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의 가을은, 마치 아주 길고 혼란스러운 연주가 끝난 뒤 악기들이 제멋대로 놓인 무대와 같았다. 태풍은 지나갔고, 구호물품으로 들어온 밀가루 포대는 비워졌으며, 이시돌의 푸른 목초지는 이제 더 이상 기적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른다섯 마리의 양 떼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서른다섯 개의 하얀 조약돌처럼, 그 초록의 바다 위를 평화롭게 떠다녔다.
테쉬폰의 둥근 지붕 아래, 시간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리듬으로 흐르고 있었다. ‘덜컹, 쿵’ 하고 울리던 베틀 소리의 리듬은 이전의 서툴고 망설이는 듯한 왈츠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잘 훈련된 군대의 행진처럼, 혹은 수도원의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절도 있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 소리는 이제 노동의 소음이 아니라, 창조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임피제 신부는 그 평화로운 행진곡의 저 깊은 곳에서,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 아주 작지만 차가운 불협화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그 모든 성공의 풍경을 한 걸음 뒤에서,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는 눈으로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창업가였다. 그리고 창업가에게 성공이란, 종종 실패보다 더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성공은 시스템을 경직시키고, 혁신을 멈추게 하며,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낡은 단파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의 바다 저편에서,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의 <Peace Piece>. 단 두 개의 코드가, 마치 명상처럼, 혹은 끝나지 않는 질문처럼, 집요하게 반복되는 곡. 그는 생각했다. 지금 이 섬의 모습이, 저 음악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고. 평화는 찾아왔지만, 그 평화는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 악장을 향한, 길고 고요한 서주(序奏)에 불과했다.
그의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닫힌 세계 안에서의 성공이었다. 돼지는 퇴비를 낳고, 퇴비는 풀을 키우고, 풀은 양과 소를 살찌웠다. 모든 것이 섬 안에서 시작되고, 섬 안에서 끝났다. 그것은 자립이었지만, 동시에 고립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온실의 문을, 이제 스스로의 손으로 열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세상의 비바람 속에서, 이 연약한 꽃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피아노의 두 코드가 만들어내는 끝없는 질문 속에서, 다음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무력한 독자와도 같았다.
이야기는 언제나,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하는 법이다. 한림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그것은 임피제가 보낸 편지나 보고서 같은, 명확한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공기 중에 떠다니는 꽃가루나, 바람에 실려온 이름 모를 새의 깃털 같은 것이었다.
이야기는 뭍으로 나가는 어부들의 그물에 섞여 부산항에 닿았다. 그곳에서 이야기는 비릿한 생선 냄새와 뒤섞여, 억척스러운 상인들의 입을 통해 각지의 장터로 퍼져나갔다. “제주라는 섬에 말이야, 코쟁이 신부 하나가 있는데, 그 양반이 글쎄, 겨울에도 풀이 자라는 마법을 부린다지 뭔가.”
이야기는 서울로 가는 여객선의 3등 선실, 멀미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나직한 속삭임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 섬 여자들은 말이야, 베틀로 옷을 짜는 게 아니라 기도를 짠다더군. 그 옷을 입으면, 어떤 풍랑을 만나도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는구먼.”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지고, 신화가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돼지와 퇴비의 순환 시스템 같은, 합리적인 핵심은 대부분 증발해 버렸다. 남은 것은 ‘푸른 눈의 성자’와 ‘한겨울의 푸른 초원’, 그리고 ‘기도를 짜는 처녀들’이라는, 비현실적이지만 매혹적인 몇 개의 이미지뿐이었다.
