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간병인은 허리와 오른쪽 허벅지에서 발끝까지가 심하지만, 곧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렇지만 오른쪽 다리 전체에 댄 부목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전혀 감각이 없자, 이러다가는 오른발이 아예 마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병인에게 오른쪽 발가락 운동 좀 시켜달라고 하였다.
중환자실에서 간병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대단히 열악하였다. 간병인들은 몸이 불편한 환자 옆에서 24시간 내내 환자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녀들은 보조 의자에서 쪽잠을 자야 했고, 반찬도 자신들이 준비해 와서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더군다나 나이가 70이 넘은 간병인에게 있어, 축 늘어진 75킬로그램의 환자를 운동시킨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이 운동시키라는 오더가 없었기 때문에 그건 안됩니다."라고 간병인은 거절하였다. 그런 대답을 듣는 순간에는 서운했지만 이해는 되었다.
"발가락 쪽이 근질거려 미치겠는데 저기 있는 갈고리 주걱손으로 좀 긁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로 거절뿐이었다.
"며칠 전에도 등하고 허리를 빡빡 긁어놓으셔서 온몸이 긁힌 상처투성이예요. 좀 참아보세요"라고 하며 그 이유까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잠시 후 나는 십여 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초기에는 날아다녔다는 그녀의 무용담을 들어야 했다.
나를 운동시키려면 체력이 필요하나, 나이가 들어서 지금은 기력이 부쩍 딸린다는 뜻이었다. 나 또한 듣고 보니 나이 든 그녀가
대변조차 못 가리는 환자의 간호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간적인 연민마저도 들었다.
교통사고로 입원해서 나는 거의 먹지를 못했다. 식욕 자체가 없고, 심심한 병원식은 맛이 없고 역겨웠다.
때문에 간병인이 이것 먹어봐라, 저것 조금만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도저히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 저염식 반찬은 죄다 간병인에 주었다.
또한 희한하게도 약도, 심지어 물도 삼키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간병인은 될 수 있는 한 물이던 우유던 자주 권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먹은 것이 별로 없으니 똥 싸고 싶은 배변욕도 생길 리가 없었다. 요의 또한 생기지 않았다.
설령 요의가 있다 해도 응급실 입원 첫날, 어떤 의사가 요로를 통해 카테터를 방광에 삽입하는 도뇨술을 행하였기에 소변 배출에는 문제가 없었다.
소변이 차면 자동으로 카테터를 통해 매단 유린백으로 배출되니, 이 해방감은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줌 마렵다고 간병인 눈치를 보며, 어디가 가려운 똥개처럼 엉거주춤 기가 팍 죽어있을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특히 밤이 되면 요의 때문에 그녀를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 갈 필요가 없어진 나는 밤이 되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유령들의 뒷마당 파티를 기웃거렸다.
나를 가해한 여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8시경, 서울 말 같기도 하고, 경상도 말 같기도 한 사투리가 간병인이 귀에 대어준 휴대폰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젊은 날, 술 푸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들었던 송해의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에서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목소리는 간간히 전라도 사투리까지 섞어 쓴 정체불명의 아랫지방 사투리였다.
내 몸을 이 지경으로 망가뜨린 가해운전자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저 때문에 크게 다치셨는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극히 평범한 목소리였다. 거듭 사과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고조되거나 기어들어가거나 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였다.
대화를 아무리 오래 했더라도 뒤돌아서면 목소리의 음색을 기억해 내기가 힘든 그런 부류의 특색 없는 음성이었다.
그녀는 막 들어도 금방 잊어먹을 법한 그런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통상적인 사과를 했다. 음색으로 보아 미안함은 전혀 없는 듯했다.
아니, 그녀는 미안한 것은 차치하고, 이제부터 자기변명과 연민을 좀 늘어놓을 테니 이해하고 들어 달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그렇게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통증 있는 곳도 없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오히려 상대방 운전자를 위로하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자랑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희 집에 차가 3대 있는데 카니발은 잘 안사용해서 보험료도 아낄 겸 종합보험을 안 들었는데 하필이면…"
그녀는 그 와중에도 자기 집에 차가 3대나 있다고 자랑을 했고, 잘 안 끌고 다니기에 종합보험을 안 들었다는 변명을 하며, 무보험차량 사고를 일으킨 것에 대하여 자기 합리화를 해대기 시작하였다.
