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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 Dec 05. 2022

탄소가 돈이다

Thanks to 이승원 작가님

최근 소풍벤처스의 추천으로 기후팀 대상 집중 인터뷰를 진행해주시는 이승원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평소에 하고 있던 고민을 글로 잘 작성해주셨기 때문에 긴말 필요없이 인터뷰 내용 공유해봅니다.


https://alook.so/posts/dztXbdq


ps.  얼룩소 흥하시길~!!



고백하자면 '언젠가 쓸' 책 제목을 몇 달 전 메모장에 적어 놨다. ‘탄소는 돈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했던가. 찾아보니 (무려) 2009년 일본인 저자가 쓴 책이 매우 유사한 제목으로 번역돼 있었다. ‘탄소가 돈이다’. 물론 ‘는’과 ‘가’의 차이는 엄청나다. 


(이건 중요하다. 시작부터 샛길로 빠지자면, 소설가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의 저 유명한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원래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였다. 김훈은 ‘은’을 ‘이’로 바꾸기까지 담배 한 갑을 태웠다고 한다. 독자로서 나는, 담배 한 갑으로 끝난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의 생각도 유사했다. 이민 탄소중립연구원 대표이사 얘기다. 


“탄소도 돈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퍼뜨렸으면 좋겠어요.” 잠시 고민 끝에 나온 말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나오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투자하고 모방하고, 따라하고 소비하잖아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등장하니까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기후테크나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탄소 솔루션에도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기후위기도 해결하고 무엇보다 스타트업으로서 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전 자선사업가가 아니잖아요." 


탄소가 돈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쓰레기 배출을 많이 하면 ‘돈 주고 산’ 쓰레기 봉투(종량제 봉투)를 그만큼 사용해야 한다. 탄소도 마찬가지다. 국가별로 기준이 다르지만 기업들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그만큼 돈을 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은 할당 받은 배출권(배출 가능한 온실가스량)이 남아돌면 다른 기업에 팔아 오히려 이윤을 남기기도 한다. 

또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국가에서 제조한 상품을 기준이 엄격한 유럽 내 국가로 수출할 때는 일면 탄소국경세(탄소국경조정제도, CBAM)를 내야 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기업의 경우 유럽, 미국 등에서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 그만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환경 문제를 빙자한 사실 상의 무역장벽이라는 논쟁이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한다).

정리하면, 기업들은 자사가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 배출량을 계산해서 알고 있어야 하고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탄소중립연구원은 이처럼 중요해진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주는 '탄소회계(Carbon Accounting)' 솔루션을 개발했다.

탄소중립연구원 로고



—재무회계처럼 탄소회계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탄소세, 탄소국경세 등 다양한 이름을 들어 보셨을 거예요.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법 제정까지 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회계사가 기업의 재무 상황을 체크해주듯 저희들은 기업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탄소 발생 현황과 비용을 알려주는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탄소회계'에는 요즘 많이들 얘기하는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비롯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탄소국경세 등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 모두 탄소 배출과 관련된 내용들이죠. 저희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탄소회계를 위한 전사적자원관리(ERP)*’예요” 


*ERP: 회계부터 자원관리, 공급망 운영까지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 


— ERP는 많이 들어봤는데 여기에 탄소가 결합된 건가요?

“그런 개념이죠. 보통 제조업들이 관리하는 영업(견적/주문/판매), 구매관리 데이터들이 있잖아요. 이 데이터를 넣으면 자동으로 탄소회계 분석을 할 수 있어요. 월별 보고서와 데이터를 입력할 때 자동으로 정리되는 증빙자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탄소국경세나 제3자 검증이 필요한 경우 절차가 쉬워지죠. 


앞으로, 특히 유럽의 경우 기업들이 제품을 수출할 때 직접 배출하는 탄소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탄소 배출량까지 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요. 일부 기업이나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탄소 배출 관련 자료를 신경쓰는 분위기거든요. 우리가 중요한 일 처리할 때 인감이라는 걸 가지고 가는 것처럼 탄소 배출 자료도 앞으로 인감처럼 쓰일 거예요." 


—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업 아이템은 아닐 것 같은데 계기가 있었나요? 


“리서치를 해보니 국내에 탄소 관련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5년 정도 앞서간다는 유럽과 미국 쪽을 찾아보니 탄소회계가 난리더라구요. 저는 원래 스타트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 부분에 관심이 생겨서 결국 동업자들과 솔루션까지 개발하게 됐습니다.” 


