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거친 손 고운 실
테쉬폰의 둥근 천장 아래, 세상은 스무 개의 서툰 우주와 하나의 완벽한 질서로 나뉘어 있었다. 스무 개의 우주는 양순임을 포함한 스무 명의 소녀들이었고, 하나의 완벽한 질서는 기술자 이금희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神)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축음기에 바늘을 올리고 있을 터였다.
테쉬폰 안의 공기는 기름 냄새와 먼지, 그리고 소녀들의 마른 한숨으로 이루어진 합금(合金) 같았다. 덜컹거리는 소음은 음악이 되지 못하고 서로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는 소음에 불과했다. 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맥없이 끊어졌고, 북(shuttle)은 길 잃은 유성처럼 엉뚱한 곳에 날아가 박혔다. 실패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한 명의 베틀이 멈추면, 옆의 베틀도 따라 멈췄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도미노 현상이었다. 이곳은 공장이 아니라, 좌절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이 모든 혼돈의 중심에, 기술자 이금희는 섬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언어는 오직 손가락의 움직임과, 턱짓과, 미간을 찌푸리는 미세한 각도뿐이었다. 그녀는 격려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가와, 잘못 꿰어진 실을 순식간에 풀어내고, 다시 완벽하게 꿰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손안에서 베틀은 흉포한 짐승에서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그녀의 시범은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소녀들에게는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계의 언어였고, 그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선생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특히 양순임에게, 테쉬폰 안의 모든 것은 과거의 재현이었다. 눈을 감으면 부산의 방직 공장, 그 퀴퀴한 냄새와 비명 같은 기계 소음이 지옥의 이명(耳鳴)처럼 되살아났다. 실이 끊어질 때마다, 그녀의 신경도 함께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이금희의 침묵과 정확성은 자비 없는 감독관의 채찍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량품을 골라내는 기계를 보고 있었다.
사건은 어느 흐린 날 오후에 일어났다. 그날따라 유난히 실이 자주 끊어졌다. 양순임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고,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북이 베틀의 나무틀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또 실이 끊어졌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끊어진 실을 잡아챘다. 바로 그때, 이금희가 그림자처럼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이금희는 아무 말 없이 양순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리고는 굳어있는 그녀의 손을 가리켰다.
"힘."
그녀가 내뱉은 유일한 단어였다.
"힘이 너무 들어갔어."
그 순간, 양순임의 내면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것은 베틀의 실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마지막 끈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이금희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은 굶주린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힘? 힘을 빼라고? 당신들이 우리한테서 모든 걸 빼앗아갔잖아! 잠도, 밥도, 웃음도! 그렇게 다 빼앗아놓고 이제 와서 힘을 빼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테쉬폰의 둥근 천장을 때리고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모든 베틀이 일제히 멈췄다. 스무 개의 우주가, 양순임이라는 이름의 폭발하는 초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도 똑같아! 부산의 그 지옥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우리를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기계 부품으로만 보잖아! 실을 잣는 기계! 돈을 버는 기계!"
양순임은 손에 들고 있던 북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북은 마룻바닥을 구르다, 낡은 의자 다리에 부딪혀 멈췄다.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소녀들은 겁에 질려 숨을 죽였고, 몇몇은 양순임의 절규에 감정 이입되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고은영은 달랐다. 그녀는 양순임의 베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이 모든 광경을 미동도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동정이나 공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감정적 폭발로 인한 작업 중단 시간, 최소 15분. 전체 생산성 약 8% 저하. 양순임 개인의 생산성은 오늘 하루, 사실상 제로. 저 감정 소모가 다른 작업자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까지 계산하면, 손실은 예측 불가.’ 그녀의 눈에 양순임의 절규는 안타까운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는, 예측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인 변수, 즉 ‘오류 데이터’의 발생일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감정은 통제되어야 한다. 시스템은 감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규칙과 보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임피제 신부의 방식은, 처음부터 이런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금희는 양순임의 폭발에도, 고은영의 계산에도 아랑곳없이,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북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그 표면을, 마치 오래된 친구의 뺨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쓸었다.
"기계는 거짓말 안 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증류수 같은 목소리였다.
"네 손이 거짓말하는 거지. 네 마음이 거짓말하고, 네 기억이 거짓말하는 거야. 기계는 정직해. 힘을 주면 실은 끊어지고, 힘을 빼면 실은 이어져. 그게 전부야."
그녀는 북을 양순임의 발치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하기 싫으면, 가."