무보험차량을 몰고 다니면서 과속을 하고, 중앙선 침범을 하고, 사람을 차로 밀어버리는 저 살인미수자의 변명과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다.
병상에 누워 듣고 있던 나는 얼굴에 난 큰 상처 때문에 거즈와 하이드로겔 드레싱으로 안면을 덮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은 마치 헤드기어를 쓰고, 마우스피스가 날아갈 정도로 상대방에게 얻어터진 복싱선수 같았다.
몸에는 주렁주렁 생체신호 파악용 센서들을 매달고 ET가 되어 듣고 있어야만 하는 처지가 기가 막혔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그녀와의 통화를 끝내고 싶었다.
세상 떠난 어머니 말씀으로 치면, 그녀는 속칭 여시였다. 그것도 꼬리를 감추고 사람으로 둔갑한 백여시였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는 포도를 따지 못하자 "저건 신 포도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철학적으로, 이것은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는 방어기제이다.
즉, 자기 합리화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녀가 내게 늘어놓은 변명이란 자신의 실수를 미덕으로 바꾸려고 하는 가해운전자의 약자적 자기 방어에 지나지 않았다.
니체가 주장한 데로, 변명이란 본질회피를 꾀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약자적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경상도 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다른 지방에서 오셨습니까?"
"부산에서 왔는데예 해남 송지로 이사 온 지는 얼마 안 되고요. 이런 큰 사고를 내서 죄송해서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무통주사로 인해 나는 어떠한 통증도 느끼지 못했기에 저 무지막지한 가해운전자가 나를 부수고,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갔다는 것조차도 실감나지 않았다.
"제가 누워있어서, 얼마나 다쳤는지는 잘 모르지만 크게 아픈 곳은 없네요. 해남에 살러 오셨다 하니, 정착하시는데 피해가 안 가게끔 저도 신경을 쓰겠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이런 통상적인 대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그 통화를 끝으로 그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까지도!
반전은 늘 일어난다. 그다음 날, 해남경찰서에 운전자에 대하여 확인하니 부산 여자며, 나이가 60대 같으나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더 이상 세세히는 알려줄 수는 없다고 하였다.
경찰에 따르면 나를 친 무보험 카니발은 해남 송지, 어느 같은 동네에서 사는 남자에게 빌렸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그녀는 방귀깨나 뀌며 살고 있는 가정 있는 시골 촌놈을 홀리기 위하여 부산에서 왔고, 얼뜨기 시골 내연남에게 무보험차량을 빌려 내 몸을 부숴 버린 신종 원정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무보험차량 소유주의 내연녀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흐르자, 그녀는 마음이 변하여, 어차피 벌금형 일건대, 벌금 맞으면 벌금만 내면 되지, 병원으로 찾아가 사과는 안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녀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우습게 본 것이다.
'이 년이 과속에, 중앙선 침범에, 더군다나 중상해 사고를 내놓고, 네년 마음대로 고작 벌금만 내면 되는 그런 법도 있다더냐!'라고 곱씹었다.
그러면서 오기가 생겨 내 몸을 이렇게 망가뜨린 네년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법과 양심은 어디에다 흘려놓고, 몸뚱어리만 가지고 다니는 네년을 응징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괘씸한 생각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언뜻, 이 모든 것을 누군가가 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중환자실 내 침상 왼편 커튼 뒤, 그러니까 비밀 계단을 통하여 연결된 플루토의 지하세상 유령들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2025년 3월 26일, 오전 4시 20분, 유스호스텔 뒷마당에 기울어진 눈썹달이 떴다. 2층 건물 호스텔 내부, 내가 누워있는 커튼 뒤 유령의 계단이 흐느끼듯이 삐걱대었다.
