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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Aug 28. 2021

바버샵 외국인 고객님들과
영어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영어 커뮤니티 만들기

어렸을 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아줌마와 어머니가 한바탕 웃고 떠드는 시간 동안에 내 머리는 금세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블루 클럽 남자 전용 이발소가 새로 생겼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주로 가는 기존에 낡고 오래된 이발소가 아닌, 젊은 사람들을 위한 세련된 이발소이었다.


건물의 인테리어는 세련되었지만, 실제로 머리를 담당해주는 분들의 스타일은 기존의 이발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렴하고 빨라서 좋았지만, 오랫동안 머리를 해준 동네 미용실 아줌마에게 더 발길이 갔다. 유행에 민감해진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헤어숍에 갔다. 울프컷과 샤기컷이 엄청난 유행을 하면서 너도나도 모두 그 스타일을 따라 했다.


서호주 퍼스에 있을 때는 어떤 미용실에 가야 하는지가 가장 커다란 고민이었다. 이 지역 외국인 미용사들은 동양인 머리를 손질해본 경험이 대부분 없었다. 서비스는 좋았지만, 단 한 번도 원하는 스타일대로 나온 적인 없었다. 반면에 한인 미용실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 물론 원하는 스타일에 가깝게 나오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 나라에서 이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은 그저 돈 낭비였다.


가난한 호주 워홀러는 단돈 1달러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여러 지인들에게 수소문해 페이스북을 통해 가정집 차고에서 머리를 해주는 어느 젊은 한국인 미용사를 만났다. 한국에서 미용사 경력은 있지만, 호주로 이주하면서 아직 미용실을 차리기에는 자금이 부족해서 차고에서 작게 시작한다.라고 말하면서 안심시켰다. 어차피 덥수룩한 머리를 손질해야만 했기 때문에 머리를 맡겼다. 나름 괜찮았지만, 차고 미용실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에 있을 때도 정이 가는 미용실을 찾지 못해서 결국 아마존에서 30불 주고 이발기를 구입했다. 군대에서 재미로 잠깐 이발병 역할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상대방 머리에 모든 시야가 확보되어 나름 쉬웠는데, 내 머리를 내가 직접 손질하려고 하니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다행히 마음이 가는 바버샵을 찾았고, 그곳에서 마음이 통하는 바버님을 만났다. 원하는 스타일을 경청하고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조용하게 머리를 손질해주는 그분의 디테일함에 반했다. 무언가를 꼭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고, 그저 편했다. 그 이후로 항상 이곳에서 그분에게 머리 손질을 맡기게 되었다.


어느 날, 그분을 통해 서울 압구정에서 유명한 바버샵을 운영하는 원장님을 알게 되었다.


원장님 : 제가 압구정에서 바버샵을 운영하는데 혹시 이쪽으로 오실 수 있어요?

크리스 : 그럼요 :)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멋진 슈트를 입고 등장한 원장님은 키도 크고 얼굴도 너무 잘생겼다. 매너도 좋아 30분 정도로 예상했던 이야기는 어느덧 2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원장님은 바닥에서부터 본인 스스로 서울 압구정에 자신의 바버샵을 일궈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K-뷰티의 인기도 높아지고 바버샵에 외국인 손님도 많아지면서 본인 스스로 영어를 구사해서 사업도 확장하고 외국인 손님과 직접 대화도 하고 싶다고 했다.


평생을 미용에만 집중해왔지만, 신앙심이 강한 원장님은 평소에도 영어로 쓰인 성경책을 조금씩 읽는다고 했다. 어린 아들도 지금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영어로 대화도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영어에 대한 동기도 열정도 충만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어 공부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원장님 : 제가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스케줄이 있는데, 혹시 밤 11시 이후에도 가능하나요?

크리스 : 밤 11시 이후요? 원장님 괜찮으시겠어요?

원장님 : 그럼요. 제가 원해서 하는 건데요... 뭐, 오히려 밤 11시 이후에 함께 해주시면 제가 더 고맙죠.


  

원장님과 함께 밤 11시 수업을 그렇게 1년, 2년, 그리고 3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했다. 가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수업을 연기할 때면 항상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커피와 케이크 쿠폰을 조심스레 보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서서 고객들의 머리를 손질하고, 디자이너들을 교육하고, 계획한 사업도 천천히 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어느 날, 바버샵을 직접 방문했는데 너무 놀랐다. 원장님은 외국인 고객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었다. 그 외국 손님은 원장님의 서비스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원장님과의 추억을 전 세계 친구들과 공유했다. 너무 뿌듯해서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크리스 : 원장님!!! 영어가 언제 이렇게 많이 늘었어요? 영어 대화가 너무 자연스러운데요?

원장님 : 크리스쌤 덕분이죠. 사실 처음에는 긴장이 너무 많이 돼서 준비한 질문도 잘 못 했어요.

크리스 : 근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잘하세요?

원장님 : 쌤이랑 매일 연습해서 그런가, 영어로 말하는 게 어느 순간 익숙해지더라고요. 물론 아직도 많이 틀리면서 말하지만요. 그.. 뭐랄까,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들이 이제는 연습 때문에 자신감으로 바뀠어요! 쌤이 말했잖아요? 틀려도 괜찮으니까 그냥 계속 뱉으라고.



원장님과 함께 3년이 넘는 영어 수업 시간 동안 수백, 수천 가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서 그분은 "틀려도 괜찮으니까 영어로 계속 말해보자"라는 말에 깊이 꽂히셨나 보다. 사실 이 말을 언제 했는지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해드리는 말이다.


그분은 수많은 연습과 실패를 통해서 지금의 훌륭한 미용 실력을 가졌다. 비록 그분에게 영어는 새로운 영역이지만, 이미 연습하는 방법도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다. 그저 옆에서 함께 즐기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Be excited to challenge something totally new you haven't ever done before. If you have your own valuable experience, then you can always figure something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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