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2 매트릭스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
혹시 언젠가 진행했던 보고자료 내용 중 2x2 매트릭스 안의 각 사분면에 구성원들을 배치하고 그룹핑했던 적이 있는가?
조직에서는 종종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분류하고 정의하려는 시도를 한다. 성격 유형, 일하는 스타일, 세대 특성 등으로 구성원을 구분 지으면 뭔가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구분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틀’ 일뿐, 사람 자체를 온전히 설명해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틀에 너무 의존하면 구성원의 복잡한 맥락과 가능성을 가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임상심리학에서 초진단적 관점은 정신장애를 기존의 진단명 중심 범주에서 벗어나, 그 이면의 공통 요인과 연속적인 특성으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다. 물론 기존의 범주형 진단은 임상 장면에서 큰 효율성을 제공해 왔다. ‘이 사람은 우울장애가 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으면, 치료 방향이나 행정적 처리가 단순해지고, 연구자들끼리도 공통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진단이 함께 나타나는 공병 현상, 같은 진단명 안에서의 이질성, 평가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진단 신뢰도 등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초진단적 접근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람을 특정 이름표로 구분하기보다는, 그 이름표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구조와 맥락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분류 체계를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HR의 일은 결국 사람을 구분하기보다는 이해하는 일이다. 보다 이해하기 쉬운 보고를 위해 구성원을 2x2 매트릭스나 유형별 모델로 단순화하는 것은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개개인의 다름과 맥락이 지워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분류 바깥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두고, 범주보다는 방향성과 맥락을 중심에 두는 사고가 더 건강한 조직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장애(Mental Disorder)는 개인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이를 이해하고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신장애는 단순히 '비정상' 혹은 '일탈'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넘어, 특정 기준에 따라 정의되는 구체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장애란 무엇인가?
현대 정신병리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의 중 하나는 제롬 웨이크필드(Jerome C. Wakefield)가 제안한 '해로운 정신 기능 장애(Harmful Dysfunction)'라는 개념이다. 이 정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는 '정신 기능의 장애(Dysfunction)'로, 이는 본래 설계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생물학적 또는 심리적 메커니즘의 실패를 의미한다. 둘째는 '해로움(Harmful)'으로, 이 기능의 장애가 개인의 사회적, 학업적, 직업적 기능에 실질적인 손상을 초래해야 한다는 가치 판단적 요소이다. 즉, 특정 생각이나 행동이 단순히 통계적으로 드물거나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장애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개인의 안녕과 기능에 명백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비로소 정신장애로 정의된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두 가지 렌즈: 범주적 관점 vs. 차원적 관점
정신장애의 개념을 정의한 후에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가 남는다. 전통적으로 정신장애를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해 왔다.
첫째, 범주적 관점(Categorical Perspective)은 정신장애를 질적으로 구분되는 불연속적인 범주로 간주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개인은 특정 진단 기준을 충족하면 해당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충족하지 못하면 '가지지 않은 것'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마치 임신 여부처럼, 우울장애가 있거나 없는 상태로 나뉘는 것이다. 현재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과 같은 주류 진단체계는 이러한 범주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차원적 관점(Dimensional Perspective)은 정신장애를 정상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연속적인 차원(Dimension)으로 이해한다. 키나 혈압처럼, 우울 증상 역시 경미한 수준에서부터 극심한 수준까지 연속적인 스펙트럼 위에 분포한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장애가 있다/없다'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개인이 특정 차원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어려움을 경험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두 관점은 정신장애의 복잡한 실체를 이해하려는 상호보완적인 노력이지만, 각각 뚜렷한 장단점을 지닌다.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는 진단 분류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과 국제질병분류(ICD)는 기본적으로 정신장애를 질적으로 구분되는 독립된 범주로 보는 범주적 관점(Categorical Perspective)에 기초한다. 이 관점은 임상 현장과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동시에 명백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범주적 관점의 유용성: 공통의 언어와 효율성
범주적 분류체계가 주류로 자리 잡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임상가, 연구자, 환자 모두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우울장애'라는 진단명은 특정 증상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표준화된 약속으로서, 복잡한 개인의 고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돕는다. 이러한 표준화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유용성으로 이어진다.
임상적 효율성: 환자의 증상을 표준화된 진단 코드로 표현함으로써, 복잡한 임상 정보를 압축하여 전달하고 보험 처리와 같은 행정적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연구의 촉진: 명확한 진단 기준은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고, 연구 결과를 비교하며, 특정 장애에 대한 원인 규명 및 치료법 개발 연구를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된다.
의사결정의 용이성: 특정 진단은 해당 장애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며, 임상적 의사결정 과정을 용이하게 만든다.
범주적 관점의 명백한 한계
이러한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범주적 관점은 정신장애의 복잡한 실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임상 현장과 연구가 심화되면서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높은 공병(Comorbidity) 문제: 임상 현장에서 한 가지 진단 기준만 충족하는 환자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환자는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동시에 진단받는다. 예를 들어, 우울장애 환자가 불안장애를 함께 겪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이는 각 장애가 독립된 범주라는 범주적 관점의 기본 가정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다.
