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사형 판결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거대한 지진처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이성으로 해명 불가능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단호한 결정은 대중을 여러 극단적인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언론은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는 뜨거운 논쟁으로 들끓었다.
"뇌사자에 대한 사형 판결은 인권 유린이자 비과학적 결정"이라는 동정론자들의 비판은 거세게 타올랐고, 반면 "잔혹한 살인 행위는 용납될 수 없으며, 사형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는 원칙주의자들은 눈앞의 명백한 증거만을 믿으며 단호함을 유지했다.
일부는 "뇌사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은 분명 악령에 빙의된 것"이라며 미신론에 휩싸였고, 또 다른 이들은 "정치에 집중된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류현수 소장을 희생양 삼아 여론을 조작한 음모"라는 식의 음모론을 제기하며 사건을 예측 불가능한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진실의 형체는 점점 더 흐릿해지는 듯했다.
법정 방청석에서 이안의 사형 판결을 직접 본 류세린은 내심 복수심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분노는 해소되기는커녕,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과 불쾌감으로 변해 그녀의 내면에 가득 고였다. 마치 뜨겁게 끓어오르던 용암이 차가운 늪으로 변해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특히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통해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간신히 호흡을 이어가는 이안의 창백한 모습을 본 후, 그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의 죽은 듯한 얼굴 어디에도 악의 그림자나 잔혹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생명력이 소진된 자의 깊고 공허한 상실감만이 가득했다.
뇌사 상태의 이안이 항소를 할 리 만무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사형 집행일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사형제도 폐지국이었던 한국에서, 뇌사자에게 내려진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살인자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생명유지장치를 달아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여론을 의식한 법원의 결정이었고, 그 집행은 2035년 4월 20일 일요일 정오로 정해졌다.
류세린은 당연히 사형 집행 현장에서 그의 생명유지장치가 제거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의 미약한 호흡이 완전히 멈추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의 께름칙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뇌사 판정을 받은 자가 갑자기 깨어나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은 뇌과학적으로 불가능했다. 설령 기적처럼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해도, 생면부지의 그가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않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토록 잔인하고 숙련된 방식으로 살해할 만한 이유를 류세린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성은 불가능을 외치는데, 증거는 너무나 명확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부조화가 류세린의 지성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녀의 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미궁 같았다. 그녀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완벽하게 정돈된 논리적 사고체계가 이 거대한 균열 앞에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사형 집행 하루 전날 밤. 류세린은 한동안 폐쇄되어 있던 아버지의 연구실을 찾았다. 시냅스 코어 본관의 최상층에 위치한 그곳은 외부와의 접촉이 최소화된 성역이었다. 보안 카드를 인식시키자, 강화 유리로 된 자동문이 '쉬익' 하는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옆으로 미끄러져 열렸다. 보안을 뚫고 들어선 연구실 안은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살해 현장은 이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혈흔은 사라지고 부서진 집기들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류현수 소장의 손때 묻은 안경, 메모가 가득한 태블릿, 그리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가 아끼던 오래된 LP 앨범 진열장만이 이곳이 류현수 소장의 영혼이 깃든 연구실이었음을 소리 없이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의 미묘한 냄새가 공중에 감돌았다.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한숨 같았다.
류세린은 한동안 멍하니 연구실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희미하게 남은 아버지의 잔향. 그것이 그녀를 잠식했다. 심연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슬픔이 다시 울컥 치솟았지만, 그녀는 이내 냉정하게 감정을 억눌렀다. 단호하게 결심이라도 한 듯, 그녀는 그동안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개인 단말기를 꺼냈다. 그리고 보안팀으로부터 전송받은, 사건 당일 CCTV 영상 파일의 재생 버튼을 떨리는 손으로 눌렀다. 어두운 연구실, 유일한 광원은 단말기의 푸른빛과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비추는 영상뿐이었다.
영상 속, 연구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이안이 등장했다. 그의 눈은 감정 없이 차가웠고, 발걸음은 숙련된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빨랐다. 그는 류현수 소장이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등 뒤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섰다. 류현수 소장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알지 못한 채, 몰입해 있었다. 이안의 거친 손이 주머니에서 번뜩이는 메스를 꺼내 들었다. 은빛 칼날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리고는 마치 미리 학습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정확하고 숙련된 동작으로, 류현수 소장의 무방비한 목을 예리하게 그었다. 쉬익— 퍽. 끔찍한 비명과 함께 류현수 소장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부림은 단 몇 초 만에 멈췄다. 류세린은 단말기를 움켜쥐고 그 끔찍한 장면을 꾹 참고 지켜보았다.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전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였다.
이안은 쓰러져 경련하는 류현수 박사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화면 속 CCTV를 향했다. 류세린은 숨을 허버 들이켰다. 분명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텅 비어 있는 동공. 얼굴만 카메라를 향하고 있을 뿐, 그 시선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텅 비어 있었다. 류세린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는 손끝을 빠르게 움직여 이안이 CCTV를 바라보는 장면을 몇 번이고 되감아 다시 재생했다.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그리고 그 이후 쓰러지는 류현수 소장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멍하니 CCTV를 응시하는 모습. 그녀의 뇌는 알 수 없는 부조리함으로 가득 찼다.
"뭐가 잘못된 거지?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단 말인가?"
그녀의 뇌는 통증을 느낄 정도로 격렬하게 회전했지만,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성은 뇌사 상태의 이안이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고 강력히 외쳤지만, 단말기 속 영상은 그를 명백한 살인자로 지목했다. 이 거대한 모순은 그녀의 모든 논리적 사고를 뿌리부터 뒤흔들었고,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했다. 익숙한 논리적 추론 방식이 모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깨달았을 때, 류세린의 머릿속은 마치 회색 안개에 갇힌 듯 흐려지는 감각에 휩싸였다. 걷잡을 수 없는 답답함에 그녀는 분주히 연구실 안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좁은 공간은 더 이상 진실의 요람이 아니라, 그녀를 옥죄는 거대한 미궁 같았다. 반쯤 포기한 듯, 그녀는 축 늘어진 어깨로 연구실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류세린의 뇌리에는 아버지가 연구의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보였던 익숙한 습관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버지는 항상 고뇌에 찬 표정으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앨범을 들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계시곤 했다. 그녀의 기억 속 킹 크림슨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혼돈 속에서 질서의 실마리를 찾는, 아버지만의 독특한 사고 전환 방식이자 지적 여정의 동반자였다. 류세린은 마치 자신의 의지가 아닌 무언가에 이끌리듯,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앨범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수천 장의 LP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낡은 케이스에서 오래된 비닐 냄새와 묵직한 종이의 향이 배어 나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진열장 위를 부드럽게 훑었다. 본능적으로 아버지가 가장 자주 듣던 앨범을 찾았다. 바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이었다. 익숙한 붉은색 표지.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손때 묻은 앨범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묵직한 LP 앨범을 꺼내 들었다. 그 앨범의 무게감은 단순한 플라스틱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바로 그때였다.
앨범을 품에 안는 순간, 묵직한 무언가가 안쪽에서 '툭' 하고 그녀의 발치로 떨어졌다.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대신, 류세린의 민첩한 발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그것을 받아냈다. 그것은 LP판이 아니었다. 검은색 케이스에 먼지가 희미하게 앉아 있는, 류현수 소장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손바닥 크기의 작은 태블릿이었다. 기계적인 완벽함으로 앨범의 겉장과 속장 사이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다. 태블릿의 액정은 꺼져 있었지만,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차갑게,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것이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녀의 고뇌를 해결해 줄 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