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내라는 말이 싫었다

조금만 버텨보자

by 토끼풀

오늘도 누군가 묻는다.

"선생님, 언제쯤 나아질까요?"

수화기 너머로 지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안다. 그 질문 뒤에 숨은 진짜 물음을.


‘이 고통이 언제 끝나나요?’

‘저 계속 버틸 수 있을까요?’


타로 상담을 하다 보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연애가 틀어진 사람, 직장에서 상처받은 사람, 관계에서 지쳐버린 사람. 모두 각자의 터널 속을 걷고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힘내세요."

"괜찮아질 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나는 그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힘내라’는 말이 싫었다.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짐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망했다. IMF 시절,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회사가 부도났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압류 딱지가 붙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신발도 벗지 않고 집에 들어왔다. 더러워진 마루바닥처럼 내 마음도 무참히 짓밟혔다. 그들은 내 곰인형에도, 피아노에도 빨간 딱지를 붙였다.


학교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주는 국수를 받아왔다. 성적 장학금을 못 받으면 양호실에서 설거지를 해서 몇 안 되는 돈을 받아왔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러 사업을 했다.

망했다.

다시 일어났다.

또 망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말했다.


"힘내."

"이번엔 잘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힘을 내? 지금도 힘든데?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더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내가 긍정적이지 못해서 안 풀리는 건가.’

그런 자책감만 들었다.


‘힘내라’는 말은 때로 폭력처럼 느껴진다. 이미 쓰러질 만큼 지친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어날 힘이 있으면, 진작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할 때 그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텨보아요."

"조금만 더 견뎌보아요."


힘을 내라는 게 아니다.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된다.

오늘 하루만, 지금 이 순간만.



맹자는 말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근골을 지치게 한다."


솔직히 처음엔 이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큰 임무가 있다는 거지?’

‘이 고통에 무슨 의미가 있어?’

그땐 막연한 위로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큰 임무가 꼭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지금 내가 하는 이 일,

누군가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

그때의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경험,

무력했던 순간,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지금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의미는 나중에 발견되는 것 같다.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람은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불안하다.

지금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정말 끝나기는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경험으로 아는 것이 하나 있다.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다는 것.


내 터널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어릴 때도,

사업이 망했을 때도,

또다시 실패했을 때도.

매번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들도 모두 지나갔다.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터널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내일일 수도, 다음 달일 수도, 내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끝은 있다.


그리고 한 번 끝났다고 해서 다시는 터널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간다. 하지만 괜찮다. 지나온 터널이 많을수록, 다음 터널은 조금 덜 무섭다. ‘이것도 지나가겠지.’ 그걸 아니까.


그래서 나는 말한다.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조금만 버텨보자고.

오늘 하루만 버티면, 내일이 온다. 내일 하루만 버티면, 또 그다음이 온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터널 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내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예전엔 그 말이 참 싫었다. 그 말이 아무 힘도 없다는 걸, 때로는 더 지치게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웬만하면 "견뎌보세요."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결국,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올 때가 있다. 이제는 안다.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무언가를 건네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걸.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 내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다정이었음을. 그 말을 했던 사람들도, 그저 나처럼 무력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음을.


그래서 지금은 ‘힘내라’는 말이 미워지지 않는다. 그 말 속엔, 서툴지만 진심 어린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상황과 환경에 순응할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 너무 힘들다면, 힘낼 필요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만 버텨보자.


터널은 반드시 끝이 난다.

곧 빛이 보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늘도 나는 카드를 펼친다.

누군가의 터널 속을 함께 걷는다.
"같이 조금만 버텨보아요."
내 진심이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