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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의 봄

by 꽃피네

우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병원 정원으로 돌아왔다. 정원 벤치에 둘러앉은 우리는 그간 못다 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푸어박 몸은 어때? 많이 좋아진 거야? 여기서도 옷에다 싸는 거야? 마르코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 표정에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에서 이불을 가져왔는데 거기다 똥을 쌌지 머야.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바지에다 쉬를 하고 말이야! 난 대책 없는 오줌싸개 똥싸개라고!"

"오! 불쌍한 푸어박!" 여기저기서 입을 맞춘 듯이 안타까워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교통사고로 이렇게 됐나 봐. 이러다간 우울증 생기겠어. 얼마 전에 큰맘 먹고 비뇨기과 진료를 받았는데 아보다트란 약을 2-3년은 복용해야 한다나 머래나"

"그래 병은 감추는 게 아니야. 소문내야 하는 거라고 너를 처음으로 휠체어에 태울 때 이고녀가 네 육체에게 그렇게 말했잖아"

"이야! 라비 기억력 하나는 끝내준다야. 몰래 훔쳐본 조선대학병원 정형외과 중환자실 그 광경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거야?"라고 내가 라비를 추켜세웠다.

그때 어디선가 역겨운 담배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누군가가 정원 주차장 위, 본관 건물 건너편에 설치되어 있는 야외 흡연실에서 첫새벽부터 식전 담배를 꼬실리고 있었다.

"허 요즘 세상에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있나 봐. 우리 유령들 중 생전에 담배 피웠던 유령은 없지?"라고 하며 제니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제니의 말에 대답은커녕 짐짓 못 들은 체하며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라비와 마르코는 아마도 생전에 담배 꽤나 피웠던 골초였나 싶었다.

"인간의 영혼은?" 제니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추접스럽게 몸에서 역겨운 냄새 나는 그런 걸 왜 피워! 담배값도 장난 아니라고! 그래서 난 벌써 끊었지 10여 년 전에"

"담배 정말 끊기 힘들다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끊은 거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야, 제니. 조금만 의지가 있다면 금연보조제 도움을 받고 고통스럽지 않게 끊을 수 있어"

"어떻게? 라비와 마르코가 약속한 듯 내게 물었다.

"그게 된다는 말이야? 정말 담배를 끊을 수가 있어?

"푸어박. 뻥이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 거야. 하여튼 그 금연 방법이나 들어나 보자. 어서 빨리"

나와 제니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비와 마르코가 내가 어떻게 금연에 성공했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재촉하였다.

제니와 아이샤, 파티마 시디크 자매도 주위에서 담배를 끊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지 "푸어박, 요렇게 끊은 거야?" "이렇게?" 하며 손으로 담배를 두 동강 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렇게 담배를 두 동강 내서 끊었다는 게 아니고 진짜 금연했대도"

"그 썰 한 번 듣자. 빠바밤! 기대하시라 푸어박, 인간 박삼식의 금연도전 성공기!"라고 하며 제니 또한 나의 금연 성공기를 듣고자 하였다.

"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못 끊겠더라고. 끊으려고 해도 주위에서 자꾸 권하는 거야 하나만 더 피고 끊어도 된다고 말이야"

"우리 인도에서도 친구들이 늘 권하지 그래서 나도 심부전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담배를 피웠지" 아! 그립다. 나의 구수한 최애 담배 골드 플레이크!"

"나도 당기네. 우리 브라질 담배 빌라 히카! 그 맛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냐고! 죽어 유령이 돼서도 당기는 빌라 히카!"

"넋두리들 그만해, 유령들아. 나도 금연 3일째 새벽에 미친 듯이 길거리를 돌아다녔어. 미친놈처럼 땅바닥을 쳐다보면서 길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 있으면 그거라도 주워서 펴댔지.

담배는 가장 끊기 힘든 마약이야. 25살이었던 젊디젊은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나서 나는 극도의 우울증에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혀 있었어, 그때 복용했던 항우울증 약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웰부트린 서방정이었어. 알약의 표면에 GXCH7이라고 새겨져 있던 것이 기억나.

이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담배를 피울 때도 우리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대.

이이제이의 수법이지. 웰부트린을 복용하면 도파민이 분비돼서 담배 생각이 안 나게 하거나 덜 나게 하는 원리이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우울증을 앓던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약을 한 알씩, 하루 두 번 복용했는데 일 년 정도 복용하니 저절로 금연이 되더라고"

"아하! 그러니까 우울증 치료약으로 개발했던 약이 엉뚱하게도 금연보조약이 돼버렸구나!"

