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아서] 다들 처음을 어려워하고는 하죠

영화 덕후는 '새해 첫 영화' 정하기를 한다

by Cho


'새해의 첫 음악이 그 해를 정한다'는 말이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며 들은 음악 속 가사가 담은 메시지와 분위기가 그 해의 방향과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새해맞이 스몰 토크의 주제로 "새해 첫 음악으로 뭐 들으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고는 한다. '새해 첫 음악'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주로 긍정적이고 희망찬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찾아듣는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파워풀한 노래를,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랑 노래를 찾아 듣는다. 벌써 몇 년간 유행처럼 이어져 온 새해 첫 음악 듣기는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었더니 독립해서 집을 나갔다'라는 생각도 못한 귀여운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새해 첫 영화'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 영화가 한 해의 방향과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걱정으로 말이다.



지난해의 새해 첫 영화는 <노팅 힐>이었다. 12월 31일 밤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가 자정을 넘겨 새해의 영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매하게 중간에 걸친 이 영화를 새해 첫 영화로 보지 않는다면, 지난해의 첫 영화는 <러브레터>였다. 그렇다. 어떻게든 로맨스 영화로 시작한 한 해였다.


그렇다면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결론은 로맨스 영화로 시작된 한 해는 내내 로맨스 영화였다. 한 해 내내 80~90년대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부터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로맨스 영화까지, 로맨스 영화로 가득한 한 해를 보냈다. 현실에서의 로맨스는 어땠냐 묻는다면, 지난 한 해는 로맨스가 아니라 로맨스 코미디였다.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고, 중간중간 어이없는 일도 생기는 그런 영화 말이다. 혹은 <러브레터>와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새해 첫 영화'는 지난해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올해를 위한 영화를 고르려니, 특정한 영화 한 편을 고르기가 이리도 어려울 수가 없다. 무수히 많은 영화가 있는데 '온전히 그대로 살고픈 영화 하나'를 누가 고를 수 있을까. 지난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삶의 목표'란 혼란스러운 질문을 품고 있는 나를 위해 <소울>을 볼지, 강인한 여전사의 매력을 뿜는 <툼레이더>를 볼지, 극장을 찾아와 스크린을 빛내고 있는 영화들을 만나러 갈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1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 영화 한 편 보지 않았다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서라도 얼른 올 해의 첫 영화를 골라야만 할 것 같다.


" 우리는 처음을 어려워할까요? 인생의 하루하루가 다 처음인데."라는 <하나와 둘>의 대사처럼, 어쩌면 '새해 첫 영화 고르기'는 처음, 시작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해 동안 볼 수많은 영화 중 단 한 편에 불과할 영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떠맡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영화와는 별개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지만, 그 시작을 위한 마음가짐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선택을 스스로 하는 것이 무서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라도 정할 때가 왔나 보다. 지브리 덕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실사판 공연이 한국을 찾았다. 곧 보러 가는 이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지브리를 새해 첫 영화로 보는 시작도 꽤 괜찮은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영화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될 테니 말이다. 처음이라는 놈 참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고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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