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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어디에나

by 꽃피네

일상은 어디에나 있다. 이곳 조선대학병원 정형외과 71 병동 중환자실에도, 일상은 있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거동이 불편한 중환자에게도, 간병인에게도 일상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의미는 존재였다. 하루에도 한두 번은, 대개 한밤중에 울리는, 심정지와 같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진들의 긴급호출 싸인인 코드블루가 방송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일상을 버리고 우주로 떠날 것이다. 죽어야만 일상도 끝이 나는 법이다. 일상의 막다른 끝, 그 코드블루도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


3월 26일, 입원 4일째 날,

중환자실의 아침은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공간이다.

노비구니는 더 이상 반야심경의 독경이나 천수경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같은 첫머리를 외우지 않고, 간병인에게 투정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세속명 복희, 연화스님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정신은 마지막 윤회를 끝내기 위하여

반쯤 저 세상으로 떠난 듯하였다.

욕쟁이는 욕설로 자신의 고통을 뱉어내며 간병을 하는 아내와 딸들과의 관계를 다소 꼬이게 하였고, 전등을 만지다 떨어진 환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24시간 붙어있었고 한 서구형 체형의 여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들락거렸다.

그중 서구형 체형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은 과거의 부인이었고, 보통키의 균형 잡힌 몸매의 기품 있는, 늘 붙어있는 부인은 과거 첩살이를 한 현재의 부인이었다.

서구형 늘씬녀는 마치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서 간병하는 여자에게 아주 다정하게 언니라고 불러, 이들이 매우 친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두 사람 모두 다 30대 초 중반이라 해도 속을 만큼 예쁜 동안이었다. 1부 2처의 참으로 새로운 가족형태의 남녀들이었다.

이처럼 낙상이라는 사소한 실수가 이 세 사람의 삶을 뒤흔들었고, 그들은 각자의 간병인과 함께 이 차가운 병실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하지만 그 아침은, 어쩌면, 그들의 마지막 아침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술 후 예후가 절망적인 노비구니에게는 그러하였다.

아침 6시 30분,

창문 커튼이 처져 있는지 어두컴컴하였다. 유령들과의 바비큐 파티를 끝내고 넋이 막 돌아왔을 무렵, 연변에서 온 간병인이 부스럭거렸다. 세안 비누, 면도기와 머리를 감길 세숫대야를 챙기고 있는 중일 것이다.

혼자서는 옆으로도 돌아누울 수도 없는 나에게 세상은 반쪽으로 보였다. 이러한 장애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도 아침 일과가 시작되었다.

간병인들을 포함하여 총 8명이 공유하는 공간, 한 사람이 움직이니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움직이고, 잠귀 밝은 환자들도 선잠을 깬 아이처럼 칭얼대니 실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70여 세의 연변에서 온 간병인,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만큼은 전문가였다. 아니 자기 분야만큼은 최고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았다.

간병인에게 간병하는데 필요한 용품을 사라고 돈들을 주었는데 그녀는 100원짜리 하나까지 다 기록하였다. 그녀는 절약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용품만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사 온 간병 용품들을 보자면, 세안비누는 손에 쥐기 용이한 90 그램짜리, 사각의 납작한 핑크색 비누를 사 왔다.

그것은 해피바스 오리지널보다는 못하지만, 비누향이 자연스러웠으며 거품도 풍부하였다.

마치 그 옛날 언젠가 써봤던, 한 개에 40달러에 육박하는 에르메스 비누의 풍부한 거품 느낌이나 진배없었다.

싸구려 비누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에르메스 비누보다도 자연스러운 꽃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세숫대야는 머리를 뉘었을 때 목이 아프지 않도록 낮은 것을 사 왔다. 기저귀는 특대로 아주 큰 것을 준비했는데, 이는 나중에 관장할 때, 넓어서 시트로 튀지 않는 진가를 발휘해 주었다.

몸을 닦아줄 때나, 머리 말릴 때 필요한 수건은, 물기가 한 번에 제거되는 송월타월을 사 왔으며, 양치용 투명한 플라스틱 컵은 깊고, 주둥이가 커서 아주 편했다. 무엇보다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고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하였다.

얼음팩은 사이사이를 누벼서 팔이나 다리, 무릎 등 신체에 착 감기는 실용적인 것을 사 왔다. 그녀는 돈을 지혜롭게 쓸 줄을 알았다.

그녀는 아침마다 먼저 내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상 위에 능숙한 솜씨로 커다란 비닐을 깔았다. 다소 차가운 비닐은 내 몸에 깔려 바스락거리며 저항하였다. 이어 간병인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와 몸을 씻겼다.

"피부가 너무 고우세요 꼭 어린아이 같아요"라고 하며 말도 안 되는 과찬도 할 줄 알았다.

아무렴 누가 세월을 비껴간다더냐! 그렇지만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힘든 일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피부가 유달리 좋은지도 몰랐다.

내보이고 싶지 않은 지저분한 곳을 씻길 때는 그녀는 매우 과격해졌다. 핑크 비누칠을 한 샤워 타월을 손으로 쓱쓱 비벼 거품을 낸 다음 사정없이 빡빡 밀었다.

부드럽거나 상냥한 감촉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의도적으로, 목욕시킬 때 부자연스럽고 민망한 발기 현상을 피하기 위한 그녀만의 직업적인 해결책인지도 몰랐다.