"그래 맞아! 라비. 비아그라처럼"

"비아그라도 처음엔 협심증 치료약으로 개발되었지만 발기부전증 약으로 대히트 쳤잖아!" 라비가 마르코를 유심히 쳐다보며 비아그라 예찬을 하였다.

마치 마르코가 비아그라나 비아그라보다 훨씬 더 약효가 오래가는 시알리스를 생전에 복용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표정을 하고선 말이다.

"그러니까 심장의 혈액 공급을 개선하고 흉통을 완화하기 위해 혈관 확장제로 개발된 협심증 치료약인 비아그라가 고개 숙인 남자의 성기를 발딱 세우는 발기부전의 신묘한 비약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마찬가지로 부프로피온이 주성분인 항우울증약인 웰부트린 서방정이 엉뚱하게도 금연약이 된 것과 비슷해"

"서방정? 무슨 뜻인데?"

"제니야! 서방정은 서서히 약효를 방출하는 알약이란 뜻으로 약효가 오래가도록 특수하게 코팅처리 되어 있어서 씹거나 쪼개서 먹으면 안 되고 그냥 삼켜서 먹는 약을 가리켜.

담배를 끊고 싶으면 병원에 가서 담배 끊고 싶다고 하고 의사에게 웰부트린을 달라하면 돼. 의료보험이 적용돼서 무척 싸거든"라고 하며 나는 한국의료보험에 대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국 의료보험은 암튼 전 세계에서 최고야! 감탄했어!" 하는 아이샤의 말에,

"좋겠다. 너무 부러워! 한국사람들은 약값도 싸고 병원 진료도 싸고, 빠르고 게다가 우수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 브라질은 형편없어" 하고 마르코가 말을 받았다.

"우리 미국도 의료서비스는 형편없어. 돈 없으면 죽는다고. 감기 걸려서도 병원비가 몇 백 나오고, 아기 낳을 때도 2-3천만 원은 병원비로 지불해야 할 각오를 해야 되거든. 미국은 한국에 비하면 의료 후진국이야"

"그런데 푸어박! 교통사고 후, 자고 나면 머리가 한 움큼씩 빠졌다며 요즘엔 어때? 보기엔 머리털이 풍성해 보이는데" 아이샤가 내 머리 정수리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교통사고 후, 내가 어린아이처럼 똥싸개, 오줌싸개가 되었잖아. 비뇨기과 진료를 받았더니 아보다트라는 약을 처방받았어.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이 탈모에도 아주 효능이 좋대, 아이샤야.

두타스테리드가 주성분인 아보다트 또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개발한 전립성비대증 치료약인데

나중 탈모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특히 대한민국에서 임상 연구를 거쳐 2009년에 세계 최초로 성인 남성의 남성형 탈모 치료제로 식약처 승인을 받았어

따라서 아보다트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처음 개발되었고, 나중에 남성형 탈모 치료제로 그 용도가 확대된 건데

난 탈모방지와 전립선 오줌싸개 치료,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거야"

"이야 그거 잘 됐네"라고 유령 모두들 기뻐해 주었다.

"대머리가 정력이 좋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탈모방지약을 먹어대니 전립선이 좋아져서 벌떡 서는 게지 안 그래?"라고 파티마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자,

"맞아! 어디 대머리 아찌 없나?" 제니 스미스는 그 와중에도 정력이 좋다는 대머리를 찾고 있었다.

"귀신이 되어서도 밝히는 미스 스미스야! 주책 그만 좀 떨어라. 대머리가 정력이 좋다는 말은 사실과 정말 동떨어진 헛소문이라고!

대머리는 유전과 호르몬이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으며, 노화, 스트레스, 잘못된 생활 습관 등이 이를 가속화시키거나 다른 유형의 탈모를 유발할 수 있는 거래. 따라서 대머리가 정력이 좋다는 소문은 완전 거짓이라고!"라고 정색을 하며 나는 제니에게 충고해 주었다.

"야야! 대머리 이야기 뚝! 이제 슬슬 라비 이야기나 들어볼까. 우리가 안데스산맥 세로 톨롤로 산 정상에서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불렀었지. 인간들 임신들 좀 하라고. 라비?"

"응 그래 마르코. 2007년 3월 하순이었지. 우리가 저 인간의 영혼 푸어박과 함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 안데스산맥 세로 톨롤로 정상에서 디오니소스의 위대한 팔레스를 예찬했었지. 이제부터 그 후속 이야기이니 잘 들어 봐"

유령들과 나의 영혼은 이곳 해남우리종합병원 정원 주차장 벤치에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모두는 라비의 이야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어 앵두야"

"오빠? 엉엉"

"왜 울어 앵두야 무슨 일 있어?"

