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함부르크
베를린의 소박한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베를린 주민 동준이 마중을 나와주어서 낯선 곳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거나 하지 않고도 편하게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몇 가지 생필품들까지도 미리 챙겨주는 센스남 동준 씨, 고마워요.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초가을 공기 속에서 맞은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아침.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에서처럼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기대하며 독일 현지인의 집에 머물러보고자 에어비앤비에서 애써서 찾아 고민한 끝에 결정한 이 아파트는 도착해보니, 현지인의 집이 아닌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살짝 실망감이 들었지만, 최근 Airbnb의 대부분 숙소가 이렇듯 전문적인 숙박운영이 많다고 한다. 현지에 와보지 않는 한 사진 몇 장과 텍스트 몇 줄로 원하는 것을 얻기란 참 어려운 법이 아닌가. 그럼에도 독일의 오래된 집과 가구, 낡은 계단과 아늑한 동네 분위기만으로 충분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여행객의 필수품이 된 셀카봉과 설렘을 장착하고 낯설고 수수한 아파트를 나섰다. 숙소가 마침 샤를로텐부르크 성 가까이라서 간단한 브런치를 먹고 천천히 걸어서 성구경을 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관광지가 된 샤를로텐부르크 성 Schloss Charlottenburg Berlin. 포츠담의 상수시와 더불어 아름다운 궁전으로 알려진 바로 샬로텐부르크 성은 베를린의 랜드마크 들 중에 하나이자 베를린 사람들에게는 아끼는 문화유산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외관에 독특한 아치형 지붕과 조각상, 분수, 커다란 오렌지 온실과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을 갖추고 있다. 전성기 프리드리히 왕의 왕비 별궁답게 내부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폭넓게 수집해 놓은 ‘포르첼란카비네트’가 있으며 낭만주의 시대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갈레리 데르 로만티크’가 있다. 궁전의 내부는 로코코 장식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도 방의 벽 모두가 발트산 호박으로 만들어진 ‘호박의 방’이 유명한데, 나중에 이 방은 분해되어 러시아 표트르 대제에게 선물로 보내졌다고 한다.
동준의 말에 의하면 베를린은 곳곳에 숲가 호수가 많고 관리에 엄청난 정성을 들이고 있어서 도시지만 공기도 맑다고 쾌적하다고 한다. 이곳 정원도 도심의 하천과 공원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베를린에서 머무는 내내 아름다운 숲을 보고 거닐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시내버스를 타고 중심가인 쿠담으로 이동해 부서진 교회인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보는 것으로 여느 배낭여행객의 뻔한 코스지만 안전하게 여행의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부서진 채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썩은 이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육각형으로 된 새로운 교회를 지었는데, 내부는 푸른빛을 띠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어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베를린 최대의 번화가인 쿠담 Kurfürstendamm 에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 외에도 쇼핑의 거리답게 백화점, 호텔과 명품 상점과 멀티숍들이 들어서 있고 동물원도 가까이에 있다. 편집샵 중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비키니가 인상적이었다. 샵의 다양성이나 디스플레이부터 스트리트 의자, 천정, 계단까지도.
독일은 2차 대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고 지난날을 반성하는 모습과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낙서가 안된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뚫리고 보존되어 있는 테러 토포 그라피 Topographie des terror와 유대인 박물관이다. 테러 포토그라피는 예전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사령부가 있던 자리인데, 가해자로서의 역사도 베를린의 역사라고 해서 나치 당시의 잔혹한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과 설명을 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
베를린 장벽으로 베를린이 동서로 나눠져 있을 당시 동서로 서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로 검문소를 설치하고 각각 A(Alpaha), B(Bravo), C(Charlie), D(Delta)란 이름을 붙여졌다. 이후 1989년, 장벽이 무너지고 검문소는 사라졌지만, C만 남겨져 체크포인트 찰리 Checkpoint Charlie Berlin로 불리게 되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는 유명한 스팟 중 하나가 되었다. 베를린에는 이렇게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언제나 책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베를린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다만, 베를린 장벽을 넘어선 구동독 베를린에서는 시가지가 완전히 새로운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너무 높지도 않고 각각 개성이 드러나는 멋진 건물들은 독일 건축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왠지 모를 이상한 상실감 같은 감정이 드는, 내가 기대하던 베를린스러움(?)은 아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늦은 점심으로는 베를린의 흔한 길거리 간식이자 즐겨먹는, 베를린에 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커리 부어스트 Currywurst'. 부어스트는 돼지고기 간 것에 향신료를 섞어 만든 소시지다. 잘 굽고 튀긴 부어스트 위에 케첩과 커리 파우더, 칠리 파우더를 뿌려주는 음식으로 그 맛이 훌륭하다.
