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의 할아버지는 대를 이어 구리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농부였다. 조상 대대로 남양주군 구리읍 교문리 일대에서 다소 많은 농토를 소유했던 할아버지는 구리읍이 1986년 남양주군 구리읍에서 구리시로 승격되어, 도시 인프라며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자,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 한 사람의 졸부가 탄생한 셈이다.
졸지에 벼락부자가 됐다고 해서 자신이 평소 꿈꾸었던 일들이 성취되고, 짓누르고 있던 근심 걱정들이 사라지고, 여유롭고 풍요로운 행복한 시절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일대가 개발되기 오래전, 앵두의 아빠는 2남 3녀 중, 큰아들로 태어나 고된 농사일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그는 복덕방 경리였던 앵두 엄마와 결혼한 후, 분가해 교문리에서 세탁소를 하고 살았다.
앵두엄마는 결혼 전 처녀시절, 복덕방에서 사장과 그 지인들, 손님들 커피 심부름 할 때 귀동냥으로 그 일대가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라는 정보를 늘 접했다.
실제로도 땅값은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올라가더니 마침내 똥 마려운 사람처럼, 어디가 가려운 사람처럼 들썩거렸다.
그녀는 자취방 근처 세탁소에 이불이며 두꺼운 옷가지들 세탁을 맡겨 왔는데, 세탁소 총각이 50마지기 논농사를 짓고 있는 교문리 농부의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이야 부동산 중개업 사무실들이 깔끔하지만, 당시에는 복덕방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놀러 와, 바둑이나 점심내기 화투를 치면서, 매운 담배를 피워 오소리굴의 오소리를 잡으려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여자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온갖 소문과 정보가 떠도는, 머리에 롤러를 돌돌 말고, 껌 쫙쫙 씹으면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손발톱을 다듬던 옛날 미용실과 같은 곳이었다.
앵두엄마는 1964년에 강원도 영월 산골에서 태어나 1983년 2월 13일 설날 때 귀성한 동네 친구를 따라 '말만 듣던 서울로' 입성하였다.
그녀는 상경해서, 중랑구 면목동 용마산 자락에 옹기종기 몰려 있는 2층집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같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고향친구에게 며칠 신세를 질 계획이었다.
앵두엄마는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문 장신에, 잘록한 허리에, 가슴과 엉덩이는 앞 뒤로 툭 튀어나온 아주 육감적인 몸매의 어린 여자였다.
서울 도착한 그다음 날, 낮에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친구의 동거남이 자취방에 돌아와 앵두엄마를 덮쳐버렸다.
어차피 고향을 떠나오기 전, 같은 동네 남자 친구에게 주고 온 처녀였다. 그래서 '에이 재수 없어 똥 밟았네!' 하면서 무작정 흘러 온 곳이 이곳 교문리였던 것이다.
복덕방 사장은 고맙게도 그녀에게 직장과 월세 2만 원, 전기, 수도요금 5천 원에 자신의 집, 출입구가 다른 1층 구석진, 부엌 딸린 방 한 칸을 내주었다.
그 집 2층 슬라브 옥탑방에는 서울시와 구리읍을 오가는 광역버스 회사에 다니는 갓난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일부러인지, 깜박했는지 문단속이 허술했던 어느 날 밤, 항상 늦게 퇴근하는 2층집 마초 남자가 그녀의 방문을 밀고 들어온 후부터는, 한지붕의 아슬아슬한 내연녀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2년 후, 2층집 언니가 차츰 도끼눈을 뜨고 자꾸 귀가가 늦어지고, 쉬는 날에도 사라지는 자신의 남편을 감시하자, 그녀는 이 생활을 청산하고자 세탁소 총각을 살갑게 대했다.
그리고는 그 세탁소 총각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어들여 바로 동거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주식 흰쌀밥인 동거남과 한 달에 두세 번 짜장면 별식인 유부남을 거느린 생식기가 발달된 거대 골반의 제1대 여왕벌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 1월 매서운 한파에 정식 혼인을 한 이 부부는 시아버지가 마련해 준 시댁 근처 신축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새 세탁소를 열었다.
1987년 1월 15일 마침내 겨울 정기를 받고 태어난 서구형 글래머의 정녀, 앵두가 태어났다.