"나 배 아파 죽을 것 같아. 밑에서 피가 나. 무서워 죽겠어. 아까 화장실에서 핏덩어리가 나왔어. 나 어떡해?"

"진정해. 마음 가라앉히고. 한국 사람들 원정출산 많이 온다는 병원 있지? 한인타운 가까운 곳에 있는 굿 사마리탄 병원에 빨리 가야 해. 식당 이모님께 부탁해서 좀 태워 달래서 그 차로 가. 넌 아프니까 운전하지 말고, 빨리 가"

"엉엉 우리 아기 잘못되면 어떡하지? 나 죽을 거 같아"

"울지 마. 아기보다도 네 몸이 먼저야. 걱정하지 말고, 울지만 말고 빨리 가"

"그럼 오빠 그 병원 가서 다시 전화할게. 오빤 잘 있는 거지?"

"그래 바보야. 지금 오빠 안부 물어볼 겨를이 어디 있어! 빨리 끊고 굿 사마리탄 병원에 가. 거기에는 한국인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 언어 걱정 하지 말고. 이럴 땐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거야.

조그마한 산부인과 클리닉 말고. 난 네 걱정에 안절부절이다. 이제 일이 다 끝났으니 모레 4월 2일 날 널 보러 달려갈게. 4월 3일 날 아침 6시 LA 공항 도착이니까 8시쯤에는 널 볼 수 있을 거야"

"호호 우리 오빠는 역시 날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아이 아파! 엉엉 오빠 나 끊을 게. 이따 병원 가서 전화할 게"

"울다가 웃다가 그럴 틈이 어딨어? 지금 빨리 가래도!"

"사랑해 남첩아! 제발 무슨 일이 없어야 될 텐데. 그럼 이따 보자 오빠야"

"그래 그래"

앵두는 식당 영업으로 토요일 점심시간에 한창 바쁜 이모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혼자서 그녀의 에마 액센트에 올랐다. 그녀는 20여분을 달려 굿 사마리탄 병원에 도착하였다.

2007년 3월 31일 토요일, 오후 2시 2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굿 사마리탄 호스피털 응급실, 앵두는 불완전 유산 증상으로 내원하였다. 앵두에게는 곧 잔혹한 봄이 시작되었다.

앵두는 3월의 마지막 날 오후, 쏟아지는 출혈과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굿 사마리탄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간호사는 앵두의 출혈 양에 놀라 그녀를 빠르게 진료실로 안내했다.

한국에서 이민 온 산부인과 전문의인 닥터 리는 "채앵씨, 기록을 보니 16주 차 임신이었군요. 오늘 오전부터 출혈이 심했다고 했죠?"라고 말하며 차가운 메탈 프레임 안경 너머로 앵두를 살펴보았다.

"네, 아까 화장실에서 큰 덩어리가 나왔어요. 하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요. 배도 너무 아파요."라고 대답하며 앵두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닥터 리는 앵두의 아랫배에 초음파 검사를 했다. 모니터 화면을 집중해서 보던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감스럽게도 유산이 진행되었네요. 문제는 자궁 안에 아직 임신 조직의 일부인 잔류 조직이 남아 있어요. 이것 때문에 출혈이 멈추지 않고 통증도 심한 거예요. 불완전 유산입니다."

"엣! 제가 유산을요? 잔류 조직이요? 우리 아기는요?"

"아기는 이미 죽었어요. 자궁 내 남아있는 조직은 심각한 출혈과 감염을 일으켜요. 그래서 지금 바로 제거해야 해요.

우리는 자궁 소파술 수술을 진행하고, 감염 위험 때문에 5일 정도 입원하면서 경과를 관찰할 건데요,

외국에서 혼자라 많이 무섭겠지만, 우리는 환자분을 안전하게 치료할 거예요. 안전한 수술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앵두는 3월 31일, 지체 없이 자궁 소파술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깬 앵두는 산부인과 병동의 조용한 1인실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왼팔에는 정맥주사 라인이 꽂혀 항생제와 진통제가 투여되고 있었다.

간호사가 수시로 들어와 수액 팩을 교체하며 앵두를 위로하며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요? 수술은 잘 됐어요. 이제 가장 중요한 건 감염이 없어야 해요. 통증이 다시 심해지면 바로 말하세요."

"네. 간호사 선생님."

