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특히 한국 가요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이돌 산업이 주된 관심사고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경험을 토대로 한국 가요에 대한 글을 씁니다.
브런치 첫 글을 어떤 가수로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최근 좋아하게 된 가수도 있었고 이전부터 좋아했고 특히 최근 이슈가 되는 가수로 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유애나(아이유 팬클럽명)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2008년 엠카운트다운 무대에서 처음 만나 2009년 <Boo>를 시작으로 2022년 14년째 아이유 팬으로 살고 있는 필자가 봤던 아이유의 음악 세계와 그 사이에 있던 5개의 변곡점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0. 아이유의 변곡점
'뜬금없이 왜 변곡점을 얘기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온 서론입니다.
202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아이유는 이때 <조각집>이라는 앨범을 냈습니다. 10여 년 동안 아이유의 음악 활동 중 그 '중간' 어딘가에서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곡들을 이어 붙여 만든 앨범입니다.
아이유 스스로도 이 앨범을 "구태여 바깥에 내놓지 않았던 내 이십 대의 그 사이사이 조각들"이라고 표현했죠.
출처=아이유 <조각집> 앨범 설명 캡처
이 앨범을 볼 때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먼저 <너>, <정류장>처럼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는 음악들이 앨범에 실렸다는 점.
하지만 그보다 주목했던 건 <조각집>이 다른 어떤 앨범보다 아이유의 음악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앨범이라는 점입니다.
<LILAC> 뮤직비디오. 출처=1theK 유튜브 캡처
직전의 앨범과 비교해보면 더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아이유는 2021년 3월 정규 5집 <LILAC>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하나의 블록버스터 음악'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협업을 이어온 이종훈, 이채규 작곡가가 아닌 다른 작곡가들이 대거 투입됐고, 작은 사이즈보다는 큰 음악으로 생각되는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유는 늘 '주된 지점들의 그 사이 어딘가'를 노려왔습니다. 2014년 뜬금없이 등장했지만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반인 <꽃갈피>처럼 말입니다. <꽃갈피>가 <Modern Times>의 <분홍신>과 <Modern Times - Epilogue>의 <금요일에 만나요> 뒤에 나온 작은 사이즈의 앨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유는 틈새를 노릴 줄 알고 그리고 그 틈새야말로 아이유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아이유 음악 세계의 정수는 <좋은날> 등처럼 대규모 음악보다는 <조각집>의 <정류장> 같이 조그마한 노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아이유는 콘서트 때 꼭 이런 작은 발라드/어쿠스틱 음악으로 구성된 순서를 넣곤 합니다.
그래서 아이유의 변곡점을 이해하는 건 중요합니다. 아이유의 메가 히트곡 3부작 <좋은날>, <너랑나>, <분홍신>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시도는 많았지만 그 중간 지점의 변화를 보려는 시도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생각하는 아이유 음악 세계의 5가지 변곡점을 얘기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Growing Up>
거창하게 말했지만, 아이유의 첫 번째 변곡점은 2009년 발매된 정규 1집 <Growing Up>입니다. 사실 대중에게는 앨범 이름보다는 <Boo>라는 타이틀곡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 앨범이 첫 변곡점인 이유를 얘기하려면 전작인 <Lost And Found>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유는 2008년 9월18일 엠넷 엠카운트다운 무대에서 데뷔했습니다.
2008년 아이유의 데뷔 무대.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유가 유명해졌으니 <미아>도 관심을 끌었고, '아이유를 데뷔 때부터 좋아했다'는 얘기도 많이 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유가 한 예능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관심을 끌었다면 "망했을 리가 없겠"죠.
SBS 예능 <영웅호걸>에서 데뷔 당시를 설명하는 아이유. 출처=빽능-SBS 옛날 예능 유튜브 캡처
이후 아이유는 노선을 변경합니다. 가창력을 필두로 한 발라드가 아닌 파격 댄스곡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 이게 반응이 꽤나 괜찮았죠.
물론 그 중간에 기타를 들고 빅뱅의 <거짓말>을 어쿠스틱으로 부른다거나 곰티비에서 엠씨로 활약하는 등의 과정도 있었지만, 이와 별개로 <Boo>는 가요계의 '미아'가 될 뻔했던 아이유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줬습니다.
<Growing Up>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유의 음악 세계에 댄스 솔로 여가수라는 콘셉트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이유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발라드곡을 내지만, 후술할 아이유의 메가 히트곡 3부작은 모두 솔로 댄스곡입니다.
<Boo>가 수록된 <Growing Up> 앨범은 아이유가 이후에도 대중에게 주되게 어필했던 음악 세계의 시발점으로 작용한 셈입니다.
2. 두 번째, <Real>
아이유는 최근 9월 진행된 콘서트에서 <좋은날>을 콘서트 셋 리스트에서 졸업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좋은날>을 이제는 아이유 콘서트에서는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좋은날>이 아이유의 메가 히트곡이고 그중에서도 3단 고음이 아이유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3단 고음보다는 <좋은날>, <너랑나>, <분홍신>으로 이어지는 아이유의 음악 세계의 특징을 말해보려 합니다.
앞서 아이유가 <미아>의 실패 이후 <Boo>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미지를 변신했고 대성공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Boo> 이후에도 <있잖아>, <마쉬멜로우> 등의 댄스곡은 좋은 성적을 가져왔습니다.
2017년 서든어택 행사에서 <좋은날>을 부르는 아이유. 출처=박범수
그리고 <잔소리>의 성공에 이어 아이유는 <좋은날>이라는 곡으로 일약 대세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 후로도 <너랑나>, <분홍신>에 이르러 솔로 여가수의 입지를 단단히 굳힙니다.
이 세 곡의 공통점은 뭘까요? 이민수 작곡가와 이미나 작사가의 콤비로 이뤄졌다는 점? 동화 같은 콘셉트, 스트링 사운드와 감성적 가사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아이유를 보여줬다는 점?
다 맞는 얘기겠지만 저는 이 세 곡이 대중들의 취향에 철저히 맞춰진 아이유의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이 세 앨범에서 아이유 자신만의 음악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유가 싱어송라이터로 시작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유는 <Real> 앨범의 <혼자 있는 방>을 시작으로 <내 손을 잡아>, <길 잃은 강아지> 등 자작곡을 출시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유가 능력 있는 작사가로 평가되지만, 대중들에게 그저 10대 솔로 여가수로 여겨졌던 그 시절에도 아이유는 '자신만의 곡을 만드는 가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그 점이 어필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날>, <너랑나>, <분홍신>은 엄청난 상업적, 대중적 성공을 거뒀던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 곡은 철저히 대중들이 원하는 아이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어린 솔로 여가수'로서의 아이유를 보여준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판타지 3부작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Real> 앨범은 EP임에도 불구하고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수준급이고, 10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가창력과 감성을 보여준 앨범입니다.
<Modern Times>도 아이유의 이미지 변신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앨범으로 특히 여기 실린 <Voice Mail>이나 <싫은 날>은 아이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곡들입니다.
2015년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에서 부르는 <싫은 날>
여기에 더해 리패키지 앨범으로 나온 <Modern Times - Epilogue>의 <금요일에 만나요>는 멜론 차트에 장기간 머물면서 아티스트로서의 아이유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준 곡입니다.
그럼에도 아이유는 이때까지 아티스트라 부르기는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통해 아이유의 음악 세계에는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