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메시지를 담은 인디 게임들
우리나라 대부분의 모바일 RPG 게임에는 '영웅'들이 가득합니다. 그 영웅들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칼을 휘두르며, 여캐(여자 캐릭)들은 말도 안 되는 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싸웁니다.
그들은 겁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광고에서 보여주듯이, 항상 단체로 빌딩만 한 큰 괴물에게 달려들죠. 그 괴물은 보통 드래곤인 경우가 대다수이기도 합니다.
모바일 RPG 장르에는 꼭 이런 멋지고 반짝이는 영웅들만 나와야 하는 것일까요?
"어차피 가볍게 소비되고 말 콘텐츠인데 무슨 상관이냐?"
"이왕이면 멋지고 예쁜 게 보기 좋지 않냐?"
"이렇게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이런 반론들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조금은 처절한(?) 외국의 인디 게임들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은 영웅들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긴 전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캐릭터가 진짜 죽습니다. 리스폰이라는 게 없는 거죠. 모든 진행사항은 실시간으로 저장되기에, 플레이어가 선택한 행동은 절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게임, 어떨 것 같나요?
대놓고 "Go to Hell." 이라고 적어놓는 이 게임. 작년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디 게임입니다. 얼리 액세스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상반기 가장 핫한 인디 게임으로 평가받았고. 16년 1월 스팀에서 정식 발매했습니다.
저도 실제로 이 게임을 플레이해봤는데요, 정말 충격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이 게임은 '용병'들을 고용해서 악당, 괴물들이 있는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임인데요.
보통 RPG의 캐릭터는 '체력(HP)' 또는 있어봤자 '마나'정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 다키스트 던전에는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요소가 있었습니다.
용병들은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주위가 어두워지면(횃불 시스템이 있어서 빛이 조금씩 사그라듭니다.) 용병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적에게 너무 강하게 맞아도 스트레스를 받고, 같이 던전에 들어간 동료 용병이 다쳐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냥 움직이기만 해도 받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일정 수치가 넘어가면 용병들이 정신이상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욕을 내뱉고 아군의 힐을 거부하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명령도 잘 안 듣습니다. 던전에 들어갔을 때, 한 명만 정신이상에 걸려도 전투를 포기하고 던전에서 철수해야 할 정도가 되죠.
세이브 기능도 없습니다. 즉, 용병들이 전투 중에 죽으면, 다시는 그 용병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이 계속 저장됩니다. 그래서 위에 짤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설명 : 용병들이 모두 죽기 직전이고 적 보스는 한 대가 남은 상황. 이때 보스가 크리를 터트리며 아군 용병을 몰살시키는 장면입니다..
"플레이어는 강하고 용기 있고 결국엔 승리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셔버리는 게임이죠.
이런 의문이 드시는 분들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할 필요 있냐는 것이죠. 저도 인정합니다. 저도 이 게임 몇 번은 접었거든요..
근데 신기한 게, 분명히 안 하겠다고 접었는데, 자꾸 생각이 납니다. 게임이 어려운 만큼, 던전에서 승리해서 나올 때의 성취감. 내 용병을 죽이지 않고 강하게 성장시키는 재미가 배가되는 겁니다.
다키스트 던전은 던전 탐색 중 터질 수 있는 대부분의 돌발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어졌습니다. 퀘스트는 실패할 것이고, 영웅들은 죽어나갈 것입니다. 한 번 결정한 행동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은 당신에게 많은 결정을 요구합니다. - <다키스트 던전> 인트로 중에서
다키스트 던전의 이런 비가역성, 캐릭터들의 나약함, 심리적인 괴로움을 보여주는 게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디스워오브마인>은 '전쟁 게임' 입니다. 하지만 전쟁 게임하면 떠오르는, <타이탄 폴>이나 <배틀필드>처럼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그런 게임이 아닙니다. <오버워치>처럼 아케이드성 짙은 FPS도 아니죠.
<디스워오브마인>은 전쟁 상황 속의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 초점을 맞춘 게임입니다. 전쟁을 미화시키거나 폭력성의 해소를 통해 쾌감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전쟁의 진짜 모습, 전쟁의 어두운 면을 보여줍니다.
게임이라는 매체 안에 메시지를 담은 것이죠. 아, 이것도 인디 게임입니다.
전쟁터의 모든 사람이 군인인 것은 아니다.
<디스워오브마인>의 본질은 생존 전략 게임입니다. 가장 큰 목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죠. 플레이어는 여러 명의 민간인을 조종해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캐릭터들은 모두 '민간인'을 컨셉으로 만들어졌기에, 전투에 뛰어나지도,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요리를 조금 하거나, 달리기가 빠르거나 하는 둥 개성만 가지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들이 굶지 않게 밥도 먹여야 하고, 병에 걸리지 않게 건강도 챙겨주면서 버텨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물자'가 필요하겠죠. 물자를 얻기 위해서 은신처('본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물을 말합니다.)를 벗어나 수색에 나서야 하는데요.
낮에는 저격수들과 강도들이 돌아다니기에, 민간인들은 나가면 매우매우 위험합니다. 정말 실제 전쟁터의 상황을 묘사해놓은 것이죠. 고로, 민간인들은 밤에 은밀히 이동해야 합니다. 다른 건물을 수색하다 보면, '적'을 만나기도 합니다. 식량을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적'들도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기에, 캐릭터들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괴로워합니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이브 기능은 없습니다.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죠. 캐릭터가 죽으면 못 살립니다. 앞에서 얘기한 <다키스트 던전>하고 비슷하죠?)
물론 우리가 공격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밤에 강도들이 들이닥쳐 식량을 빼앗아가기도, 여자를 납치해가기도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불침번'을 세우고 침략에 대비도 해야 합니다. ..정말 피 말리는 게임이네요.
<디스 워 오브 마인>은 기존의 게임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의 공포를 보여준다.
- Anne Wernicke
전쟁의 참화 속에서 민간인은 '철저한 약자'라는 심오한 메시지를 품은 <디스워오브마인>. 철학을 담았고 결국에는 가장 성공한 인디 게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TIME지가 선정한 2014년 베스트 게임에도 올랐습니다.
제가 <다키스트 던전>과 <디스 워 오브 마인>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입니다. 다음 세대의 종합 예술인 '게임'의 발전을 위해서, 인디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똑같은 게임만 만들어 낼 건지. 언제까지 영웅들은 칼과 마법과 화살만 쏴댈 것인지. '자동사냥'이니 '업그레이드 팩'이니 이런 허접한 요소들 말고, 진정한 '메시지'를 담은 게임을 원합니다. 다양성 가득한 게임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게임은 우리나라가 해외로 수출하는 문화 콘텐츠 규모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는 게임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 게임 페스티벌은 구글이 주최하고 있습니다만,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메이저 기업들이 나서서 더욱 인디 개발자들을 응원해주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디 게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함, 창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