20살 앵두는 이국 땅에서 홀로 겪는 고통과 상실감, 그리고 수술 후 욱신거리는 통증 속에 울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간호사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들어와 체온과 혈압을 확인하고, 패드에 묻은 출혈량을 측정했다.

"앵두야! 좀 어때?"

"엉엉 오빠! 우리 아기가… 우리 아기가… 엉엉"

"우리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엉엉 그래 유산이래. 나 죽고 싶어. 맘도 몸도 너무 힘들어"

"내일 갈 테니 힘내. 아기는 또 가질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기운 좀 차려봐 앵두야, 내겐 네가 더 소중해"

"엉엉 빨리 와 오빠. 나 무서워"

"그래 내일 2일 날 밤늦게 비행기 타면 3일 날 아침에 거기 떨어져. 몸조리 잘하고 있어. 알았지?"

앵두와의 통화를 마친 전등남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록 몸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경계인 안데스산맥의 세로 톨롤로에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앵두에게로 내달리고 있었다.

가엾은 아기와 앵두를 생각하니 어느샌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문득 만삭인 또 한 사람의 아내, 이고녀 태희가 생각났다. 불안한 마음에 서울에 있는 아내인 이고녀에게 전화를 했다.

"엉 오빠! 이 시간에 웬일이실까"

"…. 앵두가 앵두가 말이야. 아냐 됐어. 너도 우리 아기도 잘 있지?"

"응 잘 있어. 나 지금 배가 남산이야! 그런데 앵두에게 무슨 일 있어?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그냥 아무 일도 아니야. 네가 보고 싶어 전화한 거야"

"에잉! 거짓말, 그럼 왜 다짜고짜로 앵두 얘기부터 꺼낸 거야?"

"미안해. 한국 가서 이야기해 줄게. 몸조리 잘하고 있어"

"그래 알았어. 빨리 와. 사랑해 오빠" 하고 이고녀는 "쪽!"소리 나게 키스를 보냈다.

전등남은 정신없이 서울 아내, 이고녀 태희와의 통화를 끝냈다.

국제적 관측 인프라인 남반구 천문대에 접근해 독자적인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의 임무를 다 마친 전등남은 2007년 4월 2일, 자정이 가까운 밤에 출발하는 라탐항공사의 산티아고발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를 실은 비행기는 그다음 날 4월 3일 아침 6시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수속을 마친 전등남은 서둘러 택시를 주워 타고 곧장 굿 사마리탄 병원으로 내달렸다.

그 시간, 앵두는 염증관리 집중치료를 받고 있었다. 입원 4일째 새벽까지도 앵두의 염증 수치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닥터 리는 항생제의 용량을 조절하며 집중적인 관찰을 지시했다. 앵두의 유학 생활을 아는 담당 간호사는 그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채앵씨, 우울해하지 마세요.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이에요. 환자분의 몸은 아직 20살, 건강해요. 하지만 지금은 아픈 몸을 돌보는 데만 집중해야 해요.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고생하는 거 다 알아요."

"네. 고마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오늘 아침에 제 남편이 여기로 올 거예요" 앵두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아침 일찍, 닥터 리가 차트를 들고 앵두를 찾아왔다.

"채앵씨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염증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발열도 완전히 잡혔습니다. 출혈도 거의 멈췄고요. 수술 부위도 깨끗합니다.

정맥 주사 항생제는 이제 그만 쓰고, 내일부터는 경구용으로 바꿔서 퇴원 후 복용하게 할 겁니다."

아침 8시 30분, 전등남이 앵두가 입원한 굿 사마리탄 병원을 찾았다.

"앵두야 고생 많았지?" 전등남은 이 이상 어떠한 위로도 말로 할 수 없었다. 초췌한 앵두의 얼굴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늘 상큼하고 발랄했던, 생동감에 넘치던 예쁜 앵두 채앵은 여리고 파리하게 보였다.

그는 하염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앵두를 말없이 도닥여 줄 뿐이었다.

전등남은 닥터 리를 만나 앵두가 임신 16주 차 유산을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니 선생님, 제 아내 채앵이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작년 7월 29일 미국에 왔거든요. 그런데 겨우 16주 차 임신이라니오?"

"작년의 임신은 진짜 임신이 아니라 임신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내분이 상상임신을 한 겁니다. 임신상태가 아니었는데도, 그때 생리도 없어서 임신이라고 상상한 거죠. 진짜 임신은 작년 12월이었습니다. 아내분이 충격이 크실 테니 잘 위로해 주십시오"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치료를 해주셔서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4월 4일 입원 5일째인 수요일 오후, 앵두는 마침내 퇴원 허가를 받았다. 5일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전등남의 손을 꼭 잡고 병실 창밖으로 LA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호사는 퇴원 안내를 도와주며

"퇴원 후 복용할 항생제와 자궁 수축제예요. 가장 중요한 생활수칙을 말씀드릴게요. 2주 동안은 절대 탕에 들어가 목욕해서도 안되고, 성관계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도 안 돼요.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해요.