— 기사를 읽다 보면 유럽이나 미국은 기후위기, 탄소배출 문제에 적극적인데 우리는 너무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현재 유럽연합(EU)이 가장 엄격한 기후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탄소 누출(carbon leakage, 기업들이 세금 회피와 비용 절감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 혹은 장소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했죠. 현재는 직접 배출(Scope1)량만 보겠다는 계획이지만 조만간 간접 배출량(Scope2, 3)까지 확대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실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1만 4228곳) 조사했더니 ESG 가운데 환경(E) 분야 관리가 가장 미흡하다고 합니다. 1~2 등급을 받지 못한 기업들이 3분의 2에 달한다고 하니 아직 많이 부족하죠.” 


(2022년 11월 현재, EU의회는 CBAM 관련 일부 이견을 두고 논의 중이다. 지금까지 잠정 확정된 것은 CBAM 적용 대상을 탄소 배출이 매우 많은 시멘트· 전력생산· 비료· 철강· 알루미늄 등 5개의 분야에서, 유기화학품·플라스틱·수소·암모니아까지 총 9개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2023~2025년 과도 기간을 거쳐 2026년1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EU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량의 약 10%다.) 


(스코프(Scope)는 3가지로 분류된다. Scope 1은 제품 생산 단계 직접배출/ Scope 2는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생산 과정 등에서 나오는 간접배출/ Scope 3은 제품 사용 및 폐기, 공급망, 임직원 출장 등 총 간접배출을 의미한다.)

탄소중립연구원의 사업 내용에 대해 발표하는 이민 대표. 탄소중립연구원


—  외국에서 높은 기준을 세워 놓으면 국내 정책과 무관하게 그대로 따라 가야 하는데 현재 한국 정부 정책은 더딘 듯합니다. 


"사실 좀 답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하면서 ‘아… 내가 환경부 공무원이 돼서 정책을 직접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봤어요(웃음). 그런데 국가가 정책을 만드는 일은 너무 오래 걸리고 결국은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해요. 큰 문제 해결은 결국 민간에서 주도하면서 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11월 24일,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개선방안 - ‘온실가스 감축 촉진을 위한 배출권거래제 개선방안’ -을 공개했다. 그러나 정작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배출허용총량 축소와 유상할당 비율 확대 등 핵심 내용은 내년으로 논의를 미뤄, 온실가스 감축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일의 성격상 기업들, 특히 대기업 관계자들을 접촉할 기회가 있을텐데 주로 어떤 얘기들을 하시나요? 


"일단 중소기업은 준비가 안 돼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한 대기업 임원도 역시 어려움을 토로하더라고요. 자체적으로는 어떻게든 준비는 할 수 있는데 협력사의 경우 요청을 해도 탄소회계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온라인 상에 기초적인 내용조차 기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탄소중립연구원의 탄소회계 서비스 화면. 탄소중립연구원


—  아까 외국에서는 탄소회계가 '난리가 났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기업들이 있나요? 


“퍼세포니(Persefoni), 워터셰드(Watershed), 플랜에이(PlanA) 같은 곳들이 미국과 독일에서 탄소회계를 잘하는 기업들입니다. 탄소회계 솔루션 시장은 특히 선점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데 이 회사들은 그만큼 감각이 있었던 거죠. 

예를 들어 저희 회사 롤모델이기도 한 Persefoni의 경우 탄소회계가 자동화된 ERP를 제공하는데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이 1546억 원에 달합니다. 주 고객층은 미국, 유럽 내 제조업과 금융기관들이예요.  Watershed는 자발적 감축을 원하는 정보기술(IT)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고 누적 투자액은 950억 원입니다. 이미 엄청난 규모의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연구원의 목표도 이런 기업들처럼 초기에 솔루션 개발을 제대로 해서 시장을 선점하고 최대한 많은 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탄소 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이제 가격 경쟁력, 입찰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물건을 사는 쪽에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게 바로 앞서 언급된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다. 전세계 91개국 7000 여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자발적 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로, 국내에서도 3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CDP는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200여 개 기업들은 제품·서비스 조달 규모가 약 5조5000억 달러(약 7100억 원)에 달하고, 이를 위해 수만 개의 협력업체와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력업체의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공급망 배출량(Scope3)이 직·간접 배출량(Scope 1, 2)보다 11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  혹시 더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국내외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큰 차이가 있어요. 거칠게 표현하면, 한국 기업들의 첫 질문은 '돈이 되나?'예요. 그런데 유럽 기업가들은 '이걸 해야 해?"가 첫 질문이고 그 다음이 ‘그러면 어떻게 이걸 돈으로 연결하지?’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건 근본적인 차이예요. 저는 기업을 하면서 후자의 질문 순서가 맞다고 봐요. 

앞으로 탄소 솔루션을 개발해서 좋은 사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쪽 분야를 리드하고 낙수효과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최선일 듯해요.” 


이민 대표는 이 인터뷰를 읽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투자자나 협력할 기업들도 물론 환영이지만 이 분야에 같이 뛰어들 수 있는, 다시 말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기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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