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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총량

by 꽃피네

이제 곧 12가 되면 점심식사가 도착한다. 한술도 넘길 수 없는 병원 저염식, 결코 반갑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가 칼로리를 써봐야 얼마나 쓰겠는가를 따져보는 뇌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식욕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밥차 전동카트가 오면, 간병인들이 냉장고에서 사식 반찬을 꺼내, 자신들의 밥상을 차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약도, 우유도, 물도 잘 삼키지 못하고, 병상의 붙박이가 되어 있는 처량한 신세가 믿기지가 않았다.

또한 내 처지와 비슷한 중환자실의 다른 환자들이나, 가족 간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상심해할지도 상상해 보았다.

누워있는 지금과 교통사고 전의 나를 비교해 볼 때, 내 행복의 총량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하며, 아침식사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모르겠다. 누워만 있다 보니 우울증이 생겼나 싶었다.

또 스르륵 낮잠에 빠져들었다.

유령들이 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다.

"푸어박 우리도 너에 대하여 알고 싶어. 우린 널 인간 친구로 생각하거든" 제니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네 이야기 한 번 듣자"

"바람피운 것까지 죄다 이야기해야 돼"

"그럼 그럼 그런 걸 빠뜨려선 안되지. 안 그래?"

이렇게 해서 나는 유령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나는 부모로부터 썩 괜찮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남들이 흔히 겪는 일상의 고통을 몰랐다.

나의 특장점은 우선, 하드웨어적으로

1.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것이다.

2. 나이가 들었어도 검은 머리카락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3. 고혈압, 당뇨 등 지병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4. 체향, 체취가 전혀 없다.

이런 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하여 바쁜 현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편리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출출하다 싶으면, 60이 넘었어도, 어디를 가던지 밤중에 봉지라면 1개에, 달걀 1개, 식은 밥과 색다른 김치는 식도락의 진리였다.

나는 생물적 연료를 에너지로 잘 소비시킬 뿐,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하는 능력이 아주 떨어진 인간이었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신. 구석기시대라면 이미 소멸되어야 했을, 지방축적 열성인자를 가진 덜떨어진 신인류였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득실댄다면 아마도 다이어트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모조리 쫄딱 망할 것이다.

1990년 초, 클리브랜드 어느 호텔 식당 서빙녀가 50인치를 거뜬히 상회하는 초드럼통 허리와 배를 내밀면서 다가왔을 때, 커다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런 비만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나는 각자 다른 별에 살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실제로 현실 생활에서의 비만 남녀의 고충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새치나 흰머리가 없기 때문에 이날까지 여태껏, 일부러 시간 들여 염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늘 만나던 친구가 바빠서 염색을 하지 못한 채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나는 심한 이질감을 느꼈었다.

매스컴에서 무슨 개멋이라고 백발을 하고 다니는 고위공직자며 유명인들을 보면, 메스꺼워 구역질이 나기 일쑤였다.

"자식들아 염색이나 하고 다녀라. 무슨 개멋이라고 추접스럽게 하고 다니냐" 나는 이렇게 그들을 비토하였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으레 병원에 갈 때마다 복용해야 할 약의 개수가 늘어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교통사고 나기 전까지는, 날마다 복용해야 할 약 자체가 일절 없었다.

비타민 등 영양제도 음식에서 구했고, 약을 복용하면 신체 장기가 게을러질까 봐 약 자체를 멀리하고 살았다.

아니 의식적으로 멀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생명을 유지시키고 연장시키는 중요한 약들이 내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렇다고 약이 없으면 절대 못 고치는 질병에 걸렸어도, 치료에 꼭 필요한 항생제 같은 그런 약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항공사를 그만둔 후 내 나이 30대, 열대 기후의 이국땅에서 풍토병인 말라리아, 장티푸스, 폐렴, 뎅기열 등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던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생존하였다.

그런 열대 풍토성 질병들은 그 병에 적합한 약이 제 때에 없으면 십중팔구 죽는다.

이러한 풍토병인 열대열 말라리아를 필리핀 타위타위의 외딴섬에서 걸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지금의 교통사고처럼, 응급환자가 되어 허름한 목조 병원에 도착하였다.

타위타위는 원주민 발음으로 따위따위 '머나먼 땅'이란 뜻이다. 그만큼 오지인 타위타위는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의 술루해에 있는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로, 행정적으로는 방사모로 자치구(BARMM)에 속해 있다.