동준을 만나기 위해 독일문화원이 있는 포츠담으로 향했다. 포츠담 광장은 세계 최초로 교통 신호기 즉 신호등이 생긴 곳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혼잡한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큰 전쟁과 냉전을 겪은 뒤 방치가 되다가 재개발이 되어 높고 아름다운 건축물, 건물들로 유명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독일 철도회사 DB, 유명한 소니센터를 비롯하여 큰 쇼핑몰인 아카덴 등 유럽과 독일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많이 입주해 있고, 40여 개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는 큰 영화관과 영화 학교, 영화박물관이 있을뿐더러 베를린 국제영화제도 이곳 주변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베를린 영화계의 성지라고 볼 수 있다. 여름 같은 관광객들이 많은 시기에 이 곳 광장은 늘 사람들, 인파로 붐빈다. 게다가 이런 건물 숲 옆으로 넓은 광활한 잔디밭도 있어서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하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저녁에는 베를린 독거남 동준 덕분에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아 오래되어 보이지만 잘 관리된 독일 집의 방과 부엌을, 각자 준비해 온 음식으로 파티를 열고 같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낯선 독일어는 통하지 않지만, 어설픈 영어만으로도 그들이 즐기는 파티와 음악과 감정의 나눔은 공유되었다.
100년이 넘은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터키인이 하는 식당에서는 케밥을, 기가 막힌 소시지 요리까지.
20140830_도시 여행자의 가장 만만한 발 시티투어버스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한 베를린 시내 여행을 위해 시티투어버스를 타기로 결정. 마침 올해부터 한국어 서비스가 되는 투어버스를 찾기 위해 우왕좌왕... 어쩌면 시티투어 버스가 종류가 이리 많은지.. 어렵게 골 라탄 버스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로 쫓기는 투어는 제대로 본 것은 몇 개 없는 고생길이 돼버렸다. 그래도 여기저기 도보로 걷기 어려운 주요한 스팟을 보고 왔다는 위로로 대신한다.
베를린은 공원의 도시다. 베를린의 이름이 곰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공원 깊숙한 어딘가에는 작은 곰들이 살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도심의 숲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크기로 유명한 베를린 티어 가르텐 Berlin Tiergarten은 독 어명으로는 동물 정원이라고 불리는데 티어가르텐 안에 흐르는 수많은 물줄기 안에는 베를린 수중 생물의 절반 종류가 살고 있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생태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공기도 너무 깨끗하고 걷는 내내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주는 감동은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티어 가르텐 공원은 그로스 슈테른, 전승 기념탑이 있고 공원 외곽에는 국회의사당부터 시작하여 브란덴부르크 문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원을 한 참 걸어서 나오니 전승기념탑이 보였다. 전승기념탑 Siegessaule은 1873년 프러시안 제국이 덴마크, 오스트라-헝가리 그리고 프랑스 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으로 ‘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해 유명해진 황금천사상, 즉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꼭대기에 있는 탑이다. 탑 안에 오르면 티어가르텐과 브란덴부르크문, 운터 덴 린덴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기념탑을 지나, 길게 뻗은 길 끝에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이 보인다.
