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채 Oct 26. 2017

난 생각이 너무 많아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검정 가방을 멘 동급생들이 알 구슬 구르는 듯 깔깔거리며 스쳐 지나갑니다. 높푸른 하늘과 금빛 은행나무가 가을임을 열렬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새로 깐 아스팔트의 석유 냄새,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타이어 냄새, 그 둘 사이에 으깨진 은행 냄새가 한데 뒤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깁니다. 참으로 공감각적인 평일 오후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집과 학교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습니다. 좁은 4차선 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이었고 특히 하교시간이 되면 버스와 택시, 학원차량으로 뒤섞여 소화불량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듣기 싫었습니다. 좋아하는 밴드를 최고 볼륨으로 올려 귀에 꽂았습니다. 그 습관 때문인지 요즘도 조금만 큰 소리를 들으면 귀가 아픕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무언가를 아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즈음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 한 명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돌아갈 집에서 내가 편하게 쉴 수 있을지, 가족 중 어느 한 명 때문에 또 불편해지진 않을지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풀고 또 풀고 지워댔습니다.

 쓰레기통같이 엉망진창인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보석 같은 가을이 절정이었습니다. 잠깐 생각에 빠져있다 창 밖을 보니 벌써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습니다. 체감 시간은 십여분 남짓이었지만 실제로 내 몸은 한 시간 넘게 버스에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최초로 경험한 생각의 타임슬립이었습니다. 복잡한 마음속 실타래를 푸느라 시간이 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꽉 막힌 도로도, 버스 안에 가득 찬 동급생들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진공 속에 가만히 떠서 엉킨 실을 푸는 것처럼, 내 마음은 오로지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처음입니다. 생각하는 재능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만으로 죽을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나는 고민이 생기면 식욕을 잃었고 남들 다 살찐다는 고3에 혼자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습니다. 모든 자극이 독이 되어 나를 괴롭혔습니다. 지진 기록계처럼 바들거리는 날 선 바늘이 내 머릿속 백지에 날카로운 파동을 그렸습니다. 마음이 불편할수록 말라갔고 반대로 평온하면 살이 점점 쪘습니다. 나는 안색과 체지방으로 심정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스트레스에 민감했습니다.

 차라리 무생물이 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불행의 작은 징후만 보여도 산더미 같이 고민하는 내가 싫었습니다. 세상사를 달관한 듯한 사람, 모든 고민에서 한 발짝 물러나 더 넓은 시선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로움, 어떤 일이 닥쳐도 서두르지 않고 해결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디라도 되고 싶었던 걸까요.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부러워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왜 친구와 잘 지내지 못하는지, 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지, 왜 나는 늘 외로워하고 왜 항상 모든 것에 불만이 많은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내가 꾸역꾸역 삼키려고 애썼던 그 많은 고민들은 사실 아주 단순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불만과 문제입니다.


 불만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날씨, 가족, 타고난 체질, 뜻대로 안 되는 인간관계에 끝없는 불평의 폭격을 퍼붓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문제들에 불평하는 것은 핸들 없는 버스를 생각만으로 조종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불만이 지휘하는 불협화음에 발맞춰 비틀거렸고 내 엇박자에 부딪힌 주변 사람들은 불행이 전염되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불만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내 불평불만의 원인들은 나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애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날씨를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을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조차 내 뜻대로 안 되는데 친구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드는 것은 감정의 낭비일 뿐입니다.    


 하지만 불만은 나의 욕구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내 삶의 만족도를 깎아먹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원인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불만을 돋보기 삼아 나의 욕구를 들여다보았고 해결 가능한 것들을 추려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는 단호하게 잘라냈습니다.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모든 불만이 기적처럼 박멸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활용해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더 큰 문제도 내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문제는 불만과 달리 해결이 가능합니다. 알맞은 해결책을 찾아내 그대로 수행하면 그 고민은 이내 나를 떠났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반복적으로 학습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추려내 해결책을 강구하고 그것을 실행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속을 뒤집어 놓는 고민거리에 이름표를 붙이면 그것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됩니다. 고민해서 해결되면 고민하고, 고민해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흘려보내는 것이 나를 위하는 방법입니다.  


 생각의 파도에 나를 맡기고 이리저리 고민하며 떠 다니다 보면 차라리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사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거나 먹고, 별생각 없이 살고, 까다롭게 고르지 않으면 삶이 더 편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로지 나의 고민만이 대단한 것이며 나처럼 숙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마치 동물같이 단순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무례하게 정의 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나이테처럼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무늬를 품고 살아갑니다. 마음의 단면에 그려진 이 동심원은 각자의 고민과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고 그래서 모두 다 아름답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각의 더듬이가 하나 더 달려있습니다. 예민하고 유별난 나의 본성에게 어서 둔감해지라고 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본성을 타고났습니다. 사유하며 숙려 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며,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개성의 재료가 됩니다. 생각의 본성을 타고난 사람은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고민하는 것은 마치 밥처럼 나의 자존감을 살 찌우는 원료가 됩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온전히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글 그림

무채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이야기를 들어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