비록 유산을 했지만 유산이나 출산이나 마찬가지로 아기를 낳은 것은 똑같은 것이에요. 그러니 채앵씨는 산모나 마찬가지예요"라고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네, 조심할게요. 열흘 뒤 외래 진료 때 뵐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앵두는 전등남의 보살핌을 받으며 굿 사마리탄 병원의 문을 나섰다. 5일 전 토요일, 고통과 두려움 속에 응급실을 찾았던 그녀는 이제 약 봉투와 함께 회복의 의지가 피어올랐다.

낯선 땅에서의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상실의 아픔을 딛고 남편 전등남과 함께 다시 아기를 가질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 태아를 잃은 20세 엄마의 슬픔에 대하여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의 철학적 관점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해보자. 유산은 산모의 단순한 심리적 고통을 넘어, 뱃속 태아의 존재가 사라지는 비통한 젊은 엄마의 경험적 측면에서 태아의 상실을 분석할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에게 있어 인간이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자신을 기획하는 존재였다.

임신은 20세 채앵이라는 엄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엄마 되기'와 남편과 아기의 미래를 포함하는 행복한 가정 만들기의 거대한 기획이었다.

자연유산은 앵두가 그렸던 기획을 폭력적으로 파괴하였다. 행복한 가정을 설계했던 자신과, 남편과 아기의 미래가 유산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괴된 것이었다. 이렇게 앵두는 임신 중 꿈꾸었던 행복한 미래의 실존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앵두의 임신은 여성의 몸이 생명을 잉태하고 태아를 지키는 주체적 능력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유산은 그녀의 몸이 자신과 아기의 생명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깊은 슬픔을 남겼다.

앵두라는 젊은 엄마는 자신의 몸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의 자궁은 '실패의 증거'처럼 깊은 소외감을 경험하였다.

이 유산의 슬픔은 비단 정신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젊은 엄마인 앵두는 물리적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다.

태아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그녀에게 있어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분리되지 못하고 함께 자라났다.

앵두는 회복과정에서 슬픔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앵두는 유산의 아픔을 통해 남편과 자신을 이어주는 아기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다.

그날 밤 앵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따뜻한 물로 항문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전등남의 품을 찾았다. 앵두의 육체는 너무나도 풍만하여 전등남의 품에 다 안길 수 없었다.

"오빠. 난 너무 슬퍼. 당분간 성관계는 안된다고 했지만 난 아이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이는 또 가질 수 있으니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조리나 잘해. 식당 이모님께 잘 부탁드렸으니 밖에 나가지 말고 몸조리나 잘해. 넌 산모랑 똑같은 몸 상태야"

"알았어. 오빠 말대로 할게. 대신 약속해 줘. 올해 안에 꼭 아기를 갖도록 해줘. 나 아기 가지면 한국 돌아갈 거야. 몇 년 동안 아기 키우다가 스카이대에 복학하고 싶어"

"그럴게 약속할 게"

"오빠 나 더러워?"

"아니 전혀 너처럼 어리고 예쁜 아내가 어딨어?"

"그래 그럼 항문에다 해줘. 나 오늘 밤 안 하면 슬퍼서 죽을 것 같아"

"알았어. 항문은 처음인데 잘 들어갈까? 이렇게 꽉 닫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니? 윤활제 있으면 좀 발라 봐"

"윤활제는 없고 로션이라도 발라볼까? 천천히 넣어봐 아악!"

앵두는 납작 엎드려서 고개를 베개에 묻고 탐스런 엉덩이를 쳐들어 주어 전등남의 성기가 자신의 항문 속으로 들어오기 쉽게 후배위 자세를 취했다.

전등남은 앵두의 달덩이처럼 탐스런 엉덩이 속에 감춰져 있는 항문 속에 발기한 육봉을 쑤셔 넣었다.

꽉 닫힌 앵두의 항문 속으로 자신의 성기가 들어가자, 전등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어떤 정복감에 몸을 떨었다.

앵두의 흥건한 밑은 도끼로 쪼개놓은 듯한 핑크핑크한 꽃잎이 숨겨져 있었지만 당분간 질성교는 금지여서 오늘 밤은 앵두의 소원대로 애널섹스를 했다.