베를린 중심부인 파리저 플라츠(Berlin Pariser Platz, 'Platz'라는 독일어는 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인데, 그중 하나가 우리말로 광장. 스퀘어를 의미한다) 앞에 운터덴린덴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독일어로는 '브란덴부어거 토어'라고 한다. 베를린 장벽은 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두고 동과 서를 나눠져 버렸고, 이곳이 동서 분단의 경계이자 분단 시절 유일한 통로였으며 1989년 11월 독일 통일과 함께 독일과 베를린의 상징이 됐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랑스 개선문 같은 화려함이나 이탈리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처럼 오래된 역사의 흔적은 없지만, 독일과 역사적인 시간을 함께 한 증인과 동시에 상징이 되었다.
이 문을 만든 건축가는 랑간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정문인 프로필라에를 본떠 설계했다. 문 위에는 샤토가 제작한 '승리의 콰드리가 전차 조각상'이 올려져 있는데, 네 마리의 말이 승리의 여신이 탄 마차를 끄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승리의 여신상은 나폴레옹에게 전리품으로 빼앗겼던 것으로 후에 되찾은 것으로 현재 독일에서 만드는 50센트 유로화에 새겨져 있다. 문이 제작된 이후 나폴레옹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이 문을 통과했으며 독일군들이 이 개선문 아래로 개선행진을 했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군사들이 출병식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12월 31일 이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을 할 뿐만 아니라, 주요 축구경기가 있을 땐 방영을 해주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티어가르텐으로 쭉 뻗은 큰 도로를 건널 때 자세히 보면 길 중간에 벽돌 모양으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흔적이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를 가리킨다.
브란데부르크 문을 지나오면 멀리 보이는 TV타워까지 뻗은 대로가 보이는데, 운터덴린덴 Unter den Linden이다. 보리수나무 아래란 뜻으로 베를린의 샹젤리제라고 불리며, 서베를린의 쿠담 거리와 비교되는 동베를린 지역의 번화가로,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젠다르멘 광장 Gendarmenmarkt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거리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쿠담보다 좋았다. 훔볼트가 세우고 마르크스와 엥겔이 공부했던 베를린 최초의 대학 훔볼트 대학과 노이에 바헤, 국립 오페라 극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독일의 실러 동상이 중앙에 서 있는 젠다르멘 광장에는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용 극장인 샤우슈필 하우스가 있는데, 샤우슈필 하우스의 양쪽으로 오른쪽은 프랑스 대성당, 왼쪽은 독일 대성당이다.
걷다 보니 잔디정원인 루스트 가르텐 Lust Garten이 보이고 그 앞으로 아주 아름다운 성당, 베를린 돔 Berliner Dom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에 하나로 1747년 시작되어 1905년까지 오랜 시간에 거쳐 지어진 건축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고 재건이 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외관보다 거대한 천정 돔이 매우 인상적인데, 내부에 있는 7,269개의 관으로 이루어진 독일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은 베를린 돔의 상징 중 하나다. 계단을 통해 옥상에 오르면 베를린 시내를 더 넓게 구경할 수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여서 옥상은 오르지 못했지만, 해가 질 때쯤 보는 베를린 돔과 슈프레 강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돔 뒤로 흐르는 슈프레 강에는 유람선이 다니고 주변에는 알테 뮤지움, 노이 뮤지움 등 박물관이 정말 많이 있는데다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따라 걸으면 참 좋다.
저녁으로 독일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슈바인 학센을 맛보러 갔다.
학세는 돼지를 말하는 독어 '슈바인'에 동물 발목 위 관절을 나타내는 '학세'의 합성어로 독일 남부에서 즐겨먹는 음식으로, 발목 윗부분인 정강이를 삶은 다음에 다시 한번 굽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안은 굉장히 부드러운 독일 전통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하다. 사이드로 으깬 감자와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최고라는 독일의 맥주가 종류별로 세트로 나온다. 호박색 맥주로 고소한 향이 매력적인 마이셀 바이스 오리지널, 풍부한 거품과 청량한 맛이 풍미를 더하는 에버, 어두운 갈색에 탄산이 적당히 섞인 흑맥주 슈바르츠 비어, 쌉싸름한 향과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라데베르거, 특유의 향에 시큼한 맛이 인상적인 벡스, 내가 제일 좋아하게 된 헤페바이젠까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내게도 독일 맥주는 진심으로 다 맛있다.
