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로서 이고녀와 앵두의 서로에 대한 질투는 해소된 거야?"
"아니, 질투는 소유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감과 상대를 시기하는 복합적 감정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지.
그렇지만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거지. 이 너그러움이 오래 지속되거나 반복될 때 비로소 질투의 감정이 사라지는 거야"
제니의 물음에 라비가 대답했다.
"질투가 타인의 소유와 성공, 행복에 대한 시기심이나 결핍의 불안에서 비롯되는 온갖 부정적 감정이라면 세상의 모든 긍정적 감정들이야말로 질투를 소멸시키는 원천이야"
듣고 있는 나 푸어박이 한마디를 던졌다.
"빙고! 바로 그거야!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질투의 최대 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역시 라비는 현명해!"
"맞아! 난 늘 현명하지. 질투는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비교 및 소유욕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지, 안 그래?"
"역시 라비야. 라비 최고 최고!"
"내친김에 한마디 더하지 머. 질투는 불안과, 슬픔을 동반하지만, 때로는 애착물을 빼앗겼을 때 질투의 감정은 분노와 증오로 발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 한국에는 칠거지악이라는 게 있지. 이 7가지 악덕 중 질투도 들어 있어. 덕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덕'을 강조했는데, 질투는 영혼을 타락시키는 악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봤어"
"이야! 이제는 인간 친구가 우리 모임에 끼더니, 유령들도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고마워"라고 마르코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박수를 쳤다.
"선의는 타인을 향한 이해와 친절의 기반이며,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 명령과 같은 의무론적 윤리와도 연결되지, 그렇지?"
"그래 그래"
라비가 질투에 대하여 유령들의 수긍을 구하고, 끝을 보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 저네들 인간 세상은 자비가 필요해.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덜어주려는 의지로써, 질투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상극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끌어내지.
질투가 타인에 대한 악의나 증오를 내포하고 그들의 불행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면, 그 반대는 타인의 행복과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선의나 자비라고 할 수 있어.
따라서 질투의 반대 개념은 바로 선의와 자비인 거야.
지금 우리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시대부터 내가 제일 존경하는 로마제국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이고녀와 앵두의 질투를 통하여 이 땅을 먼저 살다 간 스토아 철학파 철학자들과, 고대인들의 사상과 철학을 살펴본 거야 "
라비가 질투에 대하여 이렇게 결론짓자, 유령들은 이제야 좀 후련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라비의 이야기는 안데스산맥의 세로 토롤로 산 정상에서 한바탕 춤을 추어 인간세상에 만연한 질투가 멀리 사라지기를 기원하기에 이르렀다.
"개굴!"
"깨굴!"
"개굴 개굴"
"깨굴 깨굴"
"개굴 깨굴.. 개굴 깨굴!"
"개개굴 개굴! 깨깨굴 깨굴"
"얼쑤!" "지화자!"
나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유행했던 놀이라며 둘러대며, 찰나의 순간에 번득이는 영감으로 만든 이 청개구리놀이를 소개해 주지 않았던가!
인간인 내게 소개받은 그 놀이를, 지금 유령들이 즐거워하며 바리톤의 마르코와 테너 라비 샤르마, 소프라노의 시티크 자매, 제니가 화음을 맞추고 고저장단의 박자를 넣기 시작했다.
직접 창작한 이 청개구리 놀이가 이토록 신명나다니 듣는 내내 즐거웠다.
유령들의 화음을 등에 업고, 노랫가락은 산조의 도입부인 느려터진 구슬픈 진양조와 진양조에서 출발하여 약간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느리디 느린 중모리에서, 중간 빠르기의 중중모리를 돌아, 빠른 자진머리에 어느덧 이르고 있었다.
급히 이어지고 떨어지는 휘모리 끝부분에 내가 "얼쑤!" 하며 흥이 나서 추임새를 넣자, 라비가 "지화자!" 하고 맞받아 인간과 유령들의 아리아가 끝이 났다.
