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을 배울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기적수업

by 코코조조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맞서지도 말고

견디지도 말고

피하라

기적수업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그런데 배우는 입장에서 그 관점을 구분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온다

한 관점은 그리스도의 관점이고

나머지 관점은 인간의 관점이다

그리스도의 관점은 죄 없는 세상을 본다

(그리스도의 세상에 시공간 우주는 없다)

나머지 관점은 시공간 우주 속 육안의 관점이다

혼란의 한 예로

시공간 우주 안의 모든 사람을

거룩한(죄 없는) 존재로 보라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 우주라는 상상 속 세계의 모든 형상은

존재할 수 없는 ‘죄‘의 상징이다

죄의 상징 중에

‘악’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선’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선’과 ‘악’의 개념은

대조를 통해 만들어지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개념이다.

선과 악을 나누는 사고체계에서 벗어나라)

그런데 모든 형제를

거룩한(죄 없는) 존재로 보란 말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본래 거룩한 형제니까

저 사람이 날 괴롭혀서 나쁘게 보일지라도

난 저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기적수업방식으로 용서하여

거룩한 존재로 보겠어’

라는 실수를 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고깃집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사장님이 부사장을 해달라고 해서

하겠다고 하고 가게 운영을 배우다

도중에 안 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사장님은 평소에는 그냥 넘어갔던 걸

트집 잡아 나를 갈궜다

그때 나는 바로 그만뒀어야 했는데

기적수업의 용서를 한답시고

사장님이란 아무런 의미 없는 허상을

‘죄 없는 형제‘로 보고

스트레스가 극심해도 피하지 않고 참고 견뎠다

나는 고깃집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걱정 어린 눈초리와 한숨을 줄이기 위해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을 구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해도 참고 견뎠다

스트레스받는 직장 환경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된다며 기적수업의 용서를 적용하려 한 것이다

이런 나의 실수를 돌아보며 원인을 찾아보니

유명한 기적수업 교사가

‘평범한 삶 속에서 모범을 보이는걸‘

학생들에게 권장했는데

난 그의 말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가르침을 믿어서 피해를 보더라도

그 지식을 선택한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원망하느라

시간이 허비되고 불필요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러다 자신이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잊어버리고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하여 고통받는다)

그 유명한 교사가

기적수업의 내용을 잘못 가르쳤더라도

나 같이 그냥 따라 하는 수업 학생들은 대게

‘유명한 수업 교사니까 그의 말이 맞겠지’라고

따져보지 않고 따르게 된다

그리하여

’평범’한 직장에서 ‘모범’을 보이며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만두지 않는다

물론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

원치도 않고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적수업 해설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기적수업에서

형제를 거룩하게(죄 없게) 보라는 말은

육안에 보이는 인간의 형상을

거룩하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 형상의 환상 넘어

그리스도의 죄 없음을 보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에 걸려

자신을 물어뜯으려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팔을 내주라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보고

도망치라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형제를 거룩한(죄 없는) 존재로 보라는 말은

시공간 우주 안의 ‘형제‘를 거룩하게

보란 말이 아니다

형제의 몸이라는 허상 넘어

그리스도의 우주에 신과 하나로 존재하는

거룩한 형제로 보란 말이다

그러니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맞서지도 말고

견디지도 말고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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