그리고 1968년의 늦은 봄, 그 신화의 조각들 중 몇 개가, 부산의 어느 오래된 수녀원, 높고 두꺼운 담장 안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수녀원의 원장, 마리아 수녀는 아일랜드 더리 출신의 노수녀였다. 그녀의 눈은 세월의 먼지가 쌓인 유리창처럼 희미하게 빛났지만, 그 너머에는 아직도 세상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지성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는 제주에서 온 젊은 신부가 보낸 편지를 통해, 한림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시장에서 장을 봐 온 자매 수녀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편지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원장 수녀님, 오늘 시장에서 아주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주 한림이라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싶어도 가라쳐 줄 사람이 없어,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자신들의 이름을 쓰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또, 그곳의 젊은이들이 돼지와 양으로 스스로 살림을 일구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마리아 수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창밖의, 잘 가꾸어진 장미 정원을 오랫동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시장의 상인들이 만들어낸 감상적인 신화와, 임피제 신부의 편지에 담긴 건조한 사실들이, 서로 부딪히고 뒤섞이며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기적이나 성자의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스템’을 보았다. 멈춰 있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버려졌던 것들이 가치를 찾고, 흩어져 있던 개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 그녀는 직감했다. 그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자선이나 구호가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실험이라고. 그리고 그 실험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그날 저녁, 그녀는 뜻이 맞는 두 명의 젊은 골롬반회 수녀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한 명은 간호사 교육을 받은 의무실 담당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사 출신이었다.
“자매님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껏,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요청에 응답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먼저, 세상이 아직 보내지 않은 요청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제주 한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도움을 주러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알아보고 오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자, 제안이었다. 두 젊은 수녀의 눈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다.
며칠 뒤, 한림항에는 낡은 여객선 한 척이, 마치 지친 새처럼 조용히 닻을 내렸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틈에, 세 명의 낯선 여인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임피제와 같은 푸른 눈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침묵과 고요함을 두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하얀 수녀복은, 잿빛 부둣가 풍경 속에서 비현실적일 정도로 선명했다.
그들은 마치 새하얀 바람처럼 섬에 발을 내디뎠다.
누군가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두리번거리거나 길을 묻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길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은 망설임 없이 마을 안쪽으로, 이시돌의 푸른 언덕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돈 가방이나 구호물품 상자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손에는 낡은 가죽 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의 손에는, 여러 권의 낡은 책과 석판, 그리고 하얀 분필 몇 개가 담긴 작은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돈이나 물자가 아니라, 책과 약품, 아이들을 위한 소박한 도구들이었다. 그것은 배고픔을 해결해 줄 양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줄, 보이지 않는 씨앗과도 같았다. 그들의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는, 아일랜드의 또 다른 섬, 아란(Aran)의 비밀을 품은 낡은 스웨터 한 벌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들의 등장은, 잔잔한 호수 위에 떨어진 세 개의 깃털처럼, 조용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멀찍이서 그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저들은 누구인가. 왜 여기에 온 것인가. 코쟁이 신부의 또 다른 손님들인가.
임피제 신부 역시, 자신의 사무실 창가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수녀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세 명의 수녀와 임피제는, 이시돌로 향하는 언덕길의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잠시 동안, 네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바람만이 그들의 옷깃을 스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일 뿐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수녀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부드럽지만, 그 어떤 것도 꿰뚫어 볼 듯한 지혜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누가… 제가 불렀다고 전해주던가요?” 임피제가 물었다.
“아닙니다.” 수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임피제의 어깨 너머, 푸른 초원과 테쉬폰의 둥근 지붕,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를 바라보며, 이 섬에 도착한 진짜 이유를 말했다.
“우리는 이 마을이 궁금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길을 만들어 가는지,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것은 도움을 주러 온 시혜자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우고, 이해하고, 동참하기 위해 찾아온 동등한 파트너의 언어였다. 그 순간, 임피제는 깨달았다. 자신이 닫혀 있다고 생각했던 온실의 문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열려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문으로, 세상이 스스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양 떼가 ‘자립의 상징’이었다면, 수녀들은 ‘외부 세계와의 자발적 연대의 상징’이었다. 마을은 더 이상 구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곳이 된 것이다. 이것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내자, 투자자와 협력자가 그 가능성을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상황과 정확히 같았다.
수녀들의 방식은 이금희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금희가 완벽한 기계를 만드는 엔지니어였다면, 수녀들은 버려진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와도 같았다. 그녀들은 소녀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들의 거친 손을 잡아주었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테쉬폰 안에는 처음으로, 베틀 소리가 아닌 다른 종류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로사리아 수녀가 낡은 나무 상자에서 스웨터 한 벌을 꺼내왔다. 그것은 그녀가 고향 아일랜드의 아란(Aran) 섬에서 가져온, 전통 스웨터였다. 그 스웨터에는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마치 고대의 암호처럼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뭔데요?” 양순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이것은 옷이 아니란다.” 로사리아 수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기도란다.”