크리스틴을 자신의 지하세계로 유혹하려는 도깨비 팬텀의 저음 바리톤, "오페라의 유령" 속의 "밤의 뮤직"의 아리아보다도 더 율동적이고 리드미컬한 한국의 전통 산조 무대가 펼쳐져 안데스산맥을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흘러 갔다.
청개구리놀이가 끝나자, 아이샤 시디크와 파티마 시디크를 선두로 "동! 서! 남! 북!" 하며 율동에 맞추어 무한 볼타가- 음악용어 반복- 시작되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탭댄스를 추듯이 쿵쾅거리며 동서남북놀이를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어 천랑성 시리우스가 눈을 파랗게 번득이며 남반구의 기다란 척추선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 KASI는 1974년 9월 13일 국립천문대로 처음 출발하였으며, 이후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1974년 9월 13일 설립된 국립천문대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이후 단절되었던 한국의 근대적인 천문학 연구의 맥을 잇고, 국가 차원의 천문우주과학 연구 및 기술 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과학기술처 산하의 국립천문대는 1978년 충북 단양 소백산천체관측소를 준공하고, 직경- 유효 주경 직경 61cm 반사망원경을 설치하는 등 초기 광학 천문 관측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국립천문대는 1986년 과학기술처 산하 천문우주과학연구소로 직제가 개편되면서 연구기관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었다.
천문우주과학연구소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대덕전파천문대를 준공하고, 국내 최초 14m의 전파망원경을 설치하여 전파 천문학 분야를 개척했다.
1999년 5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독립 법인인 한국천문연구원 KASI로 재출범하여 현재에 이르렀는데,
1996년 경북 영천에 보현산천문대에 국내 최대의 구경 1.8m 반사망원경- 광학망원경을 건설하여 광학 천문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천문원은 2024년 5월, 정부의 우주항공청 설립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서 우주항공청 산하 기관으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전등남이 칠레 세로 톨롤로 범미주천문대 CTIO를 국제협력 연구 차원에서 방문하게 된 2007년은 한국정부가 본격적인 우주 도약을 준비하던 때였다.
2007년 2월 17일, 음력 섣달 그믐날 오후 4시, 이제 8시간 후면 전등남의 생일인 설날이 될 것이었다.
그 시각, 한국은 2월 18일 오전 4시, 이미 설날 새벽이 되어 서울에서는 공주가 아들의 생일상과 식구들의 아침상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한편, 한국천문연구원(KASI) 소속 박사들과 그 조수 스카이 대학원생 막내연구원인 전등남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세로 톨롤로 범미주 천문대(CTIO) 별동 숙소에서 각자 두고 온 처자식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안데스 하늘의 태양도 2천2백7미터 고지에서는 오후 3시면 대략 15-20도가 되어 선선했다.
그렇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태양볕과 고산 지역에 부는 황량한 바람으로, 전등남은 이곳에 온 지 1달 보름여만에 구리로 빚은 황동상처럼 보기 좋게 잘 익어 버렸다.
설날 새벽이면 공주는 매년, 1남 9녀의 자녀들 중, 아들로서는 독자인 전등남의 생일상부터 차렸다.
공주는 임신 6개월째인 사랑스러운 딸며느리인 이고녀가 깰까 봐 나름 조용히 하나하나 음식들을 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흰쌀밥에 미역국, 명절이라고 장만한 시금치며 청경채 등 파란 나물들과, 노란 싹이 튼 힌 숙주나물과 무나물, 붉은 당근과 파프리카 볶음, 시금치, 검은 목이버섯과 당면이 들어간 형형색색의 잡채, 푹 고운 갈비찜, 큰 조기며 병어를 구워 주인 없는 생일상을 차렸다.
흰 자기 그릇에 담긴 파란색으로, 붉은색으로, 흰색으로 잘 차려진 음식들은 물감이 되어 퍼져나가 검붉은 옻칠을 한 생일상 캔버스를 물들였다.