이 지역은 에메랄드 빛의 갖가지 푸른 컬러의 바다, 하늘거리는 산호초, 그리고 바자후족 같은 독특한 원주민 문화로 유명하지만, 치안 문제로 인해 외교부에서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사람보다 총이 더 많은 지역, 총이 곧 법인 지역, 모로 무슬림들이 장악한 땅, 지금도 머리털이 쭈뼛거릴 정도로 무서운 땅이 바로 타위타위, 머나먼 땅이다. 현재 그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머나먼 땅 따위따위, 내가 갔던 방법은 2가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필리핀 마닐라 > 잠보앙가 > 타위타위 봉가오

마닐라에서 민다나오섬 잠보앙가까지 에어버스 320 비행기를 타면 두어 시간 걸린다. 잠보앙가는 총을 가진 무슬림들이 바글거려서 대단히 위험한 곳이다.

잠보앙가에서 사는 픽탈 마주딘이란 친구와 같이 바닷가 옆 판자로 만든 포장마차에서 머드크랩에 산미겔이란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탕! 탕!" 하는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토바이를 탄 사내가 건너편에서 멈추더니 두발의 총탄을 발사한 것이다

그 길거리 푸드점에서 도로 쪽을 보고 맥주를 들고 나팔 불던 사람이 머리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즉사하였다.

오토바이 남자는 살인을 한 후, "왱"하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잠보앙가 해안가는 이처럼 살벌하였다.

주민 다수가 이슬람을 믿는 서민다나오의 잠보앙가 외곽지역이나, 바실란 섬이나, 홀로 등 섬은 총기에 의한 살인이 비일비재하였고, 그런 외딴 지역이나 섬들에 비해서 잠보앙가 시내는 차라리 평화스러운 편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끼니때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잠보앙가에서는 파눌리루스 닭새우 랍스터와 코코넛 크랩 찜, 빨간 등딱지 가시게인 크라챠, 다금바리인 라푸라푸로 만든 스위트 앤 사워가 일품이었다.

나는 가든오키드라는 잠보앙가에서 제일 큰 호텔에서 묵었다. 제일 크다고는 하지만 모텔급보다 조금 나은 호텔이었다.

그래서 호텔 또한 무섭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침 질질 흘리고 현지 여자를 밝힌다거나 말쑥한 모습으로 폼 잡고 다니면 뒈질 수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잠보앙가에서 타위타위를 가려면 풀로드팩터- 최대탑승률 62인승, 포커피프티(Fokker50) 쌍발 터보프롭 엔진 프로펠러기로 두어 시간 타고 가면 타위타위 봉가오 공항에 도착하였다.

타위타위 봉가오 공항은 외딴곳에 있었다. 조그만 면적의 벌판에 공항 건물은 2층 가정집처럼 허름하였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시클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2. 잠보앙가> 바실란>홀로(술루해의 무슬림 주도)> 타위타위 봉가오>시탕카이

여객선을 타고 가면 여러 섬들에서 정박한다. 선내에서도 정말 위험하지만 바실란이나 술루해의 주도 홀로에 가서, 배에서 내려 싸다니면 절대로 안 된다. 나는 그들과 똑같은 낡은 옷을 입고, 쪼리를 신고 딸딸거리면서 시장을 구경하며 싸다녔었다. 그때는 무식해서 용감했었다.

여객선은 아교원료인 아갈아갈이라는 해초류도 싣고 다녔다. 아갈아갈은 식초에 쪽파, 양파, 얇은 생강편과 같이, 잠깐 절여 씹으면 "아갈아갈"하고 씹히는데 미역보다 더 맛있었다.

시탕카이는 가 봤자 별 볼일 없는 필리핀 최남단 항구이다. 사방이 바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로 아갈아갈 수출항이며, 1톤가량의 작은 조각배에서 나고 자라, 생리를 시작하면 다른 배로 옮겨 타는, 평생을 조각배에서 사는 바자후족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조각배끼리 만나서 부모가 돈 몇 푼 받고, 여자애가 배를 옮겨 타면 오리지널 바자후족 시집가기 끝이다.

그때부터 가엾은 바자후족의 어린 여자 아이는 임신과 출산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바자후족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국경 지역의 바다 위에서 사는 국가관 자체가 없는 무국적자들이었으나 섬에 정착해 사는 바자후도 늘었다.

나는 바자후족의 수상가옥에서도 며칠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바자후족의 사람들은 여권 없이도 삼 개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원래부터 그 지역의 열대 바다는 그들의 바다였다!


나는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타위타위 봉가오에 가서, 당시 통치자였던 게리 맛바를 만났다. 맛바 패밀리는 타위타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집안이었다.

