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에 기대어 쓴 기록

프롤로그

공방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치는 것은 익숙한 가죽의 향기다. 7년 전,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이 묵직하고 정직한 냄새는 나를 고요하게 만든다. 작업대 위에는 오늘도 주인을 닮은 성경 한 권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왜 하필 성경이냐고. 나에게 성경 리폼은 단순히 낡은 표지를 새 가죽으로 교체하는 기술적인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때 묻은 세월을 만지는 일이고, 해진 종이 사이사이에 스며든 눈물과 기도의 흔적을 정돈하는 "기억의 예식"에 가깝다.


낱장마다 빼곡한 손글씨, 갈라진 책등을 버티고 있는 투박한 테이프, 오래전 말려둔 꽃잎 하나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이 누군가의 삶에서 얼마나 치열하고 따뜻한 버팀목이었는지를. 나는 거창한 복원가는 아니다. 완벽하게 처음의 상태로 되돌리는 마법을 부릴 줄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강하는 사람'이다.


나의 일은 과거를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들이 미래의 시간 속에서도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단단한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 글들은 그동안 나의 작업대를 거쳐 간 수많은 사연에 대한 기록이자, 가죽을 만지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들에 대한 답이다. 해진 책등에 기대어 누군가의 삶을 수선하던 그 고요한 새벽의 단상들이, 당신에게도 나지막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왕십리 실내 데이트 추천 찐 데이트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