다들 플루토의 세계에서 유령의 계단을 올라, 달이 뜬 뒷마당을 향해 부산하게 모여들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치료를 목적으로 찾아온 이들이 머물던 쉼터, 바로 조선대 대학병원 진료 및 치료여행 유스호스텔이었다.
지금 막, 기울어진 조각달이 뜬 뒷마당엔 너풀대는 유령들과 물상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휘이잉~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며 자신의 키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그림자들이 파르르 떨었다.
마치 밀레니엄 이전 병원 복도의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처럼 그림자들이 위태롭게 깜빡였다.
태양과 같은 각도에 달이 늘어섰기에 새벽녘에 뜬 그믐 달빛은 너무 약했고, 심지어 낮동안에도 하늘에 떠 있었음에도 강렬한 햇볕 때문에 그믐달은 보이지 않았다.
모닥불이 탁! 탁! 터지며 불꽃을 뿜었고,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석쇠 위에선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통통한 랍스터가 등을 둥그렇게 말고 츠아악! 비명을 질렀다. 그 옆에 굴도 치익! 하고 익어갔다. 감자와 고구마는 부드럽게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를 뿜어댔다.
모두가 코를 킁킁대었다. 이 바비큐 냄새, 랍스터의 바다 향, 굴에서 풍기는 짭짤한 불맛, 감자와 고구마의 구수한 풍미까지! 모두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제니는 유방암 비관 자살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온 마르코는 심장 수술 실패로, 적도의 보르네오섬 셈포르나에서 온 아이샤 시디크와 파티마 시디크는 샴쌍둥이 분리수술 실패로, 인도의 힌두교도 라비 샤르마는 심부전으로 퉁퉁 부어올라 숨졌다.
그리고 오늘, 새 얼굴이 나타났다. 인간 박삼식! 바로 나다. 영혼으로서는 푸어박이라고 불렸다.
중환자실의 비좁은 침대에서 내 영혼이 슬쩍 빠져나와 이 바비큐 파티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왜 나왔냐고? 아마도 그믐 때의 묘한 힘이 나를 불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자감시장치인 바이탈 싸인 모니터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아닌지 직접 시험해 보고 싶어서, 나의 넋이 잠시 육체에서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뒷마당의 바비큐 파티. 다양한 메뉴의 향연이 펼쳐졌다. 석쇠 위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몸을 뒤틀었다. 랍스터 꼬리가 불에 닿으며 붉게 변신하고, 굴은 짠 바다 내음을 풍기며 익어갔다.
태양은 끝내 그를 보호하지 못했지만,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의 보호라는 이름뜻을 가진 라비 샤르마는 힌두교 신앙 때문에 채소 꼬치—호박, 버섯, 파프리카—와 구운 감자를 집어 들었다. 이승에서 브라만이었던 그는 마른 손으로 꼬치를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이 감자 냄새, 뭄바이 시장에서 어머니가 구운 옥수수 같아. 매일 저녁, 그 냄새에 이끌려 집으로 달려갔지.”
그의 목소리는 사원의 연기처럼 부드럽게 퍼졌지만, 서늘한 떨림이 묻어나 제니가 깔깔 웃으며 끼어들었다.
“라비, 유령이 돼도 감자 사랑은 여전하네! 오클라호마 바비큐 파티에서는 랍스터는 못 봤지만, 이거 굽는 냄새는 갈비 못지않아!”
이렇게 말하며 복스러운 손으로 랍스터를 뒤집자 탁!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튀었다.
"앗 따가워!" 그녀의 놀라는 소리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체를 공유한 아이샤 시디크와 파티마 시디크 샴쌍둥이는 할랄 닭고기와 구운 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셈포르나 같은 시골 처녀인 우리에게는 굴 같은 건 구경도 못해봤지. 근데 굴에서 풍기는 이 짠 냄새가 남자의 정액 냄새일까? 우리는 한 번도 성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궁금해" 하체를 공동 소유한 아이샤와 파티마는 눈을 반짝였다.
그녀들은 모닥불 석쇠 위에서 굴을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푸어박, 이 굴 좀 봐, 완벽하게 익었어! 그렇다고 겁먹지 마. 널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깐”라고 하며 농담을 던졌다.