앵두엄마의 바람처럼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구리읍이 구리시로 승격되고 1986년부터 본격적인 도시화가 시작되자, 앵두아빠는 시댁에서 돈을 끌어와 집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며느리를 예뻐한 시아버지가 부동산 일을 배운 며느리의 안목을 믿고 그녀에게 집장사 밑천을 대 준 것이었다.
돈을 크게 벌자, 앵두아빠는 집장사 때문에 한동안 등한시하였던 부부세탁소를 때려치우고, 구리시와 가까운 서울 광진구에 77평 아파트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여자 대학 자취생을 들인 후, 월 50만 원의 용돈을 주고 첩으로 앉혔다. 그리고 아예 거기에서 신접살림을 또 차렸다.
이리하여 안방에는 앵두엄마가 안방 화장실과 욕실로 연결된 커넥션 룸 아기방에서는 앵두를 키우고, 와인바 옆의 방에서는 여대생이 동거하게 되어, 1부 1처 1첩의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탄생하였다.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던 여대생의 영어단어가 섞인 유식한 말들이 알 듯 말 듯 아리송하였지만, 그 익숙하지 않은 세련된 모습이 ABC에 몽롱해진, 겉멋만 잔뜩 든 교문리 토박이 유부남을 홀려버린 것이다.
2년 후, 앵두엄마가 아들을 낳자, 동거 여대생은 잘못하다간 창밖의 아름다운 한강변의 경치를 더 이상 구경할 수 없겠구나 하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첩 알바 여대생도 아들 하나만 낳기로 죽자 살자 교미한 나머지, 졸업 후 바로 아들을 낳아 마음 놓고 살게 되었다.
앵두의 할아버지는 한지붕에 첩을 들여 배다른 자식을 본 앵두 아버지를 짐승 보듯 하였고, 본처 자식인 앵두와 큰 손자는 애지중지하였다.
그러나 첩실 소생의 둘째 손자도 귀여웠고 말이 터지자, 그 손자도 키우기로 하고 대졸 알바 첩실에게는 따로 아파트를 사주어 내보냈다.
알바 첩녀는 곧 대졸 처녀로 변신하여, 잘 나가는 사업가와 결혼해 무탈하게 살았다.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 새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은, 옛날 자기 집을 찾아와 앵두아빠와 자고 가곤 하였다.
남편이 장기 해외출장이라도 가면 그녀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옛날 집에서 알콩달콩 살다 가곤 하였다.
또한 앵두엄마와 그녀는 언니 동생하며 무척 친밀했기에 앵두는 그 여자를 작은 엄마라고 부르며 컸다.
2006년 8월 15일, 신혼 첫날밤, 이고녀는 그토록 사모했던 오빠 전등남과 잠실 롯데호텔에 들었다.
법적으로 아내자리를 빼앗긴 이고녀였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전등남의 정정당당한 아내이자 "우리 엄마"의 며느리가 된 것이다.
이미 전주식당에서 주거니 받거니 얼큰하게 취한 전등남은 호텔 룸에 들어가자마자 씻는 둥 마는 둥 침대에 널브러졌다.
이제부터는 이고녀의 시간이었다. 25년 전, 시어머니인 공주는 자신의 어머니인 또또 할머니로부터 성교육을 받았고, 며칠 전, 이고녀에게 이를 그대로, 하나하나 확실히 전수해 주었다.
"오빠 자? 자긴 멀자. 난 알지롱 호호"
이고녀는 혼자 묻고 혼자 답 하며 전등남의 겨드랑이 간지럼을 태웠다.
"야! 오빠 좀 놔둬. 귀찮게 하지 말고 잠 좀 자자"
"좋아 오빠,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내게도 다 방법이 있지! 쿨쿨 자든지 말든지 오빠 맘대로 해" 하고는 걸치고 있던 잠옷을 훌러덩 벗었다.
알몸으로 곧장 침대로 뛰어든 이고녀는 오빠 전등남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였는데 그녀의 일방적인 싸움으로 싱겁게 끝났다.
전등남이 밀치려고 하면 이고녀는 가슴을 들이댔고, 발이 나오면 다리를 벌려 밑을 가져다 대고 포개버렸다.
"이래도 항복 안 한다고? 내겐 엄마들이 전수해 준 필살기가 있지!" 하며 전등남의 남성을 잡고 덥석 물어버렸다.
