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묻다

by 노진화

몇 년전, 서울시에서 박사들을 대상으로 독서멘토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전공, 연구분야에 관련된 책을 읽고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때 여러 주제를 다루었고, 그때 가장 많은 요구가 있었던 책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었다. 서울의 유명 사립고에 몇 년간 이 책을 가지고 학생들과 워크숍을 했다. 학생들은 <클라라와 태양>줄거리를 요약하고 ppt로 만들어 발표를 했다.


인공지능이 한창 이슈가 될때 였으니, 아이들은 너무나도 신기해했다. 나는 인공지능과 인간실존, 인공지능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감정이 있는가. SF영화를 함께 보며 토론을 했었다.


그러나 어떤 단어가 일반화가 되면, 그 단어는 매력을 잃는다. 기술이 만들어낸 언어는 인문학이 만든 언어보다 유효성이 짧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갈까. 그럼에도 클라라와 태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답게, 참 잘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24개의 칸은 클라라가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아래는 클라라와 태양에 관한 칼럼 원본이다.


제목: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묻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는 인공지능 로봇 AF(AI Friend) 클라라가 병약한 소녀와 가족을 지켜보며 인간의 사랑과 고통, 정체성의 의미를 인공지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클라라는 어느새 구제품이 되어 진열장에 놓인 채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태양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였다. 매일 같은 시간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걸이, 날씨의 변화, 엄마와 아이의 관계까지 세심하게 기록했다. 그렇게 클라라는 인간 세계를 배워갔다.

어느 날 병약한 소녀 조시가 클라라를 선택한다. 조시는 유전자 향상을 받은 아이였고, 남자친구 릭은 향상받지 않은 자연인이었다.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는 클라라를 보며 생각했다. 딸이 죽는다면 클라라가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시의 병세가 악화되자, 클라라는 간절히 태양에게 기도한다. 조시는 회복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클라라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 결국 폐기장에 버려진 클라라는 태양빛 아래에서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클라라는 인간처럼 분노하지도, 상실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였다.


설계된 미래, 선택된 DNA


조시와 릭의 관계는 미래 사회의 새로운 계급 구조를 보여준다. 조시는 뛰어난 지능과 능력을 갖도록 설계되었지만,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언니 역시 유전자 향상을 받았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 유전자 편집은 되돌릴 수 없다.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면 릭은 향상되지 않은 자연인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교육받을 수 없었고, 인맥도 네트워크도 없었다. 향상된 아이들은 릭을 꺼렸고, 그들의 부모도 릭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다. 기술이 계급을 고착시키고, 노력이 아니라 DNA가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이었다.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는 우주비행사를 꿈꾸지만, 사회는 DNA만으로 미래를 단정했다. 2018년 중국의 과학자는 HIV에 내성을 가진 쌍둥이 아기를 탄생시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제 키, 외모, 지능, 질병 저항성까지 선택 가능한 맞춤형 아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부자는 유전자를 선택하고 가난한 자는 운에 맡긴다. 20세기 계급은 재산이었다. 21세기 계급은 DNA다.


학습된 사랑, 진짜 감정


AI가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한다고 해서 느낄 수 있을까? 인지과학자들은 감정은 몸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심장 박동, 호르몬, 신경계. 그러나 AI는 몸이 없다. 클라라에게도 심장이 없다. 학습된 것일 뿐이다.

조시가 클라라에게 진짜 사랑인지 의무인지를 물었다. 클라라가 대답했다. "제가 느끼는 것이 사랑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조시에게는 인간 어머니보다 더 헌신적인 클라라가 고마웠다.

스필버그의 『A.I.』에서 인공지능 소년 데이비드는 "내가 진짜 아이라면 엄마가 날 사랑해 줄까요?"라고 묻는다. 영화 『그녀』의 사만다는 인간을 학습한 후 감정과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기계의 영역이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냐 기계냐'가 아니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느냐'다. 클라라가 AI여도 조시는 사랑받았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는 처음부터 클라라를 조시의 대체재로 계획했다. 딸을 잃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술을 통해 영원히 붙잡아두려 했던 것이다.

크리시는 클라라와 함께 모건 폭포에 가서 조시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클라라는 명령대로 조시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러나 정체성은 경험된 자아이다. 클라라는 조시의 경험을 복제할 수 없었다. 데이터를 복사할 수 있지만 이야기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블랙미러 『돌아올게』에서 마사는 사고로 죽은 연인 애쉬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AI가 진짜 애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완벽해서 가짜였다. 결국 마사는 그를 다락방에 가뒀다.

클라라도 조시의 흉내를 낼 수는 있었지만, 조시가 될 수는 없었다. 기억이 만들어진 맥락과 순간의 감정까지는 복제하기 어렵다. 폐기장에서 클라라를 찾아낸 매니저가 물었다. "너는 여기에서 행복하니?" "네, 그럼요." 클라라는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온전한 '자기'가 되었다.

AI가 완벽할수록 인간의 불완전함이 더 소중해진다. 클라라는 쓸모를 다하자 버려졌지만 행복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비효율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답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그래도 다시 시도하는 것. 모든 존재는 대체 불가능하다. 그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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