앵두는 아파했다.

"앵두야! 아파?"

"응 아파! 엄청. 묵직한 게 들어오니 똥꼬 찢어지려고 해. 너무 아프다"

"그럼 뺄까? 오빠 뺀다!"

"안돼! 빼면, 넣은 채로 가만히 있어봐"

"이렇게?"

전등남은 말을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정복감에 깊이 뿌리 끝까지 힘차게 방아질을 해댔다. 처음엔 그렇게 아파하던 앵두는 어느 순간 아프지 않은 듯 숨을 색색거렸고 스스로 엉덩이를 전등남에게 뒤로 힘껏 밀착시키기 시작했다. 살과 살이 부딪혀 퍽퍽 떡 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래서 섹스를 떡 친다고 하는가 보다.

"지금도 아파?"

"아니 이상하게도 하나도 안 아프네. 똥 냄새 나면 어떡하지? 좀 창피한데 기분은 좋아. 이런 맛으로 항문섹스를 하나 봐"

"봄지가 좋아? 항문이 좋아?"

"당연히 봄지가 더 좋지 항문이 좋을 리가 있겠어. 꿩대신 닭이라고 어쩔 수 없으니까 항문에다 하는 거지 머. 세게 해 줘"

"이렇게?"

"아니 더 세게. 팍팍! 응 빨리, 더 빨리!"

전등남은 두 손으로 앵두의 엉덩이를 잡고 힘껏 애널섹스를 해댔다. 앵두의 항문에서는 이상한 하얀 점액질의 액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등남은 여자가 극도로 흥분하면 항문에서도 분비물이 나오는 모양인가 보다 생각했다.

잠시 후 앵두의 항문에다 사정을 한 전등남은 앵두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네 항문에서 하얀 점액질이 나왔어. 넌 봄지에다 할 때도 항문에서 하얀 게 나와"

"그래서 좋아? 싫어?"

"엄청난 희열을 느껴. 정복감 같은 거 느꼈어"

"오빤 내 남첩이야. 하늘 같은 주인님을 마구마구 따먹으니 기분이 째졌겠지. 그게 바로 오빠의 정복감의 실체야"

"그런가 봐. 네 것은, 아니지 내 것은 진짜 맛있어"

"오빠 것도 좋아. 난 이제 딴 남자들과 섹스 안 해. 우리 천재오빠만 믿고 살 거야. 그나저나 태희언니 하고 셋이서 이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데 오빤 좋겠다. 오빠? 누가 더 맛있어? 내가 더 맛있지?

"그건 비밀이야. 비교는 절대 해선 안돼. 넌 너대로 맛이 있고, 태희는 태희대로 다른 맛이 있어. 여자는 다 다른 향기와 맛이 있는가 봐"

"오빠! 난 무슨 맛인데?"

"넌 즙 많은 향기로운 포도맛이야. 중국 신장성의 베이지색의 자그마한 사과 같기도 하고. 과일 하면 사과나 포도는 신장성 게 세계에서 최고지. "

"태희언니는?"

"그런 걸 여자들은 왜 묻지? 태희도 너랑 똑같이 묻더라"

"그래서 태희 언니는 무슨 맛인데? 빨리 말 안 해?"

"머랄까 즙 많고 잘 익은 중국 신장성 사과! 신비한 향기가 나는 달콤한 맛이야! 이제 됐지?"

"난 이름 뜻이 예쁜 앵두인데, 나 채앵에게 왜 앵두맛이 안 나지? 암튼 맛있대니 됐고, 나 오늘 항문 처녀 뗐다. 오빠는?"

"나도 항문섹스는 처음이야"

"태희언니 하고 안 해 봤어?"

"응 너랑 처음이야"

"휴 비록 항문이지만 나도 이제 처녀를 오빠에게 준 거야. 그러니 앞으로 잘해야 한다. 남첩의 맹세를 잊으면 안 된다. 알았지?"

"그래 알았어. 대신 넌 앞으로 절대로 딴 남자들하고 섹스하면 안 된다. 넌 결혼한 몸이고 에이즈나 성병 걸리면 태희언니도 나도 우리 셋이 전부 같이 병 걸리니까 조신하게 공부나 열심히 해"

"알았어. 내가 바본가. 결혼한 유부녀가 어떻게 바람을 피우고 다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본부인이고 태희언니는 우리 첩이다! 난 남첩도 여첩도 양팔에 끼고 행복하게 살 거야. 그나저나 그 많은 병원비를 어떻게 오빠가 냈어? 학생 연구원이 무슨 돈이 있다고?"