진단 내 이질성(Heterogeneity) 문제: 동일한 진단명을 받더라도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의 조합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가령, 우울장애 진단 기준 9개 중 5개만 충족하면 진단이 가능한데, 이로 인해 동일한 '우울장애'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겹치는 증상이 단 하나도 없을 수 있다. 이는 같은 질병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실제로는 매우 다른 문제를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단 신뢰도(Reliability) 문제: 진단 기준의 경계선에 있는 환자의 경우, 평가하는 임상가나 평가 시점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증상의 심각도가 조금만 변해도 한 장애에서 다른 장애로 진단이 바뀌거나, 장애가 '있음'에서 '없음'으로 바뀌는 등 진단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현행 범주적 분류체계는 임상적 편의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실제 임상 양상과는 괴리가 있는 인위적인 구분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신장애를 범주가 아닌 차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진단명을 초월하는 공통 요인을 탐색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범주적 분류체계가 지닌 명백한 한계, 특히 높은 공병률과 진단 내 이질성 문제는 정신장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서로 다른 장애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환자들이 여러 진단을 동시에 경험하며, 동일한 장애 내에서도 왜 이토록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가? 이러한 고민은 기존의 진단 경계를 넘어, 여러 장애에 공통적으로 관여하는 근원적인 기제를 탐색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 중심에 바로 초진단적 관점(Transdiagnostic Perspective)이 있다.
차원적 관점의 확장: 초진단적(Transdiagnostic) 관점의 정의
'초진단적'이라는 용어는 '진단을 초월한다(transcending diagnosis)'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정신장애를 정상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차원적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다. 단순히 증상의 심각도를 연속적인 차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진단명으로 불리는 장애들이 사실은 소수의 근본적인 병리적 과정을 공유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즉, 불안장애, 우울장애, 강박장애 등 각기 다른 이름표 뒤에 숨겨진 공통의 분모를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진단명을 초월하는 공통 요인에 대한 주목
초진단적 관점의 핵심은 개별 장애의 고유한 특징보다는, 여러 장애의 발생과 유지에 공통적으로 기여하는 심리적, 생물학적 기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측이나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범불안장애의 핵심 증상이지만, 사회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장애 환자에게서도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감정 조절의 어려움, 반복적인 반추 사고, 특정 인지적 편향 등은 특정 진단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내재화 장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공통 요인이다.
이러한 접근은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연구와 임상의 초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무엇이 우울장애를 유발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무엇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모두에 취약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개별 질병(감기, 독감)의 증상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면역 체계라는 공통의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와 같다. 이처럼 진단명을 가로지르는 공통 요인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예방 및 치료 전략 개발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초진단적 관점의 유용성은 다양한 정신장애 군에 적용될 수 있지만, 특히 그 개념적 힘이 강력하게 발휘되는 영역이 바로 내재화 장애(Internalizing Disorders)이다. 내재화 장애는 고통의 방향이 개인의 내면으로 향하는 장애들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우울, 불안, 걱정, 위축과 같은 내적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으로 우울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은 임상 현장에서 매우 높은 공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진단적 접근은 이들의 공통된 기저 구조를 밝히는 데 효과적인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내재화 장애의 개념과 특징
내재화 장애는 공격성이나 충동성처럼 외부로 표출되는 외현화 장애(Externalizing Disorders)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핵심적인 특징은 개인이 경험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스스로 감내하고 삭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는 표면적으로 다른 진단명을 갖지만, 실제로는 슬픔, 불안, 죄책감, 낮은 자기 존중감 등 많은 정서적, 인지적 특징을 공유한다. 초진단적 관점은 바로 이 '공유되는 특징'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며, 이를 대표하는 두 가지 주요 모델이 있다.
Clark & Watson의 삼원모델과 HiTOP 분류체계
초진단적 접근의 구체적인 예시로 클라크와 왓슨(Clark & Watson)의 삼원모델(Tripartite Model)을 들 수 있다. 이 모델은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의 관계를 세 가지 핵심 요소를 통해 설명한다.
부정 정서(Negative Affect): 우울과 불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특이적 요인이다. 슬픔, 분노, 죄책감, 걱정과 같이 광범위한 부정적 감정을 자주, 그리고 강하게 경험하는 일반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긍정 정서 결여(Lack of Positive Affect): 우울장애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즐거움, 흥미, 활력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무쾌감증, Anhedonia)를 말한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생리적 과각성(Physiological Hyperarousal): 불안장애의 고유한 특징으로, 심박수 증가, 호흡 곤란, 어지러움, 발한 등 신체적 긴장과 각성 상태를 의미한다.