수녀는 소녀들을 둘러앉히고, 그 무늬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 꽈배기 모양의 무늬는, 어부의 밧줄을 상징한단다. 바다로 나간 남편과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내와 어머니의 기도가 담겨 있지.” 그녀는 다른 무늬를 가리켰다. “이 다이아몬드 무늬는, 섬의 작은 밭들을 상징해. 풍요와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이지. 그리고 이 벌집 무늬는, 힘든 노동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단다.”
수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소녀들의 눈빛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특히 양순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스웨터의 무늬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무늬 너머,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또 다른 섬의 여인들의 삶과 기도를 보고 있었다. 바다와, 가난과, 그리고 기다림. 그것은 아일랜드와 제주, 두 섬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언어였다.
“우리도… 이걸 배울 수 있을까요?” 한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란다.” 로사리아 수녀가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는 옷을 짜는 것이 아니라, 너희 가족을 위한 기도를 짜게 될 거야.”
그날 이후, 테쉬폰 안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혁명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자 이금희에게, 수녀들이 벌이는 일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녀는 베틀이 멈추고 소녀들이 둘러앉아 뜨개질을 배우는 광경을, 마치 잘 돌아가던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춘 것처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아란 무늬는 비효율과 감상의 극치였고, 수녀들의 이야기는 노동의 신성함을 해치는 잡담에 불과했다.
그녀와 수녀들 사이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양순임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란 무늬를 익혔다. 그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 개의 세계 사이에 끼어 고통스러웠다. 자신에게 기술의 눈을 뜨게 해 준 스승 이금희의 냉담한 시선과, 마음으로 짜는 법을 알려준 수녀들의 따뜻한 격려 사이에서, 그녀는 길을 잃었다.
갈등은 어느 늦은 밤에 폭발했다. 양순임은 모두가 떠난 테쉬폰에 홀로 남아, 로사리아 수녀가 내준 과제인 복잡한 ‘생명의 나무’ 무늬와 씨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짜도, 무늬는 뒤틀리고 실은 엉켰다. 그녀의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좌절감에 빠져 뜨개바늘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이금희가 나타났다.
“그따위 계집애들 장난 같은 걸 붙들고 뭘 하는 게냐.” 이금희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그런다고 밥이 나와, 돈이 나와?”
“이건 그냥 장난이 아니에요!” 양순임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대들었다. “이건… 기도예요. 이야기라고요!”
“기도? 이야기?” 이금희는 코웃음을 쳤다. “배고픈 사람에겐 빵 한 조각이 백 마디 기도보다 나은 법이다. 네가 배운 건 고작 그런 거였나? 현실에서 도망치는 법?”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바로 그때, 이금희는 양순임이 엉망으로 짜놓은 실 뭉치 아래, 바닥에 펼쳐진 도안을 보았다. 그녀는 복잡한 무늬의 의미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안에 숨겨진 기하학적인 질서, 즉 ‘구조’를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뜨개질을 할 줄 몰랐지만, 실의 길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양순임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숯 조각을 주워, 시멘트 바닥에 도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명의 나무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나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 즉 씨실과 날실의 원리를, 베틀의 논리로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복잡한 이야기는 명쾌한 수학 공식처럼 변해갔다. 양순임은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깨달았다. 이금희는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잃은 자신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벽이,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금희가 그린 지도를 따라, 양순임은 다시 뜨개바늘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손끝에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나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피어났다.
이금희는 완성된 무늬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아주 나지막이 읊조렸다. “…질서는 있구나.” 그것은 그녀가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임피제는 그 모든 변화를,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축음기에 비틀즈(The Beatles)의 <Let It Be>를 올렸다. 지혜의 말이 찾아와, 있는 그대로 놓아두라고 속삭인다는 그 노래.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그저, 길 잃은 영혼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작은 무대를 마련해주었을 뿐이라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테쉬폰의 둥근 지붕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작은 섬의 이야기는, 곧 바다를 건너,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고. 한림수직의 제품은, 이제 단순한 스웨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개의 섬, 두 개의 다른 역사가 만나, 실과 바늘로 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망의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