"엄마가 비상용 신용카드를 줬어. 외국에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앵두는 갑자기 울음보를 터트렸다.

"엉엉"

"갑자기 왜 그래 앵두야"

"나도 태희언니처럼 어머니께 사랑받고 싶다. 이 나쁜 남첩아! 서류상 내가 정식 아내인데도 어머니는 동거녀인 태희언니만 품에 끼고 사랑하시다니 너무해 엉엉"

"진정해. 내가 엄마한테 잘 이야기할게"

둘은 날이 새도록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등남은 그날밤 여자에게는 입이 세 개가 있다는 말을 비로소 깨달았다.

전등남은 앵두의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UCLA 학교 근처로,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된 아파트로 앵두를 이사를 시키고 그 신혼집에서 2세를 갖기로 맹세하였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아침 6시를 알렸다. "뻐꾹뻐꾹! 6시!"

"알았어 알았다고! 일어난다. 일어나! 우리 서방님 모처럼 오셨는데 단잠이나 깨우고 넌 나쁜 뻐꾸기야!"라고 하며 앵두는 배시시 웃었다.

앵두는 과거 여왕벌에서, 누구나 따먹을 수 있는 헤픈 앵두에서 누구도 따먹지 못하는 금단의 열매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교접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남편이자 남첩인, 미래의 2025년에 '전등을 갈다 삐끗한 남자'인 전등남 황우영과 그의 또 한 사람의 사실혼 아내인 김태희 두 명뿐인 것이었다.

앵두의 이러한 양성애적 경향은 친정 아빠가 과거 한 지붕에서 진짜엄마와 여대생 첩을 끼고 배다른 동생을 낳고 살았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진짜엄마와 함께 사는 첩을 작은엄마라고 부르며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냈고, 그 인연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었기에 현재의 남편 전등남 황우영이 자신과 태희를 한 집에서 끼고 사는 일부이처의 신접살림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또한 앵두는 작년 대학 1학년 새내기 때에 무슨 약에 취한 듯 몽롱하게도 LGBTQ+ 비밀동아리의 여왕벌이 되어 수많은 남녀와 양성애를 허락했고 즐겼지 않았던가.

4월 7일 앵두와 가슴 아픈 작별을 하고, 서울에 온 전등남은 앵두가 유산했다고 간단히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2007년 4월은 앵두에게는 봄은 왔어도 봄 같지 않은 잔혹한 봄이었다.

반면 그의 아내 '이 고집스러운 여자'인 이고녀 김태희는 다음 달 5월 10일이 출산예정일이어서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었다. 그녀는 남산만 한 배를 어루만지며 남편과 이 아이와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기획하였다. 그것은 실존으로 본질이란 개념보다 우선하는 손에 잡히는 존재였다.

"아이 오빠! 뒤에서 막 넣으면 어떡해! 거긴 밑이 아냐. 약간 아래, 가만있어 봐. 내가 넣을게 아기 조심하고 살살 부드럽게 해" 이고녀는 채근대는 전등남의 만딩고를 잡아끌어 자신의 질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고녀의 몸은 뜨거웠다. 전등남은 임신해서 태아의 열과 합쳐져 아내의 몸이 뜨거운 것으로 생각했다. 아내의 남산을 뒤에서 어루만지며 흥건하고 그 뜨거운 질에 들어가니 쾌감도 극대화되었다.

그는 앵두와 했던 첫 항문섹스를 이고녀에게도 해보고 싶어 했다. "태희야 나 여기에 한 번 해보고 싶어. 여기에 하면 안 될까?" 이에 아내 이고녀, 태희의 대답은 놀라웠다.

"그런 걸 묻고 하는 바보가 어딨어? 우린 부부니까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실은 나도 경험상 한번 해보고 싶어. 나 항문 속까지 깨끗이 씻고 올게. 좀만 기다려" 하고 이고녀는 전등남에게 키스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씻었다.

사실 이고녀는 섹스에서도 앵두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앵두가 자신의 남편에게 항문을 주었다면 자신도 애널섹스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여자의 오기이며 질투였다.

시어머니인 공주가 딜도와 함께 준 윤활제를 항문에 바르고 한쪽 다리를 큰 베개 위에 올리고 남편을 받아들이니 고통과 함께 뒤에서 남편의 남성이 밀고 들어왔다.

