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언젠가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급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주변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을 했다. 어차피 이 남자랑 살 거라면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이렇다.
1. 잠이 잘 온다.
우울증 약을 먹어도 잠이 잘 오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건강한 상태의 나는 하루 7-8시간 통잠을 잘 수 있고 밤 11시~12시쯤이면 잠에 든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때는 새벽 2시까지 깨어있을 때가 많았고 잠이 들어도 1시간에 한 번은 눈이 떠졌다.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친구(현재 남편)만 있으면 낮이고 밤이고 잠이 잘 왔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면 눈물이 펑펑 났다. 그 긴 밤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날은 남자친구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이불을 턱 밑까지 덮어주고 따뜻한 차를 끓여 먹였다. 별빛이 뿌려지는 듯한 조명을 켜놓고 어린아이 재우듯 실시간으로 지어내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고 훨씬 컨디션이 좋았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니 이 남자랑 있을 때 내가 정말 안정감을 느끼는구나ㅡ하고 확신을 가졌다.
2. 가족들 앞에서만 보여주는 내 모습
그간의 연애에선 가족들과 있을 때 같은 모습을 굳이 보여준 적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까진 알고 싶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바깥에서는 털털하지만 차분한 편인데, 집에서는 엉뚱한 개구쟁이 같을 때가 많다. 특히 춤은 집에서만 춘다. 신기하게도 지금 남편에게는 연애 때부터 그 개구쟁이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같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삑사리가 나도록 노래를 부르고, 얼굴을 찌그러뜨리는 이상한 표정도 짓고, 요가하면서 배운 특이한 동작도 엉거주춤하게 보여주고. 남편은 그럴수록 나를 더 귀여워하는 지경이었다. 가까운 사이에 유아 퇴행적인 면을 보여주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가족이 된 기분이 들었다.
3. 챙겨주고 싶다.
남편은 나에 비해 회사 생활을 즐겁게 했다. 회식도 좋아했는데 상사들이 해주는 조언이나 옛날이야기를 듣고 업계 동향을 알아가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나에 비해 집안이 잘 정돈이 안 돼있었다. 주방은 오랫동안 안 쓴 티가 났고, 빨래도 개지 않고 건조대에 널어둔 것들을 다시 집어서 입었다. 옷장 안엔 옷이 개어져 있는 게 아니라 쌓여 있었다. (오빠는 지금도 개어 놓은 것이라고 우기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그런 걸 보면서 '아 이 남자는 자기 관리(?)가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난 빨래랑 청소 좋아하니까 같이 살면서 오빠 것도 내가 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간들이 365일 치가 넘기 쌓여 연애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오빠 이번 봄에 부모님 뵈러 한 번 갈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