"악!"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야! 그걸 진짜로 물어버리는 사람이 어딨어? 잘리면 네가 책임질래? 이 바보야!"
"그래 책임진다. 내 거 내가 무는데 누가 머라남! 우리 엄마랑 진짜 엄마가 물라고 해서 물었는데 아파? 내가 호 해줄 게 가만있어 봐" 하고는 호호 불었다.
"이야! 신기하다! 이거 요술방망이다! 드디어 내가 이 방망이의 주인이 되다니 진짜 이건 현실?
오빤 손오공이야? 여의봉처럼 쑥 늘어났네. 정말 딱딱해. 그런데 이걸 내가 넣어야 한다고? "
이고녀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더니 손가락으로 요술봉을 톡 하고 튕겨보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를 참지 못한 전등남이 이고녀를 눕히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계곡 밑에서는 순진무구한 청량한 솔향기가 피어났다.
그 향기는 자극을 주면 은은해졌고, 점차 짙은 신비로운 줄사철 꽃향기로 변했으며, 클라이멕스에 도달했을 때에는 앵두처럼 짙디 짙은 멀구슬 보라색 꽃향기로 변했다.
라비의 이고녀 첫날밤 이야기에,
"푸어박 한국 여자들 밑 말이야. 그 버자이너에서 평상시에 정말로 솔향기가 나?" 제니가 라비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 듯 참견하였다.
"나지 왜 안 나! 꼭 한국 여자들뿐이겠어? 모든 여자들은 독특한 체향이 있어. 여자들은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워. 그런데 좋은 향기는 자기 몸을 아끼는 여자에게서만 나는 거야"
내 대답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 갈 길 멀다. 라비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그러자 그러자"
파과의 꽃을 동반한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전등남이 이고녀에게 다짜고짜로 달려들었다.
"아악! 오빠 나 못해!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한다고!" 밑에 깔린 이고녀가 전등남의 등을 통통 두드렸다.
"아휴 쓰라려! 우주 말로는 섹스가 되게 재밌댔는 대, 쓰리기만 하네. 오빠, 내 거기가 벗겨졌나 봐"
"연고나 빨간 약 발라줄까?"
"응 그래 발라줘"
롤러백에서 구급약 키트를 커낸 전등남은 다리를 쩍 벌리고 자기 아래에 소독약을 발라주기를 기다리는 이고녀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전등남은 한 손으로 이고녀의 꽃잎을 벌리고 다른 한 손으로 빨간 약이 잔뜩 발라진 소독 막대를 질 속으로 밀어 넣어 진짜로 빨간 약을 발라 버렸다.
"으아! 오빠 이건 아닌데! 빨리 닦아 빨리!"
"좀 참아. 녀석아! 엄살부리기는. 꼼꼼히 몇 번 더 발라야 해!"
"조금만 발라. 너무 쓰리다!"
"여기가 좀 이상하다. 여긴가?"
"카메라 플래시 켜 봐. 아참! 오빠 건 플래시 기능이 없지. 이걸 켜서 잘 보고 발라. 알았지?" 하고 이고녀는 자신의 삼성 애니콜 고급형 모델 휴대폰을 건넸다
"아! 오빠 진짜로 아프다고! 잘 좀 보고 발라라. 오빠 손 치워 봐! 내가 벌릴게.
보여? 안 보여?
이래도 안 보여?"
"자알 보이네. 찢어진 처녀막이 이런 거구나. 난 처음 봐"
전등남이 찢어진 이고녀 질구 안쪽을 조몰락조몰락거리자,
"앵두는 오빠 총각 따먹었다고 으스댔는데 오빤 걔도 못 따먹고 도대체 숫기는 어디다 둔 거야? 걸레 같은 게 혼인신고부터 하다니 아휴 분해"
"태희야 미안해. 오빠가 사과할 게. 사실 난 앵두에게 성교육받았어"
"어이구 잘 나셨어요. 그래서 날 이렇게 발기발기 찢어놓은 거야? 앞으로 부인은 나야! 나라고! 앵두 걘 절대 안 돼! 알았지?"
"알았어"
"다 발랐어?"
"아니"
"아이! 다 닳겠다. 그만 좀 만져!"
"너 그러면 앞으로 안 만진다!"
"그럼 만져! 쪼꼼만!"
"딱 한 번만 넣어 볼까?"
"아이참! 그래 넣어! 쪼꼼만!
