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느끼지 않도록
"너네 엄마랑 술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가 자주 하던 한탄이다. 생각해 보니 평생 두 분이 술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술 마시는 건 아예 본 적이 없고, 아빠는 명절에 형제들이랑 있을 때나 조금 마시는 정도였다.
- 아빠는 술도 못하면서 왜 엄마랑 술 마시고 싶었어? (주량이 소주 두 잔이다)
- 그냥, 밤에 치킨 한 마리 시켜놓고 맥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면 좋잖아. 속 얘기도 편하게 할 수 있고. 몇 번 하자고 했었는데 절대 싫다고 한 번을 안 해주더라고.
우리 엄마는 원래 말술이었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날엔 박스로 사다 놓고 마셨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나를 낳은 후 몸이 약해져 술을 전혀 못 마시게 됐다고 했다. 아빠 성격상 그런 엄마가 억지로 술을 마시길 바라진 않았을 거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술자리'가 주는 분위기를 빌려 '솔직한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가 소주를 마실 때 엄마가 물을 부어 마셔도, 맥주를 마시는 동안 보리차를 마셔도 상관없었을 거다. 몇십 년 동안 자영업을 하느라, 빚을 갚느라, 두 딸을 키우느라 제대로 못 나눈 대화를,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는지 조차 까먹은 진솔한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젠 엄마를 붙들고 술 마시자고 졸라볼 수조차 없어졌으니. 아빠는 아쉬움이 컸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한다. 그때 나랑 술 좀 마셔주지ㅡ하면서.
그래서인지 남편이 술을 마시자고 할 때면 속절없이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의 아쉬운 표정. 말끝에서 묻어나는 씁쓸함.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컨디션이 좋으면 한두 잔은 같이 마신다. 정 마시기 싫을 땐 소주 따르듯이 물을 따라 마신다. 남편이랑 같이 짠-도 하고, 평소에 듣기만 하는 남편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들어준다. 야식도 물론 안 좋아하지만, 남편이 원하면 가끔은 같이 먹는다. 왜 술을 마셔야만 속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소주 없이 닭발을 먹으면 왜 안되는지 아직도 난 100프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100프로 이해하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주는 게 이 관계에 훨씬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한다. 아빠가 느끼는 그 아쉬움을, 내 남편은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