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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기분 좋은 변수가 생기는 것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들

by 채채

긴 연휴가 끝나가던 지난 토요일, 남편이 연극을 보자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래!" 이 한 마디를 내뱉기가 어려웠다. 어제 하루 종일 자면서 쉬었는데 왜 이럴까.


남편이 뭘 하자고 했을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기분이 드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연애를 할 때도 자주 그랬다. 특히 무기력할 때 그랬다. 무기력은 내게 무서운 조교 같은 존재다. 이걸 하고 싶다고 해도 혼날 것 같고, 저걸 하고 싶다고 해도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망설이던 순간 마음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들을 굳이 붙잡아보면 이렇다.


'연극? 명절에 돈 들어갈 데가 많았는데 또 연극을 봐도 될까?'

'그렇게 돈 들여서 봤는데 재미없으면 너무 짜증 날 것 같은데'

'대학로까지 가야 하나? 좀 오래 걸리지 않나?'


이제와 텍스트로 적어보니 그때 내 마음은 연극을 보고 싶은 쪽에 기울었던 게 맞다. 긴 연휴였지만 시댁과 친정에 다녀오느라 남편과 둘이 재밌게 놀진 못했었다. 하지만 돈 걱정, 백수가 이래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 때문에 무기력감에 빠져 우물쭈물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때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다.


대신, 답을 기다리는 남편에게 겨우 이렇게 답했다.


"미안해. 연극을 보고 싶은지, 보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어."

하지만 남편은 짜증 난 기색 하나 없이 말했다.

"보기 싫은 것만 아니면 나랑 연극 보자. 데이트 하자, 오랜만에"

예전에 남편과 비슷한 문제로 대화를 나눴을 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싫은 것만 아니면 뭐든 해보자고. 너는 할지 말지 망설이고 고민하다가도 막상 하면 재밌어했던 적이 많다고.


그래서 결국 남편이 고른 연극을 보러 갔다. 그냥 따라나섰다. 결론은? 정말 재미있게 보고 왔다. 오랜만에 사람 많은 동네에 가서 처음 보는 카페도 가고, 유명한 피자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데이트하는 기분을 내니 좋았다. 연극도 처음 접해보는 구성이라 신선했다. 1부는 배우들의 공연을 보고, 2부에서는 기획자, 배우들과 함께 맥주 타임을 갖는 작지만 알찬 공연이었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연극을 보러 갔을까? 그럴 리 없다. 연극에 대한 정보를 한도 끝도 없이 찾아보다가 시간이 늦었다며 집에 콕 박혀서 우울해했을 것이다. 무기력함과 자기 검열을 이겨내게 해주는 것. 기분 좋은 변수가 생기는 것. 그런 게 결혼이란 걸 알려준, 아니 그런 결혼 생활을 만들어 주는 남편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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