대신 빨리 끝내야 해.
오빤 아파 죽겠는데 아기처럼 자꾸자꾸 보채네"
"그게 내 맘대로 되냐! 그리고 남길 걸 남겨야지 이걸 쪼금 남기라는 거야?"
"그럼 오빠 맘대로 해. 다 넣든지"
"한다!"
"안돼! 잠깐만!
오빠야 기다려라. 나 오줌 좀 싸고 올게. 갑자기 오줌이가 마렵네 헤헤"
전등남은 앵두가 자기한테 줄 것을 이년, 저년, 이놈, 저놈에게 단체에게 줬다는 사실만은 비밀에 부쳤다.
이렇게 둘이는 찢긴 처녀막에 빨간 약 바르기 병원놀이를 하면서 첫날밤을 보냈다. 결국 그들은 3박 4일의 제주도 신혼여행을 포기하였다. 이튿날 이고녀가 드러누웠기 때문이었다.
2006년 7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앵두는 작은 엄마라고 부르고 따랐던 아빠의 아이-앵두의 배다른 동생을 낳은 아빠의 애첩 소개로 한인타운에서 한식 바비큐 식당을 하는 숯불구이집에 방 하나 월 800달러에 세 들었다.
작은 엄마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LA 현지 교민이 한인타운 내 단독주택에서 "숯불 구이집"을 하고 있었는데 앵두는 방 하나를 렌트하여 그분 식구들과 같이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앵두는 그 식당 주인집 사장님 부부를 편하게 이모님, 이모부님이라고 부르고 친하게 지냈다.
앵두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명문 UCLA 부설 어학원 입학에 필요한 여권과, UCLA 입학허가서 I-20, 통장잔고증명서 등을 가지고 미국대사관에서 F-1 학생비자를 받는 등 천재 오빠 덕분에 무엇이든지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전등남은 정작 자신은 장롱면허이면서도, 이제는 여자에게도 운전면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앵두가 스카이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전면허증부터 취득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국제운전면허증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앵두는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운전면허증과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미국에서 1년 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다. 차가 없으면 미국은 감옥이나 진배없다. 두 발이 있어도 무용지물, 움직일 수 없는 이상한 나라가 지구상에서 제일 풍요롭다는 미국이다.
식당집 이모님은 앵두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미국 신용사회에서 필요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체크카드를 발급받게 해 주었으며, 친엄마와 작은 엄마가 송금해 준 돈으로 1만 달러짜리 현대 액센트 경차를 사주었다.
식당집 이모님은 앵두에게 흑, 백, 히스패닉, 메스티소, 삼보와 동양인 등 지구상 모든 남자들이 위험하며, 특히 우락부락한 사람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 말에 겁이 난 앵두는 갑자기 요조숙녀로 돌변하여 호적상의 남편인 전등남의 관리에 전념을 다하였다.
일단 앵두는 어머님, 아버님, 할머님 해 가면서 날이면 날마다 한국 아침시간에 안부전화를 드리기 시작했다.
반면 호적상 남편 전등남에게는 아예 전화조차 일절 하지 않았다. 앵두는 이고녀가 자신의 부재중 굶주린 전등남을 분명히 덮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설령 전등남과 이고녀가 연애를 한다 해도, 자신은 변태쟁이들을 피해 멀리 미국에 있는데, 두 사람을 옥죄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전등남 뒤에서 버티고 있는 시댁 어른들 때문이었다.
그러자 애가 탄 전등남이 몰래 앵두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호적상 자기 처인데 더군다나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앵두에게 어찌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또한 냉랭했던 호적상의 시부모와 할머니도 국제전화도 한두 번이지, 날마다 해대니 자신들의 핏줄을 잉태한 어린 19살 앵두에게 차마 모진 말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집안 주도권은 시어머니와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앵두는 주로 시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죽자 살자 매달렸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시어머니나 시할머니는 앵두와 통화를 하다 이고녀에게 들켜 황급히 전화를 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앵두는 시어머니나 할머니 옆에 냉랭한 시아버지가 계시는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앵두는 지난 6개월 동안 헌신적인 이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 한국에서 그토록 문란한 여왕벌이었던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얌전한 숙녀로 변했을까.
그 원인은 환경이었다. 아파트를 얻어서 혼자 살았다면 앵두는 너덜거리는 걸레가 되었을 것이다.