생일상을 다 차린 공주는 옛날 생각에 잠겼다. 잠시 잊고 있었던 과거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머슴오빠와의 혼인으로, 하늘이 감동하여 점지해 준,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전등남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머슴오빠의 사랑과 용감한 희생으로 태어난 생명체였다. 이를 공주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981년 4월 17일 밤, 아빠가 화재로 몸이 불속에서 타고 있을 때, 엄마와 나를 머슴오빠가, 두 어깨에 한꺼번에 둘러메고 집안을 탈출했었지.
그래서 우리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양지쪽 담벼락 마당에 핀 복숭아꽃 속의 요정들은 보고 있었을 거야.
아빠는 불에 타면서도 나와 엄마부터 구하라고 소리쳤던 그 마음을 하늘도 아시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이 소중한 보석을 품게 된 거야!
맞아! 그다음 날이 4월 18일 토요일 날, 나는 그때 문학동아리 1박 2일 MT 간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지.
하필이면 가는 날이 생리예정일이어서, 요즘과 비교하면 정말 두툼한 담요 같은 유한킴벌리 코텍스 생리대를 많이 챙겼지 않았겠어?
병원 응급실에서 아빠는 엄마와 내 손을 오빠 손에 쥐어주시고 당부의 눈빛을 오빠에게 보내지 않았던가.
3일 후 4월 20일, 아빠는 어떻게 우리를 두고 영영 하늘나라로 가셨을까?
아빠 정말 미안해. 우리만 아니었어도 아빤 지금도 살아계실 텐데.
5월 1일은 내 인생 중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지. 내 배란 첫날이기도 했고.
난 엄마에게 허락받고 아빠 추도식을 핑계로 오빠를 술취하게 만들었었지.
성경험이 전혀 없던 숙맥인 나에게 엄마가 펠라치오를 가르쳐주셨고, 내가 그걸 물고 해 본 거 아니겠어!
오빠 거를 물자마자 그게 내 입속을 가득 채워 깜짝 놀랐지만, 난 물러서지 않고 쭉쭉 늘어나는 여의봉에게 말을 걸어가면서 키스했었지'
"난 이제부터 너의 주인이야. 넌 나 말고 어떤 여자 밑에도 출입금지야!"
"안돼! 넌 내 동생이야! 이 것만은 안된다고. 가족끼리 성관계 하는 사람들이 어딨어?"
"오빠랑 나랑은 의로 맺어진 가족이고, 엄연히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인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넌 대학생이고 예뻐. 앞날이 창창해. 난 국민학교도 안 나온 무식쟁이라고. 가진 거라고는 이 흉측한 몸뚱이 하나뿐인데 도대체 멀 어쩌려고 이러냐?
이렇게 얼굴도, 손도, 흉측한데 오빠가 되어서 어떻게 네 인생을 망치고, 네 고운 몸을 더럽히겠냐.
넌 어울리는 짝을 찾아라. 나는 절대 안 한다!"
"내 눈엔 오빠가 최고 멋져!
나만 좋으면 돼.
잘 됐어! 딴 여자에게 오빨 뺏길 일도 없고"
"너 그러다 여자 인생 종 친다. 부탁할 게. 공주야, 제발 오빠 좀 놔주라. 암튼 난 안 해! 안 한다고!"
"안 한다고? 이래도 안 한다고?
난 널 절대로 입에서 놓지 않을 거야. 평생 오빠 거, 아니 이젠 내 것인 널 물고 살 거야.
아참, 엄마가 옷부터 벗으랬지. 널 물고서 엎드려서 옷을 벗으려니까 되게 힘드네
휴, 이제 스스로 들어올 거야? 나한테 끌려서 들어올 거야?
오빠! 오빠! 이제 일어나! 일어나 보라고!
내 위로 올라와. 얼른!
나 힘들단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물었더니 입안이 다 얼얼하네 "
그 후로 지금까지도 아빠랑 난, 죽자 살자 사랑을 했지.
툭툭 불거진 게,
내 침과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그 뱀대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밑 속으로 들어올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난 오직 오빠의 아기를 가질 일념에 통통한 뱀 머리가 달린 오빠를 내 속에 넣은 채로 두 발로 허리를 감고 놓아주지 않았어.
