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4No4mLqC_8&t=20s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오은영 박사는 두 말할 것 없이 대단한 사람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이 정도로 대중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녀를 활용하는 제작진의 감각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최근 MBN에서 제작한 '오은영 스테이'의 사례는 선을 넘은 것 같다. 최근 방송에서는 EXID의 하니가 출연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양재웅 원장은 지난해 5월 자신의 병원에서 30대 여성 입원 환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하니와 양재웅도 결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해당 방송에서 하니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삶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처음 운을 뗄 때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데,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제작진은 관련 유튜브 클립에 '"눈치 그만 보고 싶어요" 양재웅과 결혼 연기 후 오은영 앞에서 울컥한 하니'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니의 발언은 '30대 여성의 사망 사건'만을 겨냥한 게 아닐 것이다. 자신의 현재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려는 취지일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은 맥락과 이미지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 마련이다. 이 영상의 제목, 하니의 출연, "눈치 보고 싶지 않다"거나 "내 뜻대로 안 된다"는 멘트는 서로 어우러져 오해를 살 만한 뉘앙스를 전달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아직 수사 중이며,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결혼을 발표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방송에 출연하여 힘든 심경을 토로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안타까워하는 패널의 얼굴을 보여주는 방송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과 그곳에서 자기 입장을 얘기하는 것은 여전히 특권이다. 아직 종결되지 않은 사망 사건 가해자의 최측근을 불러 '연예인의 심경 토로'라는 미명 아래 한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엄연한 폭력이다.
게다가 이웃이 안 좋은 일을 당해도 조용히 있는 것이 미덕인데,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의 연장선에서 '눈치가 보인다'는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적정한가? 과연 제작진은 이 방송의 여파를 예상 못하고 저런 제목을 달았을까? 그런 차원에서 나는 이 방송이 하니의 편도 아니며, 오로지 볼거리만을 전시하고 있다고 본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오은영 박사도 이제부터는 슬슬 본인을 위해 방송의 방향성을 고심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상담 방송의 본질은 '상담' 보다는 '방송'에 가깝다. 그것은 전문의의 자격으로 동행한다 하더라도, 방송의 결과로부터 완전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문가+방송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넘지 않는 감각이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