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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해 본 남자랑 결혼할 거야

= 지금 내 남편

by 채채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최소한의 기준이 있었다.


1. 허세 없는 사람

2. 성실한 사람

3. 자취해 본 사람


세 번째 기준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언젠가 좋아하는 남자와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계란 코너 앞에 섰다. 내가 얼마 전에 샀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여기 계란 너무 비싸다, 그치?"

"그래? 계란이 원래 얼만데?"


그때 머리가 띵했다. 자취를 안 하면 모를 수 있겠구나. 쌀이 10kg에 얼만지, 자른 대파가 흙 묻은 대파의 몇 배인지, 빨래에서 좋은 냄새가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룸 한 달 전기료가 얼마인지. 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지만, 그 순간 그 친구와 내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꼈다.


부동산에 전화해 작고 소중한 예산을 수줍게 내뱉을 때 민망함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개미굴 같은 건물에 들어가 상상보다 더 작고 허름한 방을 마주할 때의 실망감도 그렇다. 나에게 자취란 사람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걸 깨닫는 사건이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빨래도, 청소도, 장을 보지 않으면 화장실 휴지도 없는 게 자취다.


자취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군가 집안일을 더 많이 했을 때 고마움을 더 크게 느끼지 않을까? 결혼 생활과 신혼집에 대한 환상도 작지 않을까? 신축에 깨끗하고 편한 위치에 있는 집은 예산을 크게 벗어나고, 예산에 맞는 집은 기대에 크게 어긋난다는 걸 이미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아쉬운 집에 살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않을까? 자취를 해봤다고 다 내 마음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경험이 있는 사람과 사는 게 훨씬 안정적일 거란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자취를 하던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는 집안일에서 역할을 따로 나누지 않는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집을 돌보는 게 룰이라면 룰이다. 요즘 일을 쉬고 있는 내가 집안일을 대부분 하고 있다. 하지만 주말엔 남편이 밥을 차려준다. 남편은 매일 내게 빨래와 청소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주말마다 요리를 해주는 남편에게 늘 감사해한다. 역세권도, 아파트도, 신축도 아니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이자 부담으로 살 수 있는 투룸에 살자는데 의견을 쉽게 모았다. 각자 자취하면서 쓰던 물건 중 멀쩡한 건 그대로 들고 와서 쓰는 중이다. 침대, 행거, 이불, 선반, 협탁, 식탁, 의자 등등... 여기저기 삐그덕 대는 곳이 많지만 남편은 이렇게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나와 사는 게 꿈같다고 말한다. 낯 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나는 그저 웃을 뿐이지만, 그 순간 내 마음에 얼마나 훈기가 도는지 남편은 알까.


현실에 맞춰 살되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우리의 공간을 당연하게 돌볼 줄 아는 사람. 서로를 위해 가사 노동을 하고 서로에게 충분히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자취해 본 사람을 원했던 내 마음엔 이런 소망이 담겨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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