 가장 맘에 드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