오빠가 우릴 떠날 것 같아 무서웠거든'
"엄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에구머니나! 깜짝 놀랐네.
좀 더 자지 벌써 일어났어? 저기 갈비찜 가스불 좀 꺼라"
기척도 없이 어느새 바싹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이고녀에게 자신의 첫경험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공주였다.
톡 하고 가스불을 끈 이고녀가 공주에게 물었다.
"엄마, 오빠가 진짜 설날에 태어난 거예요? 몇 시에요?"
"임술년 검은 개띠해 1982년 1월 25일,
새벽 4시 설날 새벽에"
"검은 개? 어디서요? 병원?"
"이 집에서"
"호, 그래요? 전 파란 소띠래요 엄마!
오빤 이제부터 내 검은 똥개야! 호호"
"오빠에게 검은 똥개가 머니? 검둥개라고 해야지.
그날은 시장 장사로 무척 바빴어.
명절 대목이라서 고기 사느라 다들 난리여서, 할머니와 아빠는 정육점에서 일하시고 난 집에 누워 있었거든.
밤이 되니까 배가 더 아프기 시작하더니만
설날 새벽에, 할머니 하고 아빠는 떡국을 쑤고, 난 소파에 누워있는데, 그냥 쑥 하고 나오더라.
그땐 식구라고는 딱 우리 3명뿐이었거든. 떡집 할머니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설날 새벽부터"
"우리 오빠 참 효자네, 우리 엄마 고생 안 시키고, 한 번에 쑥 나오다니"라고 말하며 이고녀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오빠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내가 지었어.
돌아가신 아빠가 지으신 우영상사에서 영감을 받아 큰애 이름을 우영이라고 지었어"
"우리 엄마 최고예요! 쪽"소리가 나게 볼키스를 해대는 이고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두 팔로 공주의 허리를 안았다.
"벌써 오늘이 2007년 설날, 2월 18일이네. 26년이나 지났어. 세월 참 빠르다.
큰 애는 할아버지의 희생과 미리 허락을 받고 태어난 아이야. 또한 아빠의 용기와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이기도 하고.
아빠의 흉측한 허물은 큰애를 얻기 위해, 하늘에 바친 아빠의 담보였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빠가 흉측하게 보여도 내 눈에는 여전히 멋져 보인단다"
"제게도 그래요. 듬직하시고 우리집 가장이잖아요. 아빠의 허물 뒤엔 멋진 본모습을 전 볼 수 있어요.
아빠가 훌륭하셔서 하늘이 복을 주시고, 이렇게 지혜롭고 영민한 천재 아들을 점지해 주신 걸 거예요"
"5시 다 됐다. 새해는 빨리 먹어야 돼. 먹는 복 안 달아나게"
"엄마, 오빠한테 전화해 보고 먹으면 안 돼요?"
"그래라, 나도 큰애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나는 아침 먹자고 애들 깨우러 가야겠다"
여름철 2월 밤하늘, 이 시기에 남반구 칠레 톨롤로 천문대에서 개와 관련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아주 좋았다.
칠레의 여름 밤하늘에는 1982년 천재가 태어난 검은 개띠를 상징하는 별자리인-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포함한- 큰개자리가 떠 있었다.
이제 밤이면 밤마다 볼 수 있었으므로 남쪽 하늘에 높이 떠오른 큰개, 작은개자리 두 별자리의 하늘개와 늑대들은 이 천재와 더욱더 친숙해졌다.
큰개자리는 2월 저녁, 남쪽 하늘에서 아주 높고 밝게 빛나기에 관측하기 매우 좋았다.
그중, 큰개자리의 알파성, 유명한 별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그 밝기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칠레와 같은 남반구에서는 시리우스는 거의 머리 위쪽까지 높이 떠오르기에 그 빛이 더욱 강렬하게 보였던 것이다.