'여자 손이 보통이 아니구나. 남자 환자들 여럿 잡겠어' 하면서도 얼마나 빡빡 밀길래, 남녀 간의 불편한 생각이나 분위기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온몸을 씻겨주고 타월로 닦아주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면도를 할 때나, 머리를 감길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공들여했다. 면도는 5중 면도날을 사용하여 면도 후 뒤끝이 깔끔하였고, 아기를 감기듯이 내 머리를 한 팔로 안아 대야 위에 팔을 기대면서 감겼다. 시종 부드럽게 씻겨 주었다.


"야! 너 엊저녁 어디 갔어? 이런 쌍년 봄지(버자이나)를 찢어 뿌까!" 욕쟁이가 갑자기 포문을 열었다.

그는 갑작스런 사고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옆에서 24시간 내내 붙어서 간병해 주는 고마운 아내에게 깨자마자 욕을 해댔다.

중환자실의 평균 연령은 50세가 넘는다. 누군가 "찢을 걸 찢어야지 그걸 찢으면 어떡해요. 큰일 날 사람이네" 하기도 하고 "지껏 지가 찢겠다는데 누가 머라남"라고 하기도 하고 "어제 밤새 찢고 아침부터 또 찢냐!"하고 욕쟁이에게 핀잔을 주며 놀려대었다.

지난밤 욕쟁이 환자는 한순간 미쳤는지, 자기가 다친 것은 순전히 저년들 탓이라고 길길이 날뛰다가, 간호사들에 의해 양손, 양발이 침상에 묶인 것도 모자라, 진정제 맞고선 여태껏 퍼질러 자고 이제야 깨지 않았던가! 저 원수는 깨자마자 또 찢는단다.

욕쟁이 아내는 저 무지막지한 거친 욕설을 들으며,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여태껏 행복하게 살았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남편의 쌍욕이 주는 편안함,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남편에게 모욕당하는 그 찌릿한 쾌감과 위험한 전율이 그녀를 도착된 일편단심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의 별명은 딸기였다.

딸기에게 있어 남편의 욕설은 일종의 전희였으며, 그녀는 그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딸기는 어느새인가부터 이 세상 여인들 중 오직 자신만이 남편의 욕설을 들을 자격이 있으며, 이 남자는 자신을 제외한 어떤 여자와도 같이 살 수 없는 남자라는 안도감을, 자신만의 전유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욕쟁이 남편의 폭력적인 욕설이 주는 안정감과 믿음은 이내 성적 쾌감으로 변질되곤 했다. 그리하여 딸기의 새로운 오르가슴은 과거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욕설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었다.

달콤하고 으깨지기 쉬운 딸기처럼, 그녀 또한 욕쟁이 남편으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

그런 딸기가 남편에게 한마디를 했다.

"오빠! 아니 여보!

당신, 욕설은 반드시 침대에서만 하라고 했지? 앞으로 내 얼굴 안 보고 싶어?"라고 하는 순간 욕쟁이는 얼어붙었다.남편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미소 짓는 아내였다.

이 부부의 딸아이들도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좀 노는 '껌 좀 씹는다는 여자', 그렇지만 아주 깐깐하고 대찬 '껌씹녀'로 성장하였다.

딸들의 성격 또한 욕쟁이 아비로부터, 그것을 은근히 남몰래 즐기는 어미로부터 유전되었던 것이다.

흐릿해진 전등을 바꾸다 전기를 맞고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와 손목과 척추압박 골절된 40대 환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였다.

과거에 그의 아내였지만 이혼하였고, 지금 아내의 동의하에 셋이서 결혼관계를 이어온 이상한 관계의 이 키 큰 여자는 하루에 몇번 들렀다가 일찍 돌아가곤 했다.

중환자실에는 정해진 면회 시간외엔, 환자 당 한 명의 간병인만 입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는 너무나 조용하게 지냈기에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서는 은자의 나라에서 온 무력감과 천재의 허무함이 소리 없이 자라고 있었다.

이 전등남의 병상 곁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세 살 적은 자신의 현재의 아내이자 세 쌍둥이 여동생들의 친구인 '이고녀' 태희였다.

이 두 명 중 첫 아내였던 서구형 체격의 여자는 들렀다가 사랑하는 환자를 보고 볼키스를 하고 가고, 현재는 본부인이지만 신혼 초에는 수년간 첩살이를 해온, 환자를 일편단심으로 사모하는 이고녀가 혼자 간병을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아무튼 세 사람은 아주 친밀한 관계임에는 틀림없었다.


07시, 12시, 17시면, 식사를 실은 밥차가 도착할 것이다. 소금 간이 전혀 안된, 맛없기로 소문난 병원 저염식이, 병명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배달될 것이다. 그리고는 건강에 좋으니 먹으라고 강요할 것이다.

07시 30분이 되면, 날마다 오는 백운동 형이 병실을 찾아 10분 정도 이것저것 물어본 뒤 자신의 일터로 떠날 것이다. 이것 또한 형에게 있어 동생이니까 날마다 짬을 내 들여다보는 것이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병동은 09시가 되기 전부터 부산스러워진다. 각자의 정해진 일과 시간표대로 간호사나 의사들은 라운딩을 하고, 대학병원 진료의 총량을 높일 것이다.

환자들은 드레싱이나 깁스를 하러 처치실에도 가고, 타과 진료를 보러 가기도 하고, 치료진의 주문대로 엑스레이나, 시티 촬영, MRI 촬영하러 바뀌 달린 메디컬 스트레처에 누워 분주할 것이다. 이러한 환자들의 일상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종종 밤까지 이어지곤 할 것이다.

이렇듯 중환자실의 환자들에게 있어 절망과 언어적 폭력, 모순과 갈등이 배양되는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거기에 완치를 바라는 조그만 희망과 행복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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