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람은 왜 희망에 중독되었나?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말도 안 되는 것'에 돈을 썼던 경험이 있을 거다. 로또 복권, 비트코인, 혹은 주식 시장의 작은 회사 주식 말이다. 이성으로 생각하면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 순간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왜일까? 그 답은 우리 뇌의 구조 자체에 숨어 있다.
인간의 뇌는 통계 계산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이를 학자들은 '내러티브 폴시(narrative fallacy)'라고 부른다. 우리 뇌는 끝없는 정보의 소음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변환한다. 불완전한 데이터로부터 우리는 빠르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일관성 있는 스토리는 사실보다 강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맞다'고 더 확신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뇌 과학을 들여다봐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로또 확률은 1,500만 분의 1이야"라고 말할 때, 당신의 뇌에서는 언어 처리 중추만 작동한다. 하지만 "저번주에 저희 동네 아저씨가 로또에 당첨돼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 교육에 투자했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뇌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어 그 장면을 시각화하고, 운동 피질이 그 아저씨의 기쁨을 시뮬레이션하며, 편도체가 감정을 기억으로 바꾼다. 그 결과 당신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경험'을 얻은 것처럼 느낀다.
실제로 뇌는 스토리를 통계보다 약 22배 더 효율적으로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경 동기화(neural coupling)라는 현상이다.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 청자의 뇌와 화자의 뇌가 실시간으로 같은 패턴으로 활성화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가 "같은 파장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의 신경학적 기반이다. 더 중요한 것은, 뇌는 실제로 경험한 일과 생생하게 들은 이야기를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심리학 이론이 개입한다. Kahneman과 Tversky의 '프로스펙트 이론'이다. 이들의 획기적 발견은 인간이 확률을 객관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우리는 극도로 낮은 확률을 과도하게 가중한다. 로또의 백만 분의 일 확률이 뇌에 의해 '희미하지만 의미 있는 확률'로 왜곡되는 거다. 우리의 뇌는 이렇게 작은 숫자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 자동으로 '작은 기회'로 단순화해버린다.
더 깊이 들어가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핵심이다. 이것은 보상을 예상할 때 분비되는데, 흥미롭게도 실제 보상을 받을 때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할 때 더 많이 분비된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말이 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불확실한 자원을 계속 추구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사냥감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계속 사냥을 나갔다. 파트너를 찾을 보장이 없었지만, 계속 찾았다. 그 본능이 현대에도 살아 있는 거다. 당신의 뇌는 아직도 '혹시 모를 기회'를 추구하는 생명체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편향들은 한 가지 더 작동한다.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라는 것인데, 우리는 어떤 것이 전형적이라고 여길수록 그것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으로 인해, 로또 당첨자의 생생한 이야기가 쉽게 떠오르므로 당첨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한다. 감정 휴리스틱(affect heuristic)은 우리의 현재 감정이 위험 평가를 왜곡한다. 로또의 희망적인 감정이 위험을 낮춰 보이게 하는 것이다.
Kahneman은 흥미로운 경험을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정보 기관 관리자들에게 "특정 시나리오의 확률이 10% 증가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이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록 극도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여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로들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을 때 사람들은 귀 기울였다. 그가 배운 교훈은 간단하지만 심오했다: "누구도 숫자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야기 때문에 결정을 내린다".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말도 안 되는 것"을 사는 이유는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매우 정교한 이야기 해석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 기계는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했고, 작은 부족 사회에서 생존하기에 완벽하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지 않는다. 우리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세계에 산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리 뇌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가를 깨달아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이 로또가 속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비극이자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합리적이기를 거부하는 생명체다. 왜냐하면 그 불합리성 속에는 희망, 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희망을 갈구하는 인간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스토리에 마음을 준다. 통계는 개인이지만, 이야기는 영혼이다. 당신이 "말도 안 되는 것"을 살 때, 단순히 낮은 확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어리석지만, 때로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자 이것이 바로 인간다운 것이 아닐까?
<이러니 사람이지> Being Human: The Things We Can’t 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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