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12. 2017

영화 <토니 에드만>에 대한 자세한 해설

Part 1. 영화 안의 갈등 관계

※ 스포 너무 많아요 ※





※ 일전에 글을 한 번 올렸으나 몇 번의 재관람 후 다시 정리한 것을 올립니다.

※ 리뷰나 비평은 아니고 해설 정도로. 사실 뭐라 부르든 상관없음.

※ 정성일 평론가의 GV 내용에서 생각을 뻗어나간 부분들이 있습니다.




<토니 에드만>은 기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영화입니다.

관계의 대립이 등장하고, 그 관계의 우열도 매우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아버지와 딸이 서로 자신의 무기를 앞세워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영화죠.

이 평온하고 유머 넘치는 영화에 치열한 싸움이 어디 있는지 의아하실 겁니다.

지금부터 <토니 에드만>에 대한 개인적인 해설, 혹은 설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전에 미리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토니 에드만'의 등장 전후로 구분됩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단순히 토니의 등장뿐 아니라, 영화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죠.

<토니 에드만의 탄생 배경 - 토니 에드만의 등장 - 토니 에드만과 딸의 싸움, 그리고 결과>

이런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글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배경과 토니 에드만의 탄생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고, 이어서 후반부의 치열한 싸움에 대하여 장면 별로 분석하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영화에 등장하는 관계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토니 에드만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관계가, 매우 다양한 층위로 등장합니다.


1. 부모와 자식

가장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서는 아버지(빈프리트)가 딸(이네스)보다 우위에 있죠. 그는 자주 '가정의 질서'를 강조합니다. 가족, 인생, 행복에 관한 언급들은 대화라기보다 설교처럼 느껴집니다. 가정의 어른으로서 지혜를 전할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내세우는 것이죠.


재밌는 것은 빈프리트가 이네스에게는 아버지의 지위를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어머니의 그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안락사시키지 않을게요.", "양로원 노인들을 죽여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같은 끔찍한 농담을 던지는데, 어머니인 당신의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뜬금없이 냉동 타르트를 건네죠. 이런 걸 먹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타르트는 엄마의 음식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인데요, 냉동 타르트를 먹는다는 건 이제 당신은 내게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그 타르트를 거부합니다.


반면 이네스 앞에서 빈프리트는 아버지의 지위를 손에 쥐고도 자주 열세를 보입니다.

그는 연회 전, 그리고 쇼핑몰에서 일방적으로 딸을 기다리는 처지고, 딸은 회사에서 아버지를 마주치고도 무시합니다. 니가 사람이냐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고서도 먼저 사과하는 것은 아버지죠.

이러한 열세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일단 딸은 ①자본주의적 우위에 있고(생일선물로 돈을 주자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함. 그 외 다른 장면들 후설), ②막 해고당한 아버지(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다는 아이)와 달리 해고를 담당하는 일을 하며 ③언어적 우위를 차지하고(아버지의 독일어를 영어로 통역해 줌)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죠.  


영화는 지위의 우열을 보여주는 데 있어 자주 '언어'를 이용하는데요.

아버지는 영어를 몰라 딸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자신의 업무가 어떻냐는 안카의 질문에 이네스는 독일어를 좀 더 사용하라는 말을 합니다.

열세를 띈 쪽은 상대의 언어를 몰라 전전긍긍하죠.

여기서 나라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감독의 시선을 대강 알아챌 수 있습니다.



2. 독일과 루마니아 

영화에서 루마니아인들은 주로 독일인에 비하여 열세에 있습니다. 마사지샵, 열쇠공 등 주로 서비스 직으로 표현되고, 고위직으로는 등장하지 않죠. 일리에스쿠에게서 단칼에 해고당하는 루마니아 시추공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네스가 회의 후에 건물의 창문을 통해 루마니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인데요.

물론 이 마을이 빈촌이라는 것에서도 경제적 열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만 더 결정적으로는, 이 장면이 앞서 아버지 빈프리트가 이네스로부터 쫓겨나서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과 같은 구도로 찍혔기 때문입니다. 이때 빈프리트는 이네스를 깨우지 않아 미움을 받고 쫓겨나다시피 집에서 나가죠. 가정 내로 이네스를 끌어오려던 아버지의 시도가 실패하는 순간입니다. 이때 아버지가 택시를 타는 장면이 건물 사이 좁은 틈을 통하여 보입니다. 그리고 루마니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당 역시 양 쪽의 구조물 사이에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죠. 이 모습을 본 이네스는 아버지를 연상했는지,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습니다.  

수세에 몰린 듯 좁은 공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그리고 전화.

이 두 장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지금 루마니아 빈촌의 사람들이 내몰린 상황이, 딸의 업무에(돈을 버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해 쫓겨나는 아버지의 상황과 같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의 후반에 현대화되는 장소에서 곧 쫓겨나야 되는 촌부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더 등장하죠.


그 외에 이네스의 루마니아 연인인 '보그만'과 비서 '안카'는, 루마니아 인으로서 이네스와 같은 직장에 일하면서도 늘 상대적 열세에 시달립니다.

