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렌슈타인, 말러 교향곡 3번

대지에서 영원으로

by Watragod

야샤 호렌슈타인과 함께한 말러 교향곡 3번의 영적 순례

음악을 듣는다는 것 수많은 LP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듣는 행위는 종종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이 된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3번처럼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작품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곡의 여러 지휘자들의 연주를 들으며 가장 맘에 드는 하나를 고르는 수고를 해야 했다. 번스타인은 마치 변덕스런 광기가 빛을 발하는 극단의 연주를 했으며, 주빈 메타는 전체를 아우르는 좋은 연주였지만 개성을 바라는 연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소 최근의 마리스 얀손스의 현대적 연주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밋밋한 정도의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듣고자 꺼내 든 것은 야샤 호렌슈타인 지휘와 런던 심포니와 함께 연주한 70년대 유니콘 레이블에서 남긴 전설적인 녹음이었다. 소장하고 있는 오리지널 초반(RHS 302/303)이자 어렵게 구한 수고를 차치하고서라도 50년 세월의 치직 거리는 거친 잡음들이 마치 먼지가 빚어내는 미세한 바스락거림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이 소리는 차가운 디지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깊은 사람 내음 한가득을 담고 있는 숲에서나 느껴질 법한 흙내음이자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듯한 마른 낙엽소리를 닮았다. 이런 아날로그의 원초적인 감성이 오히려 말러가 지향해 왔던 자연과 심연에 맞닿아 있음을 상상하며, 1면의 첫 악장의 문을 열었다.

https://youtu.be/RCdR7m35t6Y?si=vvyFGjCKxznIwnsw

Mahler Symphony No.3 1, 2_Horenstein_1970

제1악장 도입부, 여러대의 호른이 일제히 뿜어내는 소리와 선언하는 듯 압도적인 팀파니의 울림. 여타 수없이 많은 도입부를 비교해 들으면서 난 감정에 휘둘려 무작정 템포를 빠르게 하는 법이 없이, 단단한 거인의 보폭처럼 서사를 쌓아 올리는 호렌슈타인의 연주가 제일 맘에 들었었다. 당시 녹음의 특성일까? 좌우 명확히 분리되는 도드라지는 음향은 대지의 생명이 요동치는 듯한 일련의 과정처럼 입체감을 그려낸다. 고독하고 날카로운 관악기의 울림 뒤에 이어지는 팀파니의 장격은 나약한 존재의 보잘것 없음을 엄중하게 꾸짖는 듯 하다. 숲 안개 사이로 새싹이 돋는듯 솟아오르는 목관과 바이올린의 대화는 마치 생명의 태동인듯 표현되었고, 낮게 깔리는 경의 묵직히 들여오는 행진곡은 결연한 무엇인가의 의지처럼 다가온다. 호렌슈타인의 연주는 주춤거리는 망설임조차 숨기지 않는 듯, 템포를 끌어가며 내는 소리들조차도 오히려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듯 숭고한 서사와 같이 음을 승화시킨다.

제2악장은 대지의 무게감을 내려놓은 채, 연인인듯 모르는 존재와 함께하는 환상적인 숨바꼭질로 나를 안내한다. 빠르게 재촉하는 듯한 리듬을 타는 현악의 음은 마치 들판의 꽃잎들이 미풍에 흔들리는 듯한 생동감을 주고, 그 위를 수 놓는 오보에와 플룻의 피리 소리는 손님을 맞이하는 다정한 미소의 인사처럼 나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듯 했다. 나는 이 악장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숲속을 뛰어다니고, 몰래 마음을 열어보이며 공중을 나는 듯한 무중력의 행복함에 취한다. 연주는 마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아가는 기분 좋은 걸음 걸음들이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듯 고조되다 팀파니 소리에 가슴을 쿵쾅거리며 한바탕 내지르는 환희의 순간은 아름다운 찰나를 만들어 내는 예술의 심취였다. 호렌슈타인의 절제된 템포를 유지하는 연주이러한 감정이 경박해지지 않도록 우아한 품격을 유지해 주는 듯 하다.