남반구의 시리우스는, 동양의 육십간지에 나오는 1982년 천재가 태어난 해인 임술년의 '검은 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큰개자리의 심장 또는 목부분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알파성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리우스는 사냥꾼 오리온이 가장 아끼던 사냥개 중 한 마리로, 오리온이 죽은 뒤에도 그의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며 충성심을 지켰다고 신화는 후대에 전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리우스는 "나일강의 별"로 불렸고, 이 별이 뜨는 시기인 7월 중순은-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 도입한 태양력인 율리우스력으로 7월 19일은- 나일강이 범람하는 때로, 해마다 정확히 발생하는 이 규칙적 홍수가 강 상류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검고 비옥한 토사 1억 톤 이상을 실어와, 매년 나일강 하류 삼각주에 퇴적해 왔다.
이 토사에는 식물의 성장과 결실에, 특히 결실에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영양소인 인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서 비료가 없이도 풍년이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이 결과 식량과 물이 풍부하였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가 떠 강이 범람하면, 국가사업으로서 대제국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3월 중순의 파종기에 씨를 뿌리고, 시리우스가 동쪽 지평선 위에 태양과 동반 출현하기 전까지 수확을 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의 첫 동반 출현하는 날을 새해 첫날로 잡고, 오늘날과 같이 1년을 365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했는데, 시리우스를 숭배하고 관찰했던 고대인들의 지혜가 가히 경이롭지 않은가!
남반구 큰개자리 옆에는 작은개자리가 있는데, 고대인들에게는 작은개도 큰개와 함께 오리온의 사냥개였다.
작은개자리에서 밝기가 으뜸인 알파성 프로키온은 밤하늘에서 여덟 번째로 밝은 별로, 시리우스보다 먼저 뜨기에, 고대인들은 개(시리우스) 앞의 별이라는 뜻의 "프로키온"으로 불렀다.
전등남이라는 이 천재는 2월 칠레 범미주 톨롤로 천문대에서, 오리온과 관련된 큰개자리의 중심에서,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하늘의 늑대 천랑성 시리우스와 충성스러운 사냥개들의 신화와 함께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보세요!"
"크리스털 블루! 크리스털 이미지!
크리스털 블루! 여기는 크리스털 이미지!"
전등남이 유선 전화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말하자, 저편 상대방은 엉뚱하게도 무선호출신호인 콜싸인으로 전등남을 찾고 있었다.
"크리스털"은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를 뜻하는 이 부부만의 은어로, 전등남이 서울에 있을 때, 이고녀의 무릎에 누워 플라스틱 아기 장난감 전화기를 귀에 대고 전화놀이를 할 때 사용하는 무선 콜싸인의 첫머리였다.
콜싸인으로 자신을 호출한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혼 아내이자, 귀여운 여동생인 이고녀였다.
"오빠는 남자니까 크리스털 블루로 해! 난 여자니까 크리스털 이미지로 할게" 하고 무선호출콜싸인을 정한 뒤, 무릎베개하고서는, 전등남의 한 손은 자신의 치마 밑에서, 또 한 손으로는 태어날 아기의 전화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것을 이고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고녀는 오빠가 자신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이에 전등남도 콜싸인으로 그녀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크리스털 이미지! 크리스털 블루! 설날이지? 떡국은 챙겨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오늘은 오빠 귀빠진 날이잖아. 생일 축하해 쪽!"
"그래 고마워 엄만?"
"생일상 차려 놓고 쌍둥이들 깨우러 가셨어. 곧 오실 거야. 그런데 오빤 왜 생일밥보다 떡국을 더 좋아해?"
잘 차려진 생일상을 뒤돌아보면서 이고녀가 물었다.
"밥은 날마다 먹지만 떡국은 일 년에 몇 번 쒀 먹잖아. 그래서 맛있으니까 떡국을 찾는 거지머. 특별한 이유는 없어"
"엄마가 오빠 생일상 되게 근사하게 차리셨는데 이건 완전 그림이야! 내가 그림 그려줄게, 잘 봐.
