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라이크의 용기
가장 쉽게 누를 수 있는 버튼은 “좋아요”다.
하지만 가장 말하기 어려운 말은 “좋아해요”다.
우린 매일 ‘좋아요’를 누르며 살아가지만,
정작 누군가의 눈을 마주 보고 “좋아해요”라고 말하긴 망설인다.
괜히 오해받을까 봐, 가벼워 보일까 봐,
혹은 너무 진심이 들킬까 봐.
그래서 우리는 ‘좋아요’에 숨어 버렸다.
안전하고, 무해하고, 감정이 덜 드러나는 방식으로.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숨어 있던 감정을 꺼내어 말하고 싶다.
“좋아해요.”
그 말에는 부담이 없고, 계산도 없다.
그저 따뜻한 마음의 체온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학교 행사, 졸업식, 교회 예배, 어버이날, 스승의 날.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말은 늘 어딘가 의례적인 감정 교육의 일부였다.
그러나 ‘좋아해’라는 말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좋아함은 사적인 감정이었고,
누가 대신 알려줄 수도, 평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랑은 배운 언어,
좋아함은 발견한 언어다.
그래서 ‘좋아해’는 훨씬 더 어렵다.
그건 가르쳐진 말이 아니라,
마음이 직접 배운 말이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건,
세상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첫 문장이다.
“오늘 네가 한 말이 참 좋았어.”
“이 노래 들으면 네 생각이 나.”
“그 카페, 너랑 갔던 자리 아직 기억나.”
“오늘 표정, 왠지 괜찮아 보여.”
“그 말 듣고 나 기분 좋아졌어.”
이런 말들은 대단하지 않지만,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다리다.
좋아함을 표현한다는 건
상대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불빛 하나를 켜는 일이다.
그 불빛은 화려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충분히 따뜻하게 만든다.
이건 사랑을 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아해요’라는 말 하나로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연습을 하자는 제안이다.
그 작은 용기가,
우리를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한 회원이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말했다.
“쌤, 사실 매번 카톡 보내려다 말아요.
괜히 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땐 그냥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 한 줄이면 충분해요.
그 한 줄이 사람을 하루 종일 따뜻하게 해요.”
며칠 뒤, 그녀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쌤, 오늘은 몸도 마음도 다 풀렸어요.
이 개운함이 너무 좋아요.
필라테스도, 쌤도, 다 좋아요.”
또 다른 회원은 퇴근길에 커피와 김밥 두 줄을 포장해 왔다.
“쌤, 그냥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엔
수많은 마음의 결이 숨어 있었다.
“오늘 수업 좋았어요.”
“오늘은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쌤이 있어서, 오늘 하루가 덜 외로웠어요.”
그건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다정한 제스처였다.
좋아함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커피 한 잔, 짧은 메모, 고개 끄덕임 하나
그 모든 건 “좋아해”의 또 다른 언어다.
타지로 이사 간 뒤, 한동안 연락이 없던 회원에게서 톡이 왔다.
“쌤, 근처에 일 보러 왔다가…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이건 ‘좋아해요’라고 직접 말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한 마음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내려놓고, 잠깐 웃으며 말했다.
“이 공간이 그리웠어요. “
그 순간 깨달았다.
좋아함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관계가 끝났어도, 마음이 한 번 닿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좋아한다는 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 자격을 얻는 일이다.
좋아함은 화려한 말보다, 짧은 온도로 존재한다.
메시지 한 줄, 커피 한 잔, 잠깐의 방문,
그 작은 따뜻함들이 세상을 다시 작동시킨다.
‘좋아해요’는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문장이다.
좋아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힘을
이 능력이 높을수록 관계가 건강하고,
마음의 회복력도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주 느낀다.
좋아요 하나 누르는 일조차
많은 이들에게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댓글 달아도 될까요?”
“좋아요 누르면 너무 티 날까 봐 그냥 지나쳤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새삼 놀란다.
좋아요 하나, 댓글 한 줄이
이렇게까지 감정의 허들이 될 줄은 몰랐다.
한 번은 단골식당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사실 요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 SNS 글에 좋아요 누르려다가
괜히 오해 살까 봐 못 눌렀어요.
그냥 조용히 보고만 있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게
그 사람에겐 고백 같았던 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아요. 좋아요는 부담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좋아한다는 건, 오해를 감수하는 다정함이죠.”
그때 깨달았다.
좋아요를 누르는 건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행위라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면
확실히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좋아함의 표현은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진심을 드러내는 연습이다.
좋아함은 감정의 용기이자,
누군가를 향한 가벼운 신뢰의 첫 문장이다.
그 문장이 오가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참된 삶은 ‘나–너’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가 말한 ‘나–너’의 관계란,
서로를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재로 만나는 일을 뜻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상대방’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 ‘비교의 기준’으로 바라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부버는 말했다.
“진짜 만남은, 내가 너를 이용하지 않고 단지 너로 존재하게 둘 때 시작된다.”
그 말은 결국 ‘좋아해’의 철학과 닿아 있다.
사랑이 결속이라면,
좋아함은 존재의 승인이다.
좋아한다는 말속에는
“너는 네 자리에서 괜찮아.”
“나는 너를 바꾸려 하지 않아.”