https://youtu.be/94PNMdsLcac?si=eL6T8hY2yQ9fed4S

Mahler Symphony No.3 3, 4, 5, 6_Horenstein_1970

제3악장은 숲속의 유쾌한 기분이다. 시끌벅적한 시장통의 분위기처럼 작은 동물들이 저마다의 장기자랑을 펼치며 재잘거리는 가운데, 갑자기 연주는 적의 시간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저 멀리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포스트호른의 독주 소리. 닿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인가, 절절한 외침인가. 읊조리는 듯한 애절한 포스트호른 소리가 공간의 공기를 찢고 서서히 다가오면, 무대 위 다른 호른들의 따스한 배음들이 그 고독을 살포시 덮어주었다. 위로받은 전령자의 나팔 소리가 흐느낌을 멈추고 따뜻한 미소를 띠며 이내 나에게 방향을 바꾸어 말을 거는 듯, 나는 그리움의 황동나팔 소리가 어떻게 기쁨의 소식으로 변모하는지를 느끼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연주를 듣는 내내 호렌슈타인이 빚어낸 이 파스텔 톤의 복잡한 색채감은 여타 연주자들의 원색의 강렬함보다 훨씬 깊은 빛의 외연을 보여준다.

제4악장의 깊고 부드러운 알토의 노래. 콘트랄토 노르마 프록터의 숙연한 목소리가 채워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치는 금빛 조명처럼, 그녀의 짙고 낮은 저음은 엄중한 계시를 내리는 듯 자장가인 듯 아닌 듯 묘하게 흘러가는 밤의 노래를 부른다. 구슬픈 바이올린 선율과 어우러지며 어둠의 공기를 숭고하게 재구성한다. 깊은 고통은 있을지언정 그보다 더 깊은 환희가 있음을 알리는 그녀의 읊조림같은 노래는 나를 압도하며 영적인 정화의 길로 안내하는 듯 했다.

제5악장은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소년 합창단의 환한 목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반가움이었다. 4악장의 무거운 밤을 걷어내"빔-밤" 합창소리는 천사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같다. 관악기의 묘한 비틀림과 그로테스크한 음형들이 삶의 아이러니처럼 주변을 환기시켰지만, 그것은 곧 참회와 용서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서서히 녹아든다. 경솔할 수 없는 환희, 즉 고통을 관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성스러운 축복의 연주가 온 방 안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마지막 6악장은 숭고한 해방을 향한 절절한 기도처럼 시작되었다. 고해하듯 나즈막히 시작된 현악의 선율은 나약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간?)가 절대자에게 올리는 가장 정직한 고백과도 같았다. 연주는 큰 변화 없이 조금씩은 흔들리는 긴 대화 같은 호흡으로 이 기도를 이끄는듯 하다. 멈칫멈칫하는 선율의 망설임과 그 눈물 어린 고백 끝에 내려온 한 줄기 빛의 응답같은 연주는 확신처럼 에너지가 점점 채워지며 나약했던 작은 존재가 비로소 새로 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은 듯 이어진다.

마침내 다가온 대단원, 다시 재현되는 팀파니의 명확하고 웅장한 울림은 존재에 대한 최종적인 인정이자 우주적인 승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거대한 기운과 맞닿아 완성된 존재의 모습은 이제 이전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로 다시 서게 된다. 주변의 공기 하나하나를 새롭게 주워 담아 세상을 다시 보는 듯한 완전한 조화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사랑이었노라"고, "새로운 세상이 환하게 비치리라"고 벅차게 선언하는 듯 마지막을 향해 간다. 과거의 고통은 이제 초월의 빛 아래 달라졌으며, 이 장엄한 연주는 삶의 영원한 축복과 영광이 되어 내면에 박제되었다. 이 긴 여정의 끝에서 다시 태어났음을,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사랑할 가치가 있음을 비로소 믿게 되는 듯 하다.

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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