준비됐어?"
"응"
"그럼 그린다!"
"응, 그려 봐"
"음, 흰쌀밥에 검푸른 미역국에, 노랑머리 달린 흰 숙주나물에 무나물, 그 옆엔 녹색 시금치, 빨간 당근, 파프리리카 볶음에, 납짝 병어에, 도톰한 조기, LA 식 갈비찜에, 생일떡에… 음, 캔버스는 검붉은 색깔의 큰 상이야.
아참 오빠가 좋아하는 엄마표 잡채도 있다. 맛 좀 보라고 떡국도 있고, 식혜도 있어. 어때 근사하지?"
"응,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어휴! 오빠도! 그런 말은 직접 해야 하는 거야. 여자들은 그런 말 들으면 뿅 가"
"그런가? 난 잘 몰라서"
"생일상은 나랑 우리 아기가 먹어야지. 오빠 대신에.
오빤 오늘 무얼 먹을 거야? 거기 말린 미역 있어? 오늘은 꼭 끓여 먹어"
"미역국보단… 옆에 아무도 없지?"
"응, 없어. 나 혼자야"
"첫날밤에 우리 했던 병원놀이 하자. 네 밑에 거 먹고 싶다. 넌 오빠의 에너지 드링크야.
미치겠다. 네 속에 막 들어가고 싶어서
태희야! 얼른 밑에다가 손가락 넣어 봐"
"아이참, 오빠! 순서가 틀렸어! 오늘은 머 입었냐고 안 물어 봐?"
"오늘 멀 입으셨을까요? 비비안 살색?"
"땡! 틀렸지롱! 그건 꼭 아줌마 스타일 같단 말이야, 엄마랑 같은 브랜드야. 한 번 더 맞춰 봐"
"내가 그걸 어떻게 맞춰! 이러다간 날 새겠다. 먼데?"
"빅토리아 시크릿! 흰색!"
"어, 예쁘겠다. 이제 손가락 넣어 봐. 넣었어?"
"응 넣었어, 하나,
오늘부터 딜도 사용해서 오빠 좋아하는 물 많이 받아놓을게, 얼른 와"
"흐미 미치겠다. 태희야 쫌만 더 자극적으로 해주라"
"내 아래 보여? 나도 오빠랑 너무 하고 싶으다! 내 고추도 잘 있는가 물어보고 싶고,
밑이가 막 근질근질해. 아무거나 마구 넣어보고 싶으다.
오빠야! 가지라도 넣어 줄까?
에잉, 가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엄마가 머라 하실 테고, 바늘이나 하나 사야지.
콕콕 찌르면 아파서 그 생각이 사라진대, 할머니가 그러셨어"
"야! 야! 야! 거기 바늘로 찌르면 안 돼!"
"누가 거기 찌른댔어? 팔을 찌르지, 내 검정 똥개야!
오빤 하루만 일찍 태어났어도 시리우스가 아니라 머랬더라? 맞다! 닭띠! 내 닭이야!"
"우리 아기는 검둥개가 그렇게 좋아?" 하고
뒤에서 공주의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란 이고녀는 치마 속에서 손을 빼 등 뒤에 감추고, 급히 말꼬리를 돌렸다.
공주의 뒤에는 젊은 할머니와 아빠, 눈 비비고 나타난 쌍둥이 동생들이 떡 하니, 오늘은 또 무슨 장난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하다는 듯이 당황한.이고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엄마가 맛있는 생일밥 차려놨으니 배 곪지 말고 잘 먹어야 한대.
마침 오늘 일요일이니, 라 세레나라고 했지? 거기서 젤 가까운 도시 말이야.
거기 가서 머 맛있는 것 좀 사 먹고 오던지, 라 세레나가 서쪽으로 8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랬지, 너무 먼가?
그럼, 요전에 보내준 인근마을 사진, 거 머랬지? 비쿠냐나, 근처 엘키 계곡에 마을 마실 좀 다녀오던지"라고 이고녀는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 하였다.
