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진짜 실력은 '실수 후 수습'에서 나온다

자책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와 우아하게 수습하는 법

by 멈미

"팀장님께 보고서 숫자가 틀려서 혼났습니다."

某그룹 연수원에서 신입사원과 경력사원 교육을 오래 했기 때문에 후배들의 이런 사연(?)을 종종 듣는다. 경력으로 입사한지 몇 개월 안 된 후배가 전화로 본인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팀장님께 혼났는데, 숫자를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물으니 "죄송하다고만 했어요. 근데 화를 더 내시더라고요. 어떻게 고칠 거냐고..."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실수를 하고 그 잔상이 현재를 방해하는, 즉 그게 트라우마가 된 직장인이라면 이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평소 실수가 거의 없거나 본인만의 완벽한 해결 프로세스가 있는 사람에겐 이 글이 필요 없겠지만, 멘붕의 파도 앞에서 자책의 늪에 빠지곤 하는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업무상 실수만을 다룬다.)

실수와 잘못된 결정은 엄연히 다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실수와 잘못된 결정의 차이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나의 의도'다. 사전에서는 실수를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이라고 정의한다. 즉, 의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보고서 숫자를 틀린 건 실수지만, 잘못된 전략을 선택한 건 결정이다.

실수했을 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자책하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조심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정의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겠지만 괜찮다. 실수는 실패와 다르다. 일잘러는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잘' 수습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멘붕의 파도 위에서 품격을 지키는 방식을 상황별로 짚어보자.


첫째, 타인이 내 실수를 발견했을 때

가장 난처한 상황이다. 멀쩡하게 하고 있던 일들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때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실수가 '자연 치유'되길 바라며 뭉개고 있는 것이다. 차악은 "제가 사고 쳤네요"라고 사실만 툭 던지는 보고다. "똥따떠요 히히" 했을 때 뒤를 닦아주는 곳은 고등학교가 마지막이라는 걸 유념하자. (성인이 된 후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바람직한 과정은 실수의 종류와 규모, 수습 방안을 파악한 뒤 곧바로 상사에게 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경력사원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다음에 실수하면 이렇게 하세요.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파악한 뒤에 팀장님께 가서 보고하십시오. '제가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확인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일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보고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사에게 통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I’m sorry, but"이나 "왜 그랬냐면..." 같은 구구절절한 정황은 수습에 전혀, 네버, 백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를 알려준 동료나 상사에게 감사를 전해라. 금방 정신을 차리고 해결에 임하며 기본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기회다.


둘째, 내가 내 실수를 발견했을 때

그나마 희망적인 상황이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규모를 파악해라. 이때 중요한 건 '실수라고 여겨지지 않는 부분'까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다. 실수를 여러 번에 나누어 수습하는 것만큼 신뢰와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도 없으니까....(이른바 모냥이 상당히 빠집니다ㅜㅜ)

한 경력 입사자의 실수를 건네 들었다. 그는 그의 팀장에게 보고서를 메일로 보낸 뒤 숫자 오류를 발견하고는 "팀장님이 안 보실 수도 있으니 가만히 있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최악의 선택이다. 들키기 전에 먼저 가서 "수정본을 다시 보내드리겠다"라고 말하는 게 훨씬 낫다. 스스로 발견해서 고쳤다는 건 리더에게 오히려 '신뢰할 만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 업무를 매뉴얼화하고 할 일을 구체화해라. 우선순위가 헷갈린다면 상사에게 물어봐라. 아무리 나보다 일 못해 보이는 상사라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회사가 결정한 그의 직위를 존중하고 그의 경험치를 빌려 써라.


셋째, '나락'도 락(Rock)이듯, 실수는 양분이다

사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이 과장 시절, 모든 보고서를 양손에 꽉 움켜쥐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오만한 시기가 있었다. 후배의 도움도 거절하며 "내가 하는 게 효율적이야"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런 오만함은 사소한 데이터를 놓치는 실수로 이어졌다.

부문 워크숍 때 슬릭백(Slickback) 한 번 잘 췄던 동료는 5년째 '공중부양 이 대리'라고 불리고, 슬랙 단톡방에 상사 뒷담화 잘못 올렸던 직원은 이직할 때까지 '박 슬랙'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실수 한 번에 내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겠지만, 중요한 건 뭐라고 불리는지가 아니라 '어떤 업무가 내게 맡겨지는지'다. 연차와 실적에 맞춰 합당한 업무가 주어지고 있다면 앞선 실수는 이미 성장의 양분이 되었다는 증거다. 이미 애저녁에 졸업한 당신의 실수를 들먹이며 우려내는 '사골 장인'들이 있다면 그건 질투다. 그냥 누려라.


약간의 꿀팁: 약간의 '쫀티'

이건 나의 직장생활 연차와 신입/경력사원들과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면서 발견한 꿀팁인데, 약간의 '쫀티'를 스킬로 주머니에 넣어두시라. 바짝 쫄아서 안절부절못하라는 게 아니다. 손을 벌벌 떨거나 밥을 굶으라는 뜻도 아니다. 평소라면 웃으며 나눴을 스몰톡을 생략하고, 약간 초조한 기색과 한숨을 보여주는 정도의 '연기'를 말하는 거다. 상사도 사람이라 부하 직원이 너무 당당하면 극대노하다가도, 직원이 바짝 쫀 모습을 보면 "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쫄지 마"라며 마음을 풀게 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진짜 수습은 '감사 인사'로 끝난다

실수에 대한 수습이 끝난 후에도 할 일은 남아있다. 다시 상사에게 가서 완료 보고와 구체적인 개선책,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처리 완료했습니다. 제 부주의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추후에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사전에 점검하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진짜 수습이다. 이렇게 하면 '알잘딱깔센'을 모두 얻진 못했지만, 적어도 '딱깔(딱 깔끔하게)'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알잘'은 시간에 비례하고 '센'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지금 당장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매뉴얼 만들기를 미루지 말자.

임원, 팀장을 포함한 상사의 위치에 계신 모든 분들도 알아주면 좋겠다. 일하기 좋은 환경은 실수가 없는 곳이 아니라, 실수를 방지해주고 잘 수습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다.


[다음 회 예고] 실수도 줄이고 일도 잘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근데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16회에서는 "나 지금 잘하고 있나 - 연차별 자기점검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나의 커리어가 올바른 궤도 위에 있는지 함께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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