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신의 존재를 믿는가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by 일상채색가 다림

나는 크리스천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천이었던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얼마 못가 ‘교회에 가면 공부할 시간을 뺏겨서 안된다’는 아빠에(나의 친가는 아빠를 포함, 모두 기독교를 믿지 않고 매우 싫어한다) 의해 중학교 입학 즈음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안못다녔다’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한번 다니지 않기 시작하니 늘어지게 잠만 자고 싶은 일요일 아침에 교회를 가는 것만큼 귀찮은 것이 없었다. 엄마는 수시로 나를 데리고 예배를 드리러 가고 싶어 했지만, 타의로 교회 금지령이 내려진 후 난 더 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모와의 대립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0대 후반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후 시작된 외국 생활에서도 나는 교회와 더욱 견고한 담을 쌓게 된다. 우연히 만나게 된 한인 교회 커뮤니티는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들었다. 당연히 모든 커뮤니티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뾰족함의 정점에 있던 20대 초반의 나는 예수 믿는 것들만큼 더러운 인간들이 없다는 자세로 크리스천은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 유학생활이 마무리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난 지인들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신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갔다.


신앙 없이 살던 내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20대 중반 현재 속해 있는 교회 청년부를 다니면서 시작되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청년의 때’에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선 교회에서 신앙의 선배들과 동역자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교회를 통해 간 선교지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시골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분과를 나눠 사역 활동을 펼쳤는데 나는 아동 사역 담당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몇몇 있었고 겨우 나흘 정도 머무르다 나는 떠나지만 내가 준비한 것은 모두 해내 보이고 말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떠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나를 포함한 아동 사역팀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나에게 깨달음이 온 것은 사역 마지막 날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려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져가서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고, 우리 팀원들도 기념으로 가지자며 몇 장 더 찍은 사진이었다. 찍을 당시 준비해 간 활동들을 제대로 다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해 굉장히 쩔은 상태였는데 사진 속의 나는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얼굴 어디에도 세파에 시달린 흔적은 없었다.


이게 바로 그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이 사진을 본 순간 나의 귓가에 불현듯 음성이 들렸다.


보아라, 내가 너희와 언제나 함께 함이라


아.. 그렇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그분께서 하심이었구나. 내가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신께서 나에게 이 아이들을 보내신 거구나. 한때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욕했던 당신의 딸을 보듬으시기 위해. 그렇게 아이를 싫어하고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던 내가 스스로 믿기지 않을 만큼 스스럼없이 아이들을 보듬고 깔깔대며 즐겁게 놀아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대단해서 아니라 그분의 임재하심이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모든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모두가 함께 작은 시골 교회의 예배당에 모여 드리던 예배를 잊지 못한다. 예배 시작 전 사모께서 부르는 찬양을 들으며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들도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으리라. 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2018년 여름. 완공된 성당을 아이와 가볼 날이 어서 오기를.


몇 해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목도한 순간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20대 초반 유럽에 살며, 여행하며 수많은 성당과 교회 건축물을 보았지만 가우디라는 한 사람의 개인사와 오버랩되서인지 ‘이것은 확실히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직후 블로그에 썼던 글에도 그 감동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것,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지독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낸 성당. 소름이 돋을 만큼 천재였고, 자연과 신을 사랑한 건축가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최후의 작품. 매 순간 냉혹한 현실 앞에서 수도 없이 무너지고 연약해지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과연 나라면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신만 바라보며, 노년의 인생을 무식하리만큼 치열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절대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간사하며 내 몸이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묘한 특이점이 오는 경우가 있다.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며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고 싶지만, 설명이 도무지 되지 않는 순간이다.


그러한 경험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신의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내 인생에 있어 그분의 존재가 깊이 박혀 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궁극적으로 내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과 목적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나를 어딘가로 이끌고 계심을 믿는다. 내가 정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왔지만, 지금껏 선택해온 모든 과정 속에 나의 결정에 앞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이 아닌 듯한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영역을 하나님의 세계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사야 41장 10절



모든 사진 by 딩크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