식당집 이모님이 단독주택에서 앵두를 저렇게 껴잡고 있으니 안전하였고, 1층 식당일을 틈나는 대로 도와드리니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고, 외로울 틈이 없었다.
원래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 출신들 중, 혼자 외롭거나, 자유섹스가 가능한 주거환경이라면 걸레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들 않은가.
앵두는 홍콩,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서 온 얘들하고 하자니 가소로웠고, 흑인이나 백인들하고 하자니 무서웠다. 또한 언어적인 장벽도 한 몫하였다.
그리고 이모님은 '작은엄마'와 달라서 매우 엄격했다.
이모님은 미국에서 남자들과의 성교 중, 흥분한 남자들이 파트너의 목을 졸라 죽이는 성행위 중 질식(EA) 사고나, 사도마조히즘(S&M 피학대음란성행위증)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매년 수백 건이나 발생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니 천하의 앵두라도 배란기나 생리 전후에는 흑백 딜도를 가지고 놀면서 조신하게 기죽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행동과 태도가 변하자,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시댁 어머니와 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자 앵두는 가짜 임신으로 뻥을 쳐 야기된 이 사태가 겁이 나기 시작했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서 갑자기 진짜 임신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전등남을 최대한 빨리 미국에 오라고 불렀다. 그녀는 가정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그때 전등남은 대학을 1년 조기졸업하여, 스카이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2년째 밟고 있었고 그 석사과정도 곧 마칠 예정이었다.
그는 앵두의 명령도 받았겠다 최대한 서둘러서 앵두에게 가야만 했다. 여자들이 화장지 뽑아서 똥 싸러 가는 게 아니고 오줌 싸러 간다는 사실을 처음 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가르쳐 준 앵두였으니 오죽 보고 싶었겠는가.
마침 한국천문연구원은 칠레 코킴보 지역 세로 토롤로 산 정상에 있는 범미주 천문대(CTIO)를 포함한 천문연구 선진국들의 남반구 관측소들과의 밀접한 교류를 막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2006. - 2007년경의 한국천문연구원은 남반구 우주 관측 천체망원경 설치를 위한 초석을 놓으려고 그 준비에 분주했던 때였던 것이다.
이번에 전등남은 그 일원들의 막내 연구원으로서 칠레 안데스 고지대에 위치한 토롤로 천문대에 3개월 동안, 가 있을 예정이었다.
앵두 때문에 애가 탄 전등남은 2주 정도 빨리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여 앵두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작정하였다.
그런 다음,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일행들과 합류하여 칠레 산티아고로 떠날 계획이었다.
임신 중인 이고녀는 매우 불안하고 심란하였다. 혹시나 전등남이 또 앵두에게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렇다고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앵두 뱃속에든 자기 아이 때문에 엄마도, 할머니도 눈감아 주시는 것 같아서, 하루는 난감한 고민을 가족 앞에서 이야기했다.
"아가. 멀 고민 해? 네가 부딪혀서 해결해야지. 벌써 잊었어? 난 그 손자 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겨우 성과 이름과 출생내력만 알려 주고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고아로, 머슴으로, 천사 같은 공주를 만나 이 가족을 이루기까지 고생을 감내한 자신이었다.
그래서 딸 삼은 며느리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안타까운 심정들은 이해는 되지만 이제는 며느리를 위해서도, 앵두와는 남으로 지내야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아빠와는 좀 달라서, 괘씸한 큰 애와 싹수 노란 앵두는 그렇다 쳐도 그 뱃속에 든 아기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하는 인간적인 고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착한 이고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 앞에서 더 이상 질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직접 해결하라는 아빠의 응원에 힘입어 앵두와 정정당당한 결투를 하려고 전등남에게
"오빠 핸폰 좀 줘봐. 나 좀 볼 게 있어"
"멀 보려고?"
"해결해야 할 게 있어"
설마 어른들 다 계시는데 앵두에게 해코지는 못 하겠지 하는 마음에 전등남은 자신의 휴대폰을 이고녀에게 건네주었다.
