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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이글 타는 고현정의 눈…기대 적중한 '사마귀'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에서 고현정 배우는 다시 한 번 작두를 타는데요, 그 연기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2화와 4화를 추천합니다. 2화의 마지막 쯤에 나오는 '감옥 줄다리기', 4화에 나오는 '사과 먹방'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특히 예고에도 등장했던 사과 먹방에서 고현정은 제목 그대로 사마귀처럼, 먹이를 먹어치우는 곤충처럼 아드득 아드득 사과를 물어뜯습니다. 너무도 훌륭한 연기. 고현정은 다시 한 번 자신의 필모를 갱신합니다.

한편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약간 무거운 감은 있어요. 조금만 더 경쾌한 리듬을 부여하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아요. 드라마의 매력에 대해 SBS의 '스브스 프리미엄'에 기고했습니다.


ㅅㅁㄱ2.png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 예고편 캡처.


2025년은 시리즈의 해인가? 올봄 <폭싹 속았수다>가 전국을 강타했고, 여름에는 <오징어 게임> 마지막 시리즈가 우릴 찾아왔다. 그런 와중에 <귀궁>, <미지의 서울>처럼 분명한 색깔로 알뜰하게 사랑받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행복한 한 해였을 것이다. 이런 행렬을 잇는 하반기의 기대작이 또 하나 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이하 <사마귀>)이다.


이 작품은 일찍이 변영주 감독과 고현정 배우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다. 변영주는 최근 각종 예능에서 뛰어난 입담을 선보이고 있지만 실은 <낮은 목소리> 1, 2, 3편과 <화차>로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특히 이선균, 김민희 배우 주연의 <화차>는 여성의 서사와 스릴러 장르를 촘촘하게 엮은 수작이다. 그리고 고현정.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그녀는 미실, 아니 <선덕여왕>과 <여왕의 교실>, <마스크걸> 등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주인공이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에서 다채롭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만 일러두자.


두 장인의 만남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말도 안 되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되게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변영주와 고현정은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이들은 깔아준 판 위에서 신나게 노니는 중이다. <사마귀>에 선명하게 찍힌 이들의 인장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아래부터 <사마귀>와 <화차>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ㅅㅁㄱ.png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 예고편 캡처.


비록 변영주가 각본을 쓰진 않았으나 <사마귀>는 <화차>와 닮은 구석이 많다. 어쩌면 그 점이 변영주와 이 작품을 서로 만나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사마귀>와 <화차>는 여성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피를 보더라도 취할 정도로 탐욕적이다. 또한 이들은 집요하다. 그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부르든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간다. 그래서 정이신(고현정)은 <화차> 속 살인자보다 더 독하고 거친 언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두 작품이 집중하는 정서다. <화차>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알 수 없는 사건을 바라보는 이의 두려움과 연민이 묻어있다. <사마귀>도 정이신이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주는 두려움을 담는다. 그러나 <사마귀>는 살인자를 바라보는 아들 차수열(장동윤)의 시선에 자주 동조된다. 그래서 그녀를 마주하는 아들의 혼란, 그녀의 피를 받은 자신에 대한 공포가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두 작품의 소재는 비슷하지만, 집중하는 감정은 상당히 다르다.


변영주는 <사마귀>만의 정서를 절묘하게 쌓아 올린다. 이것은 주로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된다. "피 냄새가 좋냐"는 수열의 물음에 이신은 "네가 태어날 때 나던 냄새잖니"라고 응수한다. 이 말은 정확히 수열의 공포를 정조준한다. 너는 나의 피를 받고 태어났어. 이건 경찰을 향한 도발일까, 아들을 향한 사랑의 언어일까. 여러 감정이 충돌하는 이 장면에서 고현정은 장동윤을 향해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돌진하며, 장동윤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쏘는 에너지를 피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다. 이토록 밀도 높은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각본과 연출의 덕이며, 변영주가 강렬한 서사와 감정을 다루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현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마귀>에서 고현정은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를 처음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연기하는 이신은 품위 있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본능적이고, 직선적인 한편 미스터리하다. 이를 위해 고현정은 퀭한 얼굴과 활활 타오르는 눈, 주술을 뱉어내듯 또렷하고 악랄한 말투를 장착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떨리는 손, 눈의 깜빡거림, 목소리 톤 등을 활용해서 불안하면서도 즐겁고 흥분되는 이신의 내면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사마귀>에서 고현정은 처음으로 속이 텅 빈 사람 같다. 그녀는 마치 이신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하여 자기 내면을 모조리 불사른 사람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가 연기하는 이신은 아무런 방해 없이 고현정 위로 투명하게 포개어지며 모든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 낸다. 이 작품에서 고현정은 너무나 '정이신'이라 좀 무서울 정도다.


이야기의 뼈대 위로 차근차근 정서를 쌓는 변영주. 그 푹신한 토대 위에서 작두 타는 고현정. 둘의 만남만으로 첫 스파크는 튀었다. 이 불이 마지막까지 유지될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꽤 멋진 작업이라는 점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따라간다고 하던가. <사마귀>는 시청자를 짜릿하게 무는 데 성공했다.



원문 https://premium.sbs.co.kr/article/WasbOr4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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