그것은 양순임에게 내린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 시각, 임피제 신부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테쉬폰에서 터져 나온 양순임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의 시스템은 지금, 가장 중요한 부품의 마찰로 인해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는 축음기에 워커 브라더스(The Walker Brothers)의 <The Sun Ain't Gonna Shine Anymore>를 올렸다. 외로움은 네가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라는, 지독한 비관주의로 가득 찬 노래가 방 안을 채웠다.
그는 위스키 잔을 들었다. '개입해야 하는가?' 그의 내면에서, 연민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패트릭, 저 가여운 아이들을 보게. 자네의 그놈의 시스템인지 뭔지가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어. 당장 가서 저 기술자라는 여자를 해고하고, 아이들을 다독여야 하네.'
하지만 임피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창업가였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않았다.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잘 설계된 시스템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진화할 힘을 가져야만 했다. 지금의 이 혼돈과 갈등은, 시스템이 겪는 성장통이자, 피할 수 없는 면역 반응이었다. 그는 이 위험한 도박의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소녀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금희를 믿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과정' 그 자체를 믿고 있었다. 거친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깎여나가며 마침내 둥근 조약돌이 되는, 그 비정하고 위대한 시간의 힘을.
멀리서, 고은영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테쉬폰 쪽을 잠시 흘깃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저 안에서 벌어지는 비효율적인 감정의 낭비와, 생산성의 저하를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그녀에게 저곳은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실패가 예정된 또 하나의 실험장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테쉬폰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소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이금희도 자신의 작은 숙소로 돌아갔다. 어둠과 침묵이, 낮 동안의 소음과 상처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양순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바닷가의 방파제에 앉아 한참 동안 검은 파도를 바라보다.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다시 테쉬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녀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희망이나 책임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기'였다. '하기 싫으면, 가.' 이금희의 그 한마디가, 그녀의 심장에 박힌 가시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도망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텅 빈 테쉬폰 안으로 들어섰다. 달빛이 둥근 천창을 통해,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낮 동안 흉포하게 울부짖던 스무 개의 베틀은, 거대한 짐승의 뼈처럼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베틀 앞에 섰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북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다시 베틀에 앉았다. 페달을 밟자, 텅 빈 공간 속에서 그 소리가 유난히 크고 공허하게 울렸다. 덜컹. 쿵. 그녀는 실을 꿰고, 북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기계는 거짓말 안 해. 네 손이 거짓말하는 거지.'
이금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은 누가 하고 있는데.' 그녀는 북을 던졌다. 실은 몇 번 오가지 못하고, 또다시 힘없이 끊어졌다. 그녀는 다시 실을 이었다. 그리고 또 던졌다. 또 끊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팔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저려왔다. 그녀는 포기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분노와 오기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내려놓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체념과도 비슷했지만, 단순한 체념은 아니었다. 모든 힘이 빠져나간 자리에, 텅 빈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북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북을 꽉 쥐지 않았다. 마치 날아갈 듯한 작은 새를 손에 쥐듯, 아주 부드럽게 감쌌다. 그녀는 북을 던진 것이 아니라, 살짝 '놓아주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북은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팽팽한 실 사이를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대편에 정확히 안착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다시 페달을 밟아 북을 반대편으로 보냈다. 팅! 또다시,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덜컹. 팅. 덜컹. 팅.
그것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리듬이었고, 노래였다. 그녀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자, 베틀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계를 이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기계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금희가 말한 '힘을 빼라'는 말의 의미를. 그것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기계의 리듬을, 실의 장력을,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자체를.
그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베틀을 짰다. 한 치, 두 치. 그녀의 거친 손끝에서, 세상에서가장 고운 실이 한올한올 엮여, 하나의 면(面)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옷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상처와, 분노와, 오기와,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작은 깨달음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엮인, 그녀 자신의 역사였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그녀는 베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앞에는, 비록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흠잡을 데 없이 고르고 팽팽한, 생애 첫 옷감이 걸려 있었다. 달빛 아래, 그 흰 옷감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성스럽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이금희는 평소처럼 가장 먼저 테쉬폰에 들어섰다. 그녀는 양순임의 베틀 앞에 걸린 작은 옷감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거친 손가락으로 그 표면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희미하게, 거의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옷감을 떼어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마치 밤 사이에 피어난 기적의 증거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소녀들이 하나둘씩 테쉬폰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양순임의 베틀에 걸린, 작지만 완벽한 흰 옷감을. 그 순간, 테쉬폰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신과 좌절의 공기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주 가느다란 빛이었다. 양순임의 홀로 선 밤이, 스무 개의 흔들리는 우주를 단단히 붙들어 줄, 새로운 중력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