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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우유 Aug 20. 2024

영화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

연기력과 연출력의 충돌에 관하여 


1.

 <나의 아저씨>의 주변에 무관심하면서도 어딘가 정의감 있는 박중훈 부장을 연기한 고 이선균 배우의 연기가 기억에 아직까지 깊게 자리해 있다. 사람 냄새나는 연기에 탁월한 고 이선균의 또 다른 연기를 기대하며,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을 관람했다. <탈출>은 아버지가 딸 유학길을 데려다주는 길에 인천공항대교를 지나는 도중에 겪는 미스터리한 재난을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시 이선균의 연기력은 탁월했다. 부성애와 충성심 사이 갈등을 과하지 않게, 전작에서 보여줘 왔던 이선균의 연기처럼 신파를 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해 내었다. 


 <탈출>은 안개 낀 인천공항대교 위에서의 재난물이라는 소재로 대중성을 타깃함과 동시에, 정부 주도 하에 진행된 비밀 군수사업 설정에서 진부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덱스터(대표작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CG를 진행하여, 몰입감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관람 가능했다. 또한, 필자는 특수 상영관 4DX에서 관람하여 작품을 배로 즐길 수 있었다. 유독 더운 올해 여름철에 긴장감 넘치는 블록버스터를 관람하니 더위를 잠깐이나마 잊게 해 준 작품이다.  



     

2.

주연 이선균의 입증된 연기력과 조연 미스 캐스팅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선균의 연기력만 보고 이 영화를 보고 갔을 정도로 필자는 이선균의 연기력을 신뢰하고 있었고, 영화 내에서도 잘 보였다. 그의 연기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서사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이자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 대교 위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해도 딸아이의 유학길이 막힌 것보다 자신이 보좌하는 후보의 정치 생명이 우선인 인물. 매체에서 흔히 접하는 인물 설정임에도 이선균의 설득력 있는 연기에, 관객들은 그 인물의 진부함에 타당성을 찾는다. 


 그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동시에, 서사를 끌어가는 핵심 인물 '양 박사'를 맡은 김희원의 연기에 아쉬움이 커진다. 재난의 시작이 되는 군사용 실험견을 통제하는 기기의 오류가 발생하고, 양 박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본인의 목숨만 챙기기에 급급하다. 김희원 배우의 연기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압박 하에 연구를 진행했다는 억울함, 책임 연구원 본인조차도 예견하지 못한 재난을 마주쳤을 때의 당혹감 그리고 재난이 걷잡을 수 없게 커졌을 때의 무력감은 그저 겁먹은 연기로 대체된 점이 문제가 된다. 초중반까지는 재난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와 같은 역할을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주연 그리고 양박사보다 서사 비중이 적은 조연들 뒤에 병풍으로 배치되기만 한다.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방법을 강구하는 인물들 뒤에서 나 몰라라 서 있으며 한숨만 쉰다. 그러나 배우 연기력 이전에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로 보인다. 이는 뒤에서 다시 풀어보겠다. 


몰입감 유지증진시키는 CG

 <탈출>은 장르가 블록버스터 재난물인 만큼 이를 뒷받침해 주는 뛰어난 CG기술이 필요한 영화이다. 이 기술이 필요한 지점은 크게 공항대교 붕괴와 군사용 실험견이다. 두 지점은 관객 몰입을 유발하는 요소이며, <탈출>은 이에 성공했다. 극 중 주연만큼 비중 있는 군사용 실험견의 우두머리인 '에코나인'의 서사와 감정선을 풀어내는데 CG는 무리 없었다. 좀비, 외계인 혹은 귀신이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난폭한 동물이 주는 위협을 공감시켜야만 했던 <탈출>은 ‘에코나인’의 깔끔한 CG와 모성애 설정을 통해 난관을 넘어갔다. 


신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한국 재난물그리고 그 스토리

 재난에서 딸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국의 다른 재난 영화물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에서도 쉽게 보이는 설정이다. 여기에 각국의 문화권 혹은 감독의 개성이 더 해지며 조금의 변주가 주어질 뿐이다. <탈출>의 아버지는 신파의 선을 넘지 않았다. 다만 그 주변부 인물에게 신파가 옮겨 갔다. 생존자 무리 중 하나인 노부부의 설정과 대사는 신파 그 자체이다. 거기다 할머니 역을 맡은 예수정은 <부산행>에서도 좀비에게 물려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었다. 치매를 앓는 부인을 두고 가지 못하고 버스에 남아 같이 죽음을 맞는 할아버지는 극의 전개 속도를 잡아먹는다. 이와 같은 설명적이고 단편적인 캐릭터의 등장은 재난물의 핵심 요소인 텐션과 스피드를 완화시키는 악영향을 주었다. 



3. 

연기력과 연출력의 충돌

 <탈출>에 등장한 배우 모두 연기력 측면에서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러나 <탈출>에서 부여한 역할에는 맞지 않는 배우가 몇몇 있었다. 이는 배우 연기의 문제가 아닌 감독의 연출력의 부족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극 중 몰입도를 저해한 배역으로 양 박사가 있다. 기존의 장르불문 찰떡 연기를 소화한 김희원 배우는 공항대교 재난의 시발점이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극비리에 진행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 연구원이었으며, 재난 발생 당시에 실험견을 통제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어울리지 않는 장발에 안경을 착용하고 배타적 성격과 까칠한 말투로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선균과 언쟁을 벌이며 등장한다. 이런 양 박사의 전사를 알지 못한 채 재난 상황에 던져진 관객은, 이 캐릭터를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초, 중반부에서는 실험견 통제 시스템을 내장한 컴퓨터를 잃어버렸다며 망연자실하게 죽음만을 예견하는 모습을 보인다. 후반부로 가서는 주연을 비롯해 다른 조연을 따라다니기만 하는 무의미한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캐릭터 낭비는 엔딩에서 극대화된다. 붕괴하는 대교에서 탈출한 후 언론에 진실을 고발하는 이선균을 따라서, 구조 직전까지 자신의 부당한 연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던 인물이 카메라 앞에 선 후, 정부 주도 하에 이뤄진 실험이 재난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정의로운 척 폭로한다. 어떠한 사건 혹은 갈등 없이 초반과 후반의 캐릭터성이 비약적으로 바뀌었으며, 빈약한 엔딩을 일부 극적으로 만들어 주고 퇴장한 것이다.

 


 양 박사를 비롯해 일부 인물들의 설정은 단편적이었고, 이는 막강한 스케일과 탄탄한 스토리를 보장하는 외국 재난 영화를 많이 접해 온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지 못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자 차기 대선후보, 그리고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인천공항대교 재난의 시발점인 정현백에게 어떠한 전사와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앞서 언급한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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