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May 10. 2020

헤어짐, 헤어지다

짙은 - Moon

짙은 - Moon


 어렸을 적 언젠가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한 적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숟가락에 밥이 동글동글 올라와져 있을 때 고기반찬이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두부조림이며 차례로 올려놓으시곤 했다. 아버지는 주름진 눈을 크게 뜨고는 하나씩 달라고 농담처럼 말하셨고 어머니는 웃으며 다른 반찬을 또 재빨리 얹고는 빨리 먹기나 하라며 젓가락으로 숟가락 위의 밥을 툭툭 건드리셨다. 친구들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될 때마다 고기반찬은 죄다 친구들 차지가 되던데 어머니는 내가 아닌 아버지에게만 친구 어머니가 친구에게 하던 것처럼 밥 위에 올려주셨고, 나도 달라고 투정을 부리면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그 반찬들을 내 밥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것들을 밥과 함께 넘길 때면 아버지 대신 먹는다는 죄책감에 목이 까슬까슬해져 와 넘길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느낌은, 울컥하며 목이 메어왔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왜 밥 먹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냐 물었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 후부턴 누군가 내 밥 위에 반찬을 집어 올려줄 때면 난 항상 그것들을 내려놓고 내가 직접 가져와 먹곤 했다. 사람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고, 그래. 나는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밥 위에 정갈한 반찬들을 올려놓는 행동들이 그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대하던 어머니처럼 정성스럽게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 행동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남편 얘기 묻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그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다시 묻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시선에 내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온 몸이 열기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앞에 놓인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신경 쓰지 말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수저를 놓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다 먹은 거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절반도 채 비우지 못한 내 밥그릇에 반찬들을 집어 올려주었다. "잘 챙겨 먹어요.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야윈 것 같아요." 반찬을 입 안에 집어넣으면서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질문에 답하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왜 그런 질문들을 하는 건지 얘기한다면 그녀는 절대 나를 만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까. 그녀는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다. 그래서 난 충동처럼 일어나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느라 숨을 고르게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만해야 할 때를 알아야 되지 않겠냐고.


 "행복해지고 싶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녀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인지 나에게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지를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복하고 싶다고요? 아니면 행복해지고 싶냐고요?"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당신이? 내가?"

"당신이."

"행복해져야 하나요?"

"상관없어요."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날개들이 소리 없이 상승했다.
최초의 유혹은,
이미 상쾌하고 창백한 광채에 넘친 오솔길에서
나에게 그 이름을 알린 한 송이 꽃이었다.
전나무 숲을 통해 머리를 헝끄러뜨린
금발의 폭포에 나는 웃음을 던졌다.
은빛 나뭇가지 꼭대기에서 나는 여신을 보았다.
랭보**


내가 본 건 꽃이었다. 나는 감히 탐낼 수 없는.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두 볼을 부풀리는 어린아이처럼, 거짓말쟁이처럼. '난요... 난요...' 그 말만 되풀이했다. 그녀가 일어서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옷을 챙겨 들고 의자에 걸쳐져 있던 백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녀를 보면서도 나는 잡을 수가 없었다. 꽉 쥔 주먹 사이로 땀이 배었다. 뜨거운 공기 때문이야, 여긴 너무 덥잖아, 자릴 옮겨야겠어. 나는 중얼거렸다. 자꾸만 중얼거렸다.


그만큼 힘들었죠 알아주길 바랬죠
버려질 마음으로 내 자신을 숨기며
사랑을 원하면서 사랑을 주지 않는
끝없이 차고 기우는
저 달과 같은 모습으로
<짙은 -Moon>




**랭보 <새벽 aube 역자 이준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