지금이 한국시간 밤 10시, 로스앤젤레스는 아침 6시, 이고녀는 남편의 폰으로 앵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아직 잠에 덜 깬 듯 "오빠 웬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앵두야 밥 챙겨 먹어. 된장국 끓여놨다. 우리는 식당 영업 준비할 거야"
"예 이모님 고마워요. 씻고 내려가서 저도 좀 도와드릴게요"
"필요 없어. 넌 공부나 잘해. 위험하니 친구들 가려서 사귀고"
이런 대화를 이고녀가 듣고 있었다.
"오빠 미안. 오래 기다리게 해서. 내가 큰 거 하나 날린다! 우리 여보 쪽!"
휴대폰 액정 사진에 대고 입술을 내밀어 "쪽"하는, 앵두가 남편에게 보내는 키스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 가족들에게도 전부 들렸으리라.
그 키스 소리를 듣고 화가 난 이고녀는 이판사판으로 따발총을 쏘아대었다.
"어린애가 가짜 혼인신고 해놓고 도주한 주제에 누구더러 여보래? 앵두 너 참 뻔뻔스럽다"
"어라 태희언니? 오랜만이야. 나 안 어려. 열아홉이나 됐다고! 아마 오빠에 대해선 언니보다 내가 한 수 위야! 그런데 언니가 이 시간에 왜 우리 여보랑 같이 있지?"
또 한 번 앵두에게서 "우리 여보"라는 소리를 듣고 이고녀가 코를 씩씩 불었다.
그녀는 악이 바쳤는지, 옆에 있는 전등남에게,
"여보! 우리 아기 좀 만져봐요. 4개월인데 어쩜! 엄마 아기가 느껴져요! 아빠, 할머니도 좀 만져보세요"
그리고서는 시아버지의 흉측한 손을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면서,
"앵두 너 들었지, 우리 아빠가 우리 아기 건강하겠대. 내가 우리 오빠랑 물 떠놓고 맞절도 했고, 폐백을 드린 결혼한 부인이라고! 아빠 그렇지요?"
"그래 그건 맞다. 네가 이 집 정식 며느리다"
저 건너 쪽에서는 흐느끼는 울음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앵두의 선전포고에 이쪽 식구들도 다들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건이 터졌다!
호적상 부인인 앵두가 이혼하고 간통죄로 이 두 사람을 고소하던지, 첩 아닌 첩이 되어 된 시집살이를 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되는 막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냉랭하게 전화를 끊고서,
"할머니, 엄마, 아빠. 큰 소리 내서 죄송해요"라고 하는 이고녀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고녀는 아기 아빠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배를 어루만지더니, 휴대폰을 전등남에게 건네고 홱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렸다.
뺏고 뺏기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두 여자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어이구 이 녀석아! 처음 태희가 집에 온 날, 예쁘다고 태희 크면 결혼하겠다고 했어? 안 했어?"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아빠, 앵두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엄마가 한 여자한테 한 번 마음 주면 절대로 다른 데 보지 말랬지! 이제 어떡할 거야"
"다정도 병인가 보구나. 이일을 어찌할꼬. 갈수록 태산이니"
"죄송해요. 할머니 엄마 아빠.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누가 이 싸움에서 져서 현대판 첩이 될지, 아니면 남남이 될 각오를 하고, 앵두가 이 부부를 간통죄로 고소하여 두 사람 다 감옥 보내고 한 밑천 단단히 챙겨 떠날지, 남자 하나를 두고 중복 혼인을 해버린 두 여자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결투는 소유와 상실을 두고 벌이는 사생결단의 대결이었다.
남녀 간에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잃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 관념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상실감을 동반하는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다.
니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고녀와 앵두가 느끼는 분노는 약자가 느끼는 르상티망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르상티망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가 불가능할 때, 이 감정은 더욱더 극대화된다
이고녀와 앵두는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 때문에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복수하지 못하고, 질투와 증오를 내면에 쌓아두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딴 여자를 두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복합적인 감정인 것이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에서 인간의 감정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던가!
그는 질투를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을 상상하며 느끼는 슬픔"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슬픔이 자라나 가버린 연인에 대한 미움으로 성장해 떠난 그 빈자리를 증오가 채우는 것이다.
이처럼 이고녀와 앵두는 슬퍼하면서, 아파하면서, 철부지 남편인 전등남을 야속해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처럼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이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전등남이라는 천재 남편의 "태희도 좋고 채앵이도 좋아!" 하고 이고녀와 앵두 중 누구도 딱 잘라 고를 수 없는, 이런 우유부단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가 초라해지는 중요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