마르코는 브라질 사람답게 삼바 리듬을 흥얼거리며 석쇠 옆에서 몸을 흔들었다.
“이 랍스터 굽는 소리, 리우 카니발 북소리 같네! 타니깐 고구마도 꺼내고 좀 더 굽자!” 그는 고구마를 모닥불에 올리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짝짝! 마르코가 손뼉을 치며,
“제니야! 유령이 랍스터 굽는 법을 아는 거 실화야? 나 이거 버터 발라 먹고 싶네!”라며 깔깔대자, 뒷마당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바비큐의 따뜻함과 그것을 즐기는 유령들에게서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간미가 피어났다.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유령들은 생전의 추억을 꺼내며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제니가 석쇠 위 랍스터를 가리키며, “오클라호마에선 이런 해산물 바비큐는 꿈도 못 꿨어. 푸어박, 넌 뭐 좋아했어?”라고 묻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어 부드럽게 운을 떼었다.
“중환자실에선 음식 냄새도 못 맡았는데… 이 고구마, 우리 엄마가 화롯불에 구워주던 거 같아. 1960년대 후반엔 배고파서 겨울이면 이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어”
이때 고개를 끄덕이던 라비가 구운 감자를 들여다보며, “뭄바이 시장에서 어머니가 꼬치를 구워 팔던 때, 병 때문에 쓰러지기 전까지 매일 갔었어. 지금은… 이 감자 냄새가 날 위로해.”
퀭한 눈가가 흐려지자, 시선을 돌려 달을 올려다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 달빛, 시바의 눈 같아. 우릴 보고 있지만, 놓아주질 않아.”
제니가 나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푸어박, 넌 왜 이 파티에 온 거지?”
“중환자실 침대… 너무 무서웠어. 따뜻한 이 모닥불과 랍스터, 굴 냄새가 날 불러냈어. 제니 넌 왜 유령이 된 거야?”
나의 말에 제니가 당당하게 말했다.
"난 유방암 때문에 자살했어. 유방을 절제했더라면 살았을 텐데 난 이 아름다운 가슴을 포기하지 못했어. 추한 몸이 되어 죽느니 차라리 온전한 죽음을 택한 거지"
제니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듣고 있던 라비가 한마디 했다. "생명은 우리 게 아냐 제니. 우주로부터 잠시 빌린 거야. 그래서 누구에게도 자살할 권리가 없는 거야"
라비의 이 말에 제니도 몹시 후회하는 듯 서글프게 흐느꼈다. 그러자 모두가 제니의 손을 잡고,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이며, 얼싸안자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제니는 역시 뒤끝 없는 아메리칸이었다.
새벽 6시, 모닥불이 잿더미로 변하며 불씨가 점점 꺼져가고, 그믐달이 쫓아오는 여명으로 희미해지자, 유령들의 형체도 흐려졌다. 이제 갈 시간이 된 것이었다.
마르코가 삼바 리듬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이 바비큐 파티, 우리를 치유하려는 걸까, 아니면 영원히 묶어두려는 걸까?”
그러자 샴쌍둥이인 아이샤와 파티마 시디크가 속삭였다.
“이 달빛, 알라의 선물 같아. 하지만 이 여명은… 우릴 가만 놔두지 않아. 자꾸만 눈까풀이 무겁단 말이야”
제니가 기타를 퉁기며 마지막 포크송 메기의 추억을 부르자, 그 멜로디가 여명 속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유령도 나쁘지 않아.” 중얼거리는 제니가 슬퍼 보였다.
나, 푸어박이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환자실에선 숨 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 랍스터와 굴 냄새, 고구마 냄새가 날 살게 해.”
“푸어박, 특히 이 굴과 감자 냄새가 널 깨운 거야. 우리 모두, 이 바비큐로 다시 살아난 기분이지.”라고 굴과 감자를 뒤적이던 라비가 미소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아침 6시 26분, 해가 떠올랐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고, 곧 그믐달도 사라졌다. 파티가 끝나자, 나도, 유령들도, 문과 유령의 계단을 통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