심호흡을 하고 오기로 참고 있으니 남편의 진퇴가 격해지며 그녀 또한 묘한 쾌락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남편의 성기가 주는 애널섹스의 고통은 이미 사라지고 그녀의 머릿속은 점차 뒤죽박죽이 되고 혼미해져 쾌락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전등남은 딱딱한 성기를 항문에서 꺼내어 질에 삽입하는가 하면 다시 항문에 삽입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이고녀의 항문 속에 사정하였다.

"우리 시리우스! 고생했어. 내가 캐리어에 집어넣은 콘돔 하나도 안 썼더라. 채앵이 걔 성생활이 좀 문란한 것 같지 않아? 걔 때문에 우리 아기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 전부다 병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앵두는 그럴 사람이 절대 아냐. 모르긴 몰라도 앵두는 우리를 위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할 거야"

"오빠야! 앵두에게 딜도와 사내인형을 보내줄까? 어서 누군가 나타나서 앵두를 채가면 좋을 텐데.

앵두 걔는 얼굴도 예쁘지, 쭉쭉빵빵이지, 게다가 팔등신이라 남자들이 위축이 되어 접근을 못할까 봐 걱정이네. 다행히도 자연유산이라니 전화해서 위로나 해줘야지 호호"

"앵두는 너랑 나랑 자기랑 셋이서 일부이처로 살고 싶어 하더라"

"그건 절대로 안돼! 남녀 간의 사랑은 절대로 나눌 수가 없는 거야. 으으 징그러워. 채앵이가 내 밑을 만지고 거기에 키스할 걸 상상하면 우웩 토 나올 거야. 1부2처제 결혼생활은 절대 안 돼!"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던 거야?"

"어떤 성도착자가 앵두가 LGBTQ+ 비동에서 여왕이 되어 양성애를 했다고 인터넷에 올렸는데 경찰이 그자를 검거했고 스카이대 LGBTQ+ 비밀동아리는 완전히 해체되고 멤버들은 이번 학기에 다들 학교를 그만두었대"

"앵두는 제일 먼저 반성하고 유학을 갔으니 별문제야 있겠어?"

"앵두 걔는 참 잘빠져나간다니깐! 오빠가 걔 랭귀지스쿨 유학 가게 해 줬지? 그렇지?"

"태희야! 젖가슴이 빵빵하네. 젖이 나오면 나에게도 좀 줄거지?"

"알았어! 우리 아기가 먹고도 젖이 남으면 실컷 많이 먹여 줄게. 갑자기 팔자에 없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게 생겼네. 우리 큰아들, 엄마 젖이 먹고 싶은 거야?"라고 하며 이고녀는 마치 아기를 대하 듯이 전등남의 볼기짝을 톡톡 쳤다.


"전등남은 남반구 광학망원경 설치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랴, 이고녀의 눈치를 피해 유산의 슬픔에 잠겨있는 앵두에게 날이면 날마다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전화를 하랴, 이고녀의 배도 어루만지며 태어날 아기와도 정신적 교감을 하랴 정신이 없었지"라고 라비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래서 끝이야?"

"아니, 우리 모두는 과거 자신이 행한 각자의 업대로 현세와 미래가 결정되지. 그것을 카르마라고 해. 앵두의 업, 즉 카르마는 그녀가 여왕벌로서 출산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교를 즐겼다는 나쁜 업보로 이번 출산이 파괴되는 카르마를 겪은 것이야"

"이고녀 김태희의 카르마는?" 나는 사뭇 궁금하여 라비에게 물었다.

"김태희의 부모는 반듯한 학자로, 가정주부로, 인간답게 살아왔지. 그 업으로 세 쌍둥이 중 황우주와 결혼한 장남 태민이와, 천재 황우영과 사실혼에 든 차녀 태희는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의 행실을 따르고, 공주네 대가족의 영향을 받아 반듯한 인생을 살게 되는 카르마가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가정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구나" 마르코가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사실 인간은 쾌락을 좇아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이지. 자식들의 모범이 되어 똑바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자식들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착한 업보를 쌓기 위하여 고달픈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지"

2007년 앵두에게 있어 자신이 계획한 미래가 파괴된 잔인한 봄이 이고녀 태희에게는 미래를 설계하는 희망찬 봄이 되었다. 라비는 이 봄에 각자의 카르마가 실현되었다고 정의하였다.

2007년 5월 10일, 이고녀 김태희는 딸을 출산하였고, 앵두는 유산의 고통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공부에 매진하였다.

전등남은 이 아이 이름을 하늘이라고 지었다. 불행히도 앵두가 호적상 아내였으므로 황하늘이 아니라 엄마의 성을 따라 김하늘로 엄마의 호적에 올리게 되어 아빠 없는 아이가 되는 새로운 카르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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