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2층 건물 유스호스텔 중환자실에서 태양은 항상 내 머리 뒤쪽에서 떴다. 아마도 나는 지금 동쪽 방향으로 머리를 뉘고 있을 것이다.
아침이 되니 차려진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제 치료를 받고 어디 새로운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일까? 그들의 기뻐 떠드는 소리는 다소 하이톤에, 높았고 시끄럽기까지 했다.
오고 가는 환자 손님들의 설렘에 들뜬 목소리가 나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유령의 계단을 통해 밑의 층 다른 세상,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밤이 되면 누군가가 2층으로 체크인하러 오리라. 그러면 저 따스한 질감의 오크 원목 리셉션데스크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간호사들도 덩달아 신이 나겠지.
호스텔 조식타임 6:00 - 8:30 이 지나 9시가 되면 일상은 바쁘고 분주해졌다. 바빠진다 하여도 나와 같은 투숙객들은 환자용 이동침대인 메디컬 스트레처에 눕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바뀌 달린 이동식 침대 스트레처는 사람들을 헤집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수술실에도 가고, 엑스레이며 시티도 찍고, MRI도 찍고, 안과며 소화기과 등 타과에도 진료받으러 가야 하고, 상처 환부에 드레싱도 해야 하고, 아무튼 중환자실 환자의 하루 일과는 침대에 누워서도 바빴다.
중환자실 입원 첫날, 병원 근무자 누군가가 메디컬 스트레처를 끌고 와 사진 찍을 것이 많다며 어서 가잖다. 감색 유니폼이었던 것으로 보아 방사선과 근무자인 모양이었다.
그는 조선족 간병인과 함께, 나를 시트째로 스트레처에 옮겨 눕히고 곡예를 하듯이 침대를 밀고 나갔다.
누워서 이동 침상을 타니 꼭 유원지 놀이기구를 탄 듯이 재밌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진 찍으려고 스트레처는 나를 싣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이것은 재미없어! 요건 재밌는데! 이건 딱 내 스타일이야!" 아이처럼 사진 찍는 것을 재밌어하면서 영상 촬영을 하였다.
먼저 엑스레이는 뼈와 폐 등에 숨어 있는 나쁜 녀석을 잡는데 가성비 끝내준다고 한다. 건강상 의심 가는 곳이 있다면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찍는데 비용도, 시간도 별로 들지 않았다.
시티, 컴퓨터단층촬영을 하는 데 있어 거부 반응이 있나 없나 검사하려고 주사하는 후끈한 조영제~ 후끈한 느낌이 정말 괴이하였다.
신경을 제외한 신체 부위 -뼈던, 허파던, 혈관이던, 장기던- 어디든지 시티 촬영을 하면, 웬만한 것은 다 찾아낸다고 했다. 아무튼 찍으라고 하면 군말 없이 다 찍었다.
저녁 식사 시간 후, 이번에는 MRI를 찍으러 나갔다. MRI 자기공명장치는 커다란 통돌이 세탁기 같았다. 한 번 찍는데 몇 십만 원 나온다고 했다.
담당자 말씀이 촬영 시간도 장장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하여간 찍는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후끈후끈한 조영제를 맞은 채, 신경을 포함하여 인체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던 찾아낸다는 통돌이 세탁기 통 안에 누웠다.
조영제가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니 시티 촬영 때처럼 이상하게 몸이 화끈거렸다. 이어 방사선과 담당자가 내 귀에 귀마개를 씌워주니, 수수깡 안경만 있다면 영락없는 눈사람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MRI, 넌 통돌이 세탁기야!" 중얼거리면서도 동동대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동동동동"
"둥둥둥둥"
"통통통통"
별 희한한 소리들을 내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MRI 통속에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MRI 영상촬영 후, 나를 실은 스트레처가 사람들을 헤집고 다시 병동 중환자실에 도착하였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매끼 간을 전혀 하지 않아 심심하기 짝이 없는 병원식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수액에만 의지한 나는 날이면 날마다 굶은 것이 일이었다.
그날 밤, 담당 의사로부터 내가 받아 든 교통사고 성적표 발표가 있었다.
"1. 허리로 치면 요추체 2번 압박골절이오!"
"2. 발목 삼복사 골절이오! 아주 조각났오!"
"3. 고관절 대퇴부 경부. 간부 골절이오!"
"4. 우측 쇄골골절이오 아주 제대로요!"
여기에 나중에 다른 병원에서, 내 몸은 2개의 부상진단명을 추가하게 되었다. 치아손상과 우골 신경손상 절단이다. 이를 더하여 교통사고 부상성적표를 완성하면 다음과 같았다.
"5. 치아 5개 손상이오! 스트라우만 임플란트 1,200만 원 추가요!"
"6. 우골대퇴부 신경절단. 다리마비오!"
도대체 얼마나 다친 게야? 참 많이도 다쳤다. 당시 찢어지고 부서진 몸 상태를 본 해남군 북평파출소의 교통경찰이 조선대학병원으로 즉시 이송하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카론이 스틱스 강어귀에 매어놓은 배를 풀면서, 이런 만신창이 몸뚱이를 한 나를 보고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지랄염병 많이도 부서졌네 부서졌어! 보아하니 뱃삯도 없겠구먼! 이놈 쫓아내고 혈곡주나 한 사발 때려야겠다! 흐흣!"
두 번째 밤이 으슥해지자, 지병을 가진 여행객들이 고질병을 고치려 체크인하였다. 2층 유스호스텔 중환자실의 밤이 깊었다. ICU의 밤 세상이 바야흐로 열리는 순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