2일째 베를린은 이제 어느덧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스쳐간다. 늦은 밤까지의 도보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는 유난히 아쉬움의 쓸쓸함을 덕지덕지 붙이고 간다.
20140831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이면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탄생지이자 독일 최대의 무역항인 함부르크를 갈 수 있다. 비넨 알스터와 아우센 알스터 호수 사이로 롬바르트 다리와 케네디 다리가 있고, 수로를 따라 줄지어진 수많은 요트들이 바다와 두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물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었다. 옛시청사의 신 르네상스식의 사암 벽돌로 만든 우아한 모습과 정교한 시계탑과 조각들에 반한다. 수로 사이로 항구 창고로 사용되던 지역으로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스파이케슈타트를 비롯해서 오래된 옛날 건물과 신식 건물들의 조화가 어쩌면 그리 훌륭한지 독일 건축을 높이 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아름다움에 탄식을 낼뿐이다.
중간 변덕스러운 비가 오긴 했지만, 오래된 함부르크의 거리는 아름다웠고 고즈넉했으며 여행이 도보로 해야 제맛임을 만끽한 날이었다. 원래는 브레멘까지 가는 계획이었지만, 무리한 일정이라는 조언에 포기했었는데.. 무리하게라도 갈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예상했지만 디자이너들과의 여행은 쉽지 않았고 더불어 감정싸움에까지 번졌다. 그냥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여행이 주는 호기로운 감정에 빠진 어리석음은 어둡고 검은 구름을 몰고 와서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또한 낯선 곳으로의 배낭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함에도 일정을 초보 여행자인 디자이너들에게 맡겨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여행도 노하우와 정보의 싸움이라는 것, 무작정 여행이 아니라면 정말 꼼꼼하게 준비해야 함을 배웠으리라. 여행은 사람들을 들뜨게도 하지만 지극히 사소한 감정선의 추악한 모습까지 드러내버리기도 하며, 좋은 친구를 또는 최악의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여행에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전쟁을 치르고 우리 여행은 다시 계속되었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베를린 버디베어와 암펠만
베를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버디베어와 암펠만이다. 암펠만은 동독 경찰이 그려진 신호등으로 독일이 통일된 후 사라지게 되었는데, 서독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크 헥하우젠이 쓰레기통에서 발견해서 여러 가지 제품으로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초록색 캐릭터 게어 Geher는 걸어가는 사람, 빨간색 캐릭터 슈테어 Steher는 서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지금은 독일을 추억하는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중앙역을 비롯하여 도시 어디를 가든, 버스 외벽에도, 베를린 지역 맥주의 로고에도 그려져 있는 두 팔을 들고 있는 곰의 조형물을 볼 수 있는데, '버디 베어 Buddy Bear'라는 이름을 가진 마스코트다. 몸통에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은 채 복제되어 도시 곳곳에 세워졌고, 전 세계 40여 개 국가 작가들이 참여한 국제적인 공동 예술작품으로 지금까지 4개 대륙에서 각기 다른 12개의 전시가 개최되어, 무려 1600만 명이 관람하였으며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더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신뢰하며 더 화목하게 살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세계 전시가 진행 중이며 베를린은 2011년에 전시를 했었다. 작은 버디 베어는 하나에 15유로, 큰 놈은 60유로나 한다. 엄청 비싸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기 전 기념품샵에서 버디베어를 몸통이 베를린 상징으로 뒤덮인 큰 놈으로 사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놈은 싸들고 올 수밖에 없을 만큼 베를린은 내게 손가락으로 꼽는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