대대로 거버너(Governor) 였던 집안이라 선거철에는 투표소마다 AK-47이며 M16이 배치되었다.

실제로 반대파와의 충돌로 40여 명이 투표소 안에서 살해된 적도 있었다. 오지의 섬에서 총은 곧 권력이었다.


내가 타위타위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느냐 하면, 코베 대지진 전, 도쿄 우에노역에서 신칸센 히카리를 타고 신코베역까지 슝!

타사키진주 코베 본사에 가서 타사키 회장을 만났다. 그때, 그로부터 남양진주의 한 종류인 마베진주에 대하여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반월진주인 마베진주는 적도의 바다 남양-일본에서 보면 남쪽의 바다- 에서 양식하는데 진주를 꺼내보면 볼품없다고, 이 볼품없는 진주를 어떻게 단백질을 빼고 가공해야 영롱한 진주가 되는지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길로 일본 나리타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 파크애비뉴 460번지였던가 한국무역협회(코트라) 담당자를 만났고, 그다음 날 도쿄 나리타행 비행기를 주워 타고 서울로 돌아온 적이 있다.

그 후 오랫동안 남양진주며 마베진주에 대한 내 호기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 나선 남양, 열대의 바다가 머나먼 땅! 타위타위였다.

둥그런 남양진주, 하프 펄인 반월진주(마베진주)를 생산하기 위하여 일본인들이 투자한 진주양식장이 바로 맛바 패밀리의 섬에 있었다.

게리맛바는 나에게 왕복 2 드럼의 휘발유와 M16 소총으로 무장한 사병 두 사람, 보트를 모는 선원과 스피드보트를 제공해 주었다.

그 섬에서 랍스터라고 하지만 실제는 기다란 뿔이 달린 닭새우인 파눌리루스 뱀부(bamboo), 타이거 가시랍스터를 잡아, 장작불에 버터를 발라 구워 먹었다.

일본인들이 환장하는 살이 두툼한 커다란 갑오징어나, 붉은 등딱지 가시게인 크라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외딴 타위타위의 군도에서 나는 학질모기가 옮기는 열대열 말라리아에 걸렸다. 이상하게도 아침에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 나를 습격하였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한이 찾아들었다가 오후가 되면 또다시 아침과 같은 고온에 시달렸다.

'이 병은 내 몸 스스로 자연 치유가 될 병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누구 혹시 말라리아 약 가진 거 있어요?" 물으니 다들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스피드보트에 얼음이란 얼음은 다 실고, 얼음 찜질하면서 오후 3시경 타위타위 봉가오에 닿았다.

군도의 다른 원주민의 꼬마아이도 말라리아에 걸려 나무로 지어진 조그만 1층, 단층짜리 목조 병원에 도착했지만 그 아이는 곧 죽고, 얼음찜질을 하며 제때에 도착한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약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약이라면 질색하면서도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하드웨어적 우성 유전자 덕분인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특별한 체향이 없기에 내가 체취며 체향이 없다는 것은 혼자만의 장점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성이 없다.

우리 한국인들은 마른 귀지에 냄새 또한 없다. 몸에서도 땀을 흘려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한국여자에게 샤넬 넘버 5, 이런 향수를 선물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

유흥업소 여자가 아니라면, 한국이나 일본 여자는 체취가 없어 그런 짙은 향수를 자주, 오랫동안 천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즉 한국이나 일본에서 향수 장사를 하다간 망한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짙은 체향이 풍기는 외국 사람하고 커플이 된다거나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상당수의 그들의 2세들도 비만 유전자와 함께 부모의 강한 체취를 물려받을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짙은 사향이나 동물성 합성 향수를 쓴다는 것은 페로몬을 발산하기는커녕 "나 암내 있어요"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남자들 중 하나가 한국, 일본 여자에게 합성 동물성 향수를 선물하는 부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과거의 나를 분석하고 계량해 보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자유롭게 젊은 날을 산 나는 행복하였는가 병상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최소한 백 년 이상은 산 것 같다. 따라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대 젊은 날, 행복하였는가! 행복하였다면, 그 행복의 총량은 얼마만큼이었던가!"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충분히 행복하였노라고.


"이야! 푸어박 최고다. 어떻게 홀로를 다 가고, 타위타위 군도의 섬들을 돌아다니다니"

"죽을 뻔 한적 많았겠구나 암튼 동지! 반가우이"

"자 이제부터 네 아내며 사랑얘기도 들어봤음 해"

유령들의 등쌀에 못 이겨, 나에게 있어 화월용태 부용꽃 같은 그리운 세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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