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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정 사전

04. 그리움

구멍과 함께 산다

by 채채

ㅣ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애타는 마음

지하철 맞은편에 엄마와 딸이 앉아 있었다. 엄마는 50대, 딸은 20대 정도 되어 보였다. 딸은 잠이 오는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하며 졸고 있었고,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노선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맞잡은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한참을 지나 내릴 때가 되자 딸의 손을 살짝 흔들어 깨웠고, 두 사람은 함께 지하철을 내렸다.


이런 순간에 그리움이 찾아온다. 내 옆자리에도 엄마가 타고 있으면 좋을 텐데.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애타는 마음이 그리움이란다. 하지만 솔직히 애가 타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 안에 커다랗게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모기에 물려 부풀어 오른 살갗에 십자가 표시를 내는 마음으로 그 구멍을 만지작댄다.


아직 여기에 있구나.

1미리도 작아지지 않았구나.


ㅣ구멍과 함께 산다

처음엔 친구의 결혼도 축하해 주기가 힘들었다. 결혼식을 상상하면 엄마가 떠올랐다. 마트에서 일하던 엄마가 생각나서 장 보러 가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엄마가 죽으면서 시작되는 드라마는 보지도 못했다. '주인공은 어릴 때 엄마를 잃고'로 시작하는 스토리를 마주치면 화부터 났다. '20대인 나도 힘든데 어린아이한테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힘들 줄 알고 쉽게 말하는 거지?' 애먼 티비만 죽어라 노려봤다.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그래서 난 이 구멍을 빨리 채우고 싶었다. 그게 연애든, 일이든, 술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뭐든 쏟아붓고, 뭐로든 땜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구멍에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어제처럼 사이좋은 모녀를 마주치는 날, 시어머님이 내 등을 쓸어주실 때, 친구 결혼식에서 친구의 어머님과 악수를 할 때, 그 구멍을 만진다.


아직 여기에 있구나.

1미리도 작아지지 않았구나.


앞으로도 이 구멍을 메꾸고 싶지 않다. 엄마가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두고 싶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평생 그리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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