삼원모델은 두 장애가 '부정 정서'라는 공통의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각각 '긍정 정서 결여'와 '생리적 과각성'이라는 고유한 특징을 통해 구분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초진단적 관점의 초기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신장애의 구조를 경험적으로 밝히려는 위계적 정신병리 분류체계(HiTOP, Hierarchical Taxonomy of Psychopathology)가 주목받고 있다. HiTOP은 증상들을 위계적으로 조직화하여, 가장 아래 단계의 구체적인 증상들이 모여 특정 증후군(예: 사회불안장애)을 이루고, 이러한 증후군들이 다시 모여 더 넓은 스펙트럼(예: 공포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최종적으로는 '내재화 스펙트럼'이라는 최상위 차원으로 수렴하는 구조를 제시한다. 이는 수많은 내재화 장애들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공통 요인, 즉 내재화 경향성이라는 뿌리에서 파생되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러한 모델들은 내재화 장애가 단순히 여러 질병의 집합이 아니라, 공통의 취약성을 기반으로 서로 겹치고 연결된 복잡한 네트워크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초진단적 관점의 실제적 유용성은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경험적 연구를 통해 그 타당성을 입증해가고 있다. 특히 정신장애의 가족력과 세대 간 전파(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기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초진단적 접근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 연구는 부모의 불안장애가 자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며, 무엇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연구 질문: 무엇이 다음 세대로 전파되는가? (장애 고유 속성 vs. 공통 취약성)
부모가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자녀 역시 불안장애를 경험할 위험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정확히 무엇이 전파되는가?'이다. 전통적인 범주적 관점에서는 부모의 특정 불안장애(예: 공황장애)가 자녀에게 동일한 형태의 장애(공황장애)로 이어지는 특이성 모델(Specificity Model)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공황장애 유전자'나 '공황장애 특유의 양육 방식'이 직접 전달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초진단적 관점은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부모에게서 자녀로 전파되는 것은 특정 장애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다양한 내재화 장애의 기저에 있는 공통의 취약성(General Vulnerability)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부모가 특정 종류의 알레르기를 가졌다고 해서 자녀가 반드시 동일한 알레르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알레르기 체질'을 물려받는 것과 유사하다. 이 연구는 바로 이 두 가설 중 어느 것이 실제 데이터에 의해 더 잘 지지되는지를 검증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분석 및 시사점
연구는 부모의 불안장애 관련 특성과 자녀의 불안장애 발병 위험 간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추적 분석했다. 분석 결과, 부모의 특정 불안장애 진단 여부보다는, 진단명을 초월하는 전반적인 불안 취약성(Anxiety Proneness)이 자녀의 불안장애 발병을 예측하는 더 강력한 요인임이 밝혀졌다. 즉, 세대 간에 전파되는 것은 '공황장애'나 '사회불안장애'와 같은 개별적인 병리가 아니라, 다양한 불안 증상을 아우르는 보다 근원적인 '불안정성에 대한 일반적인 취약성'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이러한 일반적 불안 취약성이 1 표준편차만큼 증가할 때마다, 자녀가 청소년기까지 불안장애를 진단받을 확률은 2.44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위험 증가이며, 공통 취약성의 세대 간 전파가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상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고위험군 선별의 새로운 기준: 자녀의 불안장애 발병 위험을 예측하고 선별할 때, 부모의 특정 진단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대신, 부모가 보이는 전반적인 내재화 장애 경향성이나 불안 취약성을 평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예방적 개입의 방향성 제시: 특정 장애의 증상을 타깃으로 하는 개입보다는, 여러 불안장애의 기저에 있는 공통 요인, 예를 들어 부정적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이나 걱정을 다루는 기술 등을 강화하는 예방적 개입이 더 광범위하고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불안장애의 가족력을 초진단적 렌즈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패러다임은 범주적 관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진단명을 초월하는 공통 기제를 탐색하는 초진단적 관점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학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임상 현장에서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실질적이고 깊은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다.
고위험군 선별 및 예방적 개입의 새로운 가능성
초진단적 관점의 가장 중요한 임상적 의의 중 하나는 예방적 개입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점이다. 세대 간 전파 연구에서 보았듯이, 특정 장애가 아닌 공통의 취약성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는 부모의 특정 진단명에 근거하기보다, 부모가 보이는 전반적인 내재화 경향성과 같은 초진단적 요인을 측정함으로써 자녀의 미래 정신장애 발병 위험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선별된 아동 및 청소년에게는 특정 장애의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여러 문제의 기저에 있는 감정 조절 능력, 스트레스 대처 기술 등 공통 요인을 강화하는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후 치료가 아닌, 문제의 뿌리에 미리 개입하여 발병 자체를 막는 근본적인 접근법으로, 정신 건강 증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향후 연구 방향과 발전 가능성
초진단적 관점은 정신장애 연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공통 요인의 구체화: 현재 내재화 경향성과 같은 상위 요인들이 확인되었지만, 이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하위 요인들이 무엇이며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욱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치료 프로토콜 개발: 초진단적 관점에 기반한 치료법(예: 통합 프로토콜)의 효과는 입증되고 있으나, 이를 다양한 환경과 환자군에 적용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맞춤형 프로토콜 개발이 필요하다.
분류체계의 개편: HiTOP과 같은 새로운 분류체계가 제안되고 있지만, 기존의 범주적 분류체계(DSM)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초진단적 접근은 정신장애의 복잡한 실체를 보다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진단과 치료, 나아가 예방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진단명을 넘어 고통의 근원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며, 이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