"그리고 오늘 오빠 26번째 생일이잖아. 벌써 엄마가 다 차려놓으셨으니 우리 아기랑 난, 오빠 대신 먹기만 해야지 호호"
"그렇게 좋아? 많이 먹어.
보고 싶다. 전화로 찐하게 우리 한번 할까?
이번엔 밑에 손가락 두 개 넣어봐, 태희야!"
"안돼! 식구들 옆에 계셔! 보채지 마! 이따가 해 줄게!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지. 생일밥도 내가 먹고, 우리 아기도 먹고, 그다음 닭장 떡국도 먹어야지"
"머? 아빠랑 할머니도 옆에 계셨던 거야?"
"응 방금 나오셨어. 할머니 바꿔 줄게"라고 하며 이고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또또할머니에게 후다닥 휴대폰을 건넸다.
"큰 애냐? 할머니다"
"한머니? 우리 한머니!"
"오냐오냐 내 새끼. 그간 바빴지? 오늘 네 생일 설날이고 일요일이니 좀 쉬고, 잘 챙겨 먹어"
"별로 안 바빠요. 별 관측 비수기라서 일하기는 오히려 편해요. 미국 측에서 천체망원경을 빌려 쓰기도 좋고요"
"별을 보는데도 성수기가 있고, 비수기가 다 있냐? 그냥 보면 보는 거지"
"아녀요, 한머니, 칠레 여름엔 밤이 짧아 관측 시간이 적어져서 프로젝트가 적어요. 그래서 대기가 안정되고 밤이 긴 겨울은 성수기, 지금 같은 여름은 비수기인 거예요"
도란도란하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2007년 2월 18일, 서울 새마을 전통시장통 옆 어느 가정집에 차려진 천재의 생일상에도, 몇 시간 후면 그가 있는 톨롤로 천문대 별동 숙소에도.
밤이 되자 전등남은 어젯밤처럼 습관처럼 혼잣말을 하면서 섣달 그믐날, 깜깜한 밤하늘의 별을 헤었다.
2007년 이 시기는 한국천문연구원 KASI가 남반구의 국제적 관측 인프라에 접근하고 독자적인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주요 노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한국천문연구원은 남반구 관측 시설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이에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산하 기관으로, 남반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관측 시설 중 하나이며, 미국 및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남반구 접근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 온 CTIO - 세로 톨롤로 범미주 천문대에 접근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한국천문연구원 KASI는 이 시기에 이미 세로 톨롤로 옆 세로 파촌이라는 곳에 건설 계획 중인 초대형 마젤란 망원경 (GMT)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한국천문연구원은 한국형 미세중력렌즈 망원경 네트워크 KMTNet 자체 구축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구체적 계획으로 한국천문연구원은 남반구 세 곳-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에 독자적인 광시야 망원경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KMTNet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하고 있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천문연구원은 칠레 지역의 관측 부지 확보 및 인프라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을 헤는 밤,
오늘밤도 이고녀의 검둥똥개이며 앵두의 남첩인 천재 전등남은 그녀들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면서, 안데스산맥의 한 지류인 이 세로 톨롤로 산 정상에서 주어진 사명대로 남반구 천체 망원경 건설 계획을 구상하면서, 짬짬이 별을 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베 짜는 직녀라면 흰 깔깔이가 박힌 검은 비단천 한 귀퉁이를 잘라내어 '사랑하는 엄마, 아빠, 한머니께 빛의 장막으로 된 멋진 외투를 만들어 드릴텐데' 하며 못내 아쉬워 하였다.
앵두의 육체에 길들어져 이성에 눈을 뜨고, 그녀의 가짜 임신으로 덜커덕 혼인신고를 해버렸던 전등남은 부모님이 정한 혼처인 동생 친구인 요정 이고녀에게 다시 장가를 들어 발생한 1부 2처의 카르마에서 별을 헤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 밤, 하늘에서는 그 업보를 지고 큰개자리 시리우스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검둥개는 정신적 고통속에서 피어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으로 들어가 밤새 뛰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