이 역시 나중에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3. 남자와 여자

영화를 살펴보면 이 관계에서는 항상 남성이 우위를 차지합니다.

이네스가 헨레베르크의 눈에 들기 위하여 그에게 대화를 시도하자, 헨레베르크는 잠시 받아주는 듯하다가 그의 아내를 소개하죠. 이네스는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의 아내와 쇼핑 얘기나 하게 됩니다. 대화를 거부당한 이네스를 대신하여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버지 빈프리트입니다.

또한 헨레베르크가 한 잔 하러 가자고 제의하는 것도 아버지 빈프리트이며, 따라가고자 하는 이네스에게는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하지 않냐는 말을 합니다. 이네스는 그와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그의 아내를 경유하게 되는 반면, 빈프리트는 그와 비슷한 나이의 남성인 까닭에 그와 쉽게 대화를 나눕니다.


또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면 이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네스의 말로도 여성으로서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비서 안카는 같은 여성임에도 직위가 낮아서 더욱 노골적으로 자주 위기를 맞는데, 이 부분은 생일파티와 관련한 장면 분석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네스와 보그만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지만 서로 여성, 루마니아 인이라는 열위를 하나씩 갖고 있죠.

그 말은 반대로 각각 독일인 혹은 회사에서의 높은 지위(이네스), 그리고 남성(보그만)이라는 무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이좋은 연인처럼 보이나, 끊임없이 자신의 무기로 상대를 찌르며 우위를 차지하려는 싸움을 벌입니다.


그 예로 <커피머신 앞에서의 대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그전에 '차에서 이네스와 게랄트가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보그만은 계속해서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만 이네스로부터 저지당합니다. 그 후 이네스는 회의에서 발표를 하고서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보그만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죠. 그리고 커피머신 앞에서의 대화가 바로 이어집니다.

(통화하고 있는 보그만) 팀 회의가 있어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 이 장면은 앞서 이네스가 집에서 어른들을 피하기 위하여 통화하는 척하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통화를 하는 것은 주로 ①그 자리를 회피하거나(게랄트를 먼저 보내고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의 이네스) ②상대에게 허세를 부려 무언가 어필하고 싶을 때입니다.

이 경우엔 후자입니다.

보그만이 저 통화를 이네스 앞에서 하는 것은, 나도 회의가 있는 사람이고, 업무적으로 너와 동등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됐어?(보그만) 잘 됐어(이네스) → 역시나 회의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 거기 없던 게 다행이야. (이네스) → 과연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요? 더구나 이네스는 그가 늘 회사에서의 인정 욕구에 목말라한다는 걸 알고 잘 있습니다(차에서의 대화 시도). 이 말은 회사에서 나의 지위가 너보다 높음을 뻐기고 싶어하는 이네스의 심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분 안 상했어 → 보그만의 쿨한 척

게랄트는 나와 계산이 달라 → 보그만은 영화에서 시종 이런 태도를 취하는데요. 회사에서 겉도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자신은 포지션이 다를 뿐이라고 합리화하죠.

이네스가 저녁에 스테프와 타티아나를 만난다는 말을 하자 보그만은 바로

여자들 모임이군. 이라고 반응합니다. 그들 모두 직장 동료임에도 유독 여자들 임을 꼬집으며 반격하는 것이죠.

대화 주제가 무엇이냐는 말에 이네스는 성별 할당제,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대답하고  → 공적이고 업무적인 대화를 나눌 것이라는 얘기.

보그만은 바로 미팅용 손톱 정리 같은? 이라고 받아칩니다.  그래봤자 여자들 간의 사소한 대화 아니냐는 이야기.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물어뜯는 이들의 대화는 나중에 정사 장면에서 더욱 첨예하게 진행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은 뒤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4. 자본주의적 우열관계

이 부분은 영화의 전반에 걸쳐서 드러납니다.

사실 독일인에 대한 루마니아 인의 열세도 자본주의적 성격이 짙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제스처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팔을 치는 행위입니다.

영화를 살펴보면 이 행위는 주로 자본주의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열위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연회장에서 헨레베르크가 빈프리트의 팔을 툭 치고,

파티장에서 보그만이 토니 에드만(빈프리트)의 팔 치는데, 이때 토니도 보그만의 팔을 치려고 손을 뻗지만 닿지 않습니다. 파티장에서 토니는 자신의 카드로 술을 사며, 그들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하죠.

빈프리트가 유일하게 팔을 치는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루마니아 시골의 촌부입니다.

이때 빈프리트는 화장실을 쓴 대가로 촌부의 아들에게 용돈을 주는 등 경제적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딸 이네스 역시 줄곧 아버지에 대하여 경제적 우위를 보이죠.

이제 이 부녀는 서로 가정에서의 우위(빈프리트)와 자본주의적 우위(이네스)를 내세우며 한 달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상 <토니 에드만> 속 관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Part 2. 에서는 토니 에드만의 성격과 등장 배경을, Part 3. 에서는 중요한 장면을 위주로 한 장면 분석이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랜드 오브 마인> 비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