라는 조용한 합의가 숨어 있다.
좋아함의 예의란,
함께 머물되 간섭하지 않는 것.
그것이 관계의 첫 합의이자,
가장 아름다운 거리감이다.
시인 김현승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랑은 타오름이지만, 좋아함은 남음이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불꽃은 한순간 화려하게 타오르지만,
불빛은 오래도록 머문다.
좋아함은 불꽃이 아니라 불빛이다.
불빛은 타지 않아도,
밤의 방향을 잃게 하지 않는다.
좋아함은 마음이 지치지 않는 감정의 체온이다.
그건 격정보다 여운이고,
소유보다 존중이며,
말보다 지속이다.
결국 좋아함이란
서로의 온기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이다.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그 빛은 오래 남아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좋아함은 배우면 자란다.
작고 구체적인 행동부터 시작해 보자.
1. 오늘 하루, 한 사람에게 ‘좋아요’ 한 줄 남기기
• 문자, 메모, 눈빛, 혹은 이모티콘 하나라도 괜찮아요.
• 말하기가 부담된다면, ‘좋아해요 ‘ 대신 “라이크 ”도 좋아요.
좋아요 든, 라이크든, 결국 마음의 언어는 같으니까요.
2. 나 자신에게도 ‘좋아요’ 남기기
• “오늘 너, 잘 버텼어.”
• “오늘 커피 향 좋았지?”
• “오늘 쓴 문장, 꽤 괜찮았다.”
3. 공감으로 말하기
• “그래, 네 말이면 다 좋지.”
• “그 얘기 듣고 나도 기분 좋아졌다.”
• “오늘 분위기 좋다. 그대로 있어.”
좋아함은 그렇게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라는 감정이다.
우리는 ‘사랑합니다’는 배웠지만,
‘좋아요’는 배운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
좋아함은 진심을 작게 나누는 연습이다.
누군가에게 “좋아요”를 눌렀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에 작은 불빛 하나를 켜준다는 뜻이다.
라이크는 관계의 신호이고,
마음의 리듬이다.
사랑은 대단한 결심이지만,
라이크는 지속 가능한 온도다.
좋아함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부드럽게 드러내는 기술이다.
그 기술을 익힌 사람은
관계를 오래, 따뜻하게 지킨다.
좋아함의 용기는
감정을 크게 외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머뭇거리지 않는 태도다.
“좋아요.”
“오늘의 너, 괜찮았어.”
“그 말, 마음에 닿았어.”
그렇게 세상에 당신의 온도를 남겨 보자.
좋아함, 혹은 라이크는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품격 있고 오래가는 다정함이다.
•참고지료
¹ 김현승 (1957). 『옹이와 질긴 풀』, 청색문화사
“좋아함은 남음이다”는 시인의 사상적 표현을 의역함.
² Martin Buber (1923). 『Ich und Du (I and Thou)』
‘모든 참된 삶은 나–너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중에서 인용 및 의역.
To. <라이크를 좋아해> 독자님들께
“좋아함”으로 하루를 리부트 하는 연습
안녕하세요,
<라이크를 좋아해>를 읽어주시는 당신께 마음을 전합니다.
요즘 하루가 참 복잡하죠.
뉴스 한 줄에도 마음이 쪼그라들고, SNS를 보다가도
괜히 비교하고, 이유 없이 피곤해지는 날들.
그럴수록 우리는 마음의 버튼 하나쯤 눌러야 해요.
그게 바로 “좋아요”, 그리고 “좋아해요”예요.
<라이크를 좋아해>는 그 버튼을 다시 배우는 연습이에요.
좋아요 챌린지는 단순히 SNS의 이벤트가 아니라,
‘감정 리부트’(Emotion Reboot)의 작고 따뜻한 의식이에요.
우리가 핸드폰을 오래 쓰면
배터리가 방전되고, 화면이 버벅거리잖아요.
감정도 그래요.
사람을 좋아하고, 일에 몰두하고, 관계에 신경 쓰다 보면
우리 마음의 시스템도 어느새 과열돼 있죠.
그래서 감정 리부트란,
그 모든 걸 ‘끄고 다시 켜는’ 순간이에요.
잠깐 멈춰서, 나를 정리하고,
다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불러오는 일.
‘좋아요 챌린지’는 그 리부트의 첫 단계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내는 연습이죠.
오늘의 커피 향, 나를 반겨주는 사람,
따뜻한 햇살, 그리고 이 편지를 읽는 지금의 나까지.
“좋아해”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주는 순간,
우리 뇌에서는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신호가 살짝 피어나요.
그건 복잡한 긍정 훈련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다이어트하는 연습이에요.
불필요한 감정의 칼로리를 줄이고,
필요한 온기만 남겨두는 일.
“좋아함”은 마음의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거든요.
<라이크를 좋아해>를 통해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고,
표정이 조금 더 환해지고,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눈빛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감정은, 결국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연습이니까요.
오늘 하루,
당신이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순간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이미 감정 리부트가 시작된 거예요.
좋아함이란, 결국
우리 마음을 다시 작동시키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니까요.
당신의 하루에 ‘좋아요’ 버튼이 늘 켜져 있기를.
라이크를 좋아해,
유혜성 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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