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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감정의 업데이트 - 좋아하지 않을 권리

by 유혜성

9장 감정의 업데이트- 좋아하지 않을 권리


좋아한다는 건 ‘머무름’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건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이 살짝 멈칫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좋아함’을

하나의 상태, 하나의 고정된 감정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좋아함은 늘 움직인다.

반응하고, 흔들리고, 어느 날은 갑자기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면 우리는 다시 그 노래를 찾아 재생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 쪽으로 걸어가고,

어떤 일을 좋아하면 피곤한 몸을 끌고라도 책상 앞에 앉는다.


그 모든 작은 움직임이 말해준다.

좋아함은 ‘정지된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는 방향성 있는 에너지라는 걸.


그렇다면 어느 날,

그 좋아함이 더 이상 우리를 움직이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감정이 죽은 걸까?

관심이 식은 걸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니다.

그건 감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업데이트된 것이다.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다른 자리를 찾고,

다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좋아하지 않을 권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실도, 후퇴도, 실패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다음 계절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좋아하지 않는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건 감정이 멈춘 것이 아니라

감정이 자란 것이다.


감정의 수명, 그리고 ‘형태 변화의 법칙’


모든 감정에는 수명이 있다.

처음엔 심장을 흔들던 음악이

어느 날엔 그저 배경음처럼 흘러가고,

매일 찾던 카페의 커피가

어느 순간 익숙함의 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를 바꿀 뿐이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은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으로, 습관으로, 태도로 변한다.”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 원리>(1890) ¹


제임스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간단하다.

감정은 어떤 한 장면에만 붙어 있는 ‘붙임딱지’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의 빛깔, 몸의 습관, 삶의 태도로

층위를 옮겨 가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처음엔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던 감정이

어느 날엔 “그땐 그랬지” 하고 미소 짓게 하는 기억이 되고,

매일 반복하던 작은 설렘이

어느새 내 일상의 루틴, 태도가 되어버리는 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갑자기 어떤 것에 시들해지는 순간은

감정이 죽은 게 아니라,

감정이 다른 자리로 이주한 순간이다.


좋아함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나는 예전엔 그게 너무 좋았는데…”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예전엔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손이 안 가.”


낯설지 않은 말이다.


한때는 매일 찾던 카페였는데

이제는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고,

밤새 듣던 노래가

지금은 그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처럼만 느껴진다.

미친 듯 좋아하던 드라마·책·취미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톡 건드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이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변한 걸까?’

‘나, 너무 쉽게 식는 사람인가?’


마치 내가 변해서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변화는 결함이 아니라 성장이다.


감정은 나와 함께 자란다.

달라진 나에게 맞춰

감정도 새로운 자리와 역할을 찾는다.


예전의 좋아함을 떠난 것은

그 감정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이 그때의 나를 충분히 지켜준 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도울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좋아함은

이제 특정 카페나 노래, 한 권의 책 안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취향, 내 삶의 선택,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태도 속으로

형태를 바꾸어 들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함은 ‘고정’이 아니라 ‘진화’다.


좋아함의 변화는 끝이 아니라

감정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신호다.


좋아하지 않음은

그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감정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사례 1 - 잠시 손을 놓은 취미


한 회원이 어느 날 말했다.


“선생님… 요즘은 그림이 너무 지루해요.

예전엔 새벽까지 그릴만큼 좋았는데,

요즘은 연필을 들기만 해도 피곤해요.”


그녀는 피아노도 좋아했다.

퇴근 후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자기만의 작은 축제였던 사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건반을 마주하는 일조차 의무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좋아함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계속 붙잡고 있으면 감정이 스스로 지쳐버려요.

쉬어야 다시 그리워져요.”


몇 달 뒤 그녀는 다시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신기하죠?

갑자기 피아노도 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다시 그리워졌어요.”


취미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다만 잠시 쉬고 있었을 뿐이다.


좋아함을 오래 지키는 사람은

좋아함이 잠시 물러나 있을 공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좋아함의 휴식기는

감정이 식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다시 타오를 발화점을 만드는 시간이다.



심리학적 이해 - 감정적 자원의 소진 ¹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감정적 에너지 소진(Emotional Depletion)‘이라 부른다.


좋아함도 에너지를 쓴다.

우리는 몰입하는 동안

집중력, 설렘, 기대 같은 심리 자원을 꾸준히 소모한다.


그래서 한 감정에 오래 머무르면

그 감정이 스스로를 태워버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억지가 아니라

잠시 멈춤, 즉 업데이트다.


그림과 피아노를 내려놓았던 그녀도

취미를 버린 게 아니라

감정 자원이 잠시 바닥났던 것이다.

충전이 끝나자

좋아함은 다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사례 2 - 책장에서 다시 꺼낸 한 권


한때 손에서 떨어지지 않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다.


책은 그대로인데

나는 달라져 있다.


예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던 문장은

이제는 밋밋하게 느껴지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구절은

갑자기 마음속 깊이 들어온다.


그럴 때 깨닫는다.

좋아함이 사라진 게 아니라

변한 것은 ‘나’라는 사실.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던 앱이

업데이트 알림을 띄우듯,

감정도 때때로

새 버전으로 갱신될 시간이 필요하다.


문학적 시선 - 감정의 이주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³에서 말하듯,

사랑은 반복을 두려워하지만

삶은 반복을 통해 지속된다.


좋아함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계속 좋아하려면

그 ‘같음’을 다른 빛으로 비추어야 한다.


감정의 업데이트란

똑같은 사람, 같은 하루, 같은 사물을

다른 계절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기 때문에

좋아함도 함께 이동한다.


철학적 해석 - 좋아하지 않을 용기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반복되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⁴


좋아하지 않을 용기란

반복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일이다.

지루함이 아니라

감정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감정의 세계에서 ‘끝’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 새로운 호흡의 시작이다.


좋아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할 때

좋아함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사례 3 - 변한 향기, 변한 취향


내 친구는 어느 날

10년 넘게 모아 온 향수를 모두 정리했다.


“왜?” 하고 묻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젠 답답해.

그 향기를 좋아하던 내 나이가… 지난 것 같아.”


그 말은 조금 슬펐지만

동시에 아주 아름다웠다.

그건 상실이 아니라

자기 갱신의 선언이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요즘은 아무 향도 없는… 그냥 공기 냄새가 좋아. “


좋아함의 끝은 언제나

비움의 형태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공기가 들어온다.


관계에 대한 통찰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관계도 감정처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예전처럼 매일 연락하지 않는다고

그 관계가 멀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넓고 편안한 형태로

자라는 중일 수 있다.


어린 시절 매일 함께 지내던 친구가

어른이 되어

일 년에 한 번만 만나도 편안한 것처럼.


그 변화는 거리감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이다.


관계의 감정 역시

그 나름의 속도로 업데이트된다.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자

관계의 지휘자다.


실천 루틴 - 감정 업데이트 노트


오늘, 딱 세 줄만 적어보자.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 기록이

마음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갱신 버튼’이 될 것이다.


1. 예전만큼 좋지 않은 것

요즘 손이 잘 가지 않는 것, 예전 같지 않은 것 하나를 적어본다.


왜일까?

– 소진 때문일 수도 있고

– 내가 성장해서 달라진 기준 때문일 수도 있고

– 관심이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 것일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문장:

“손이 떠났어도, 그건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긴 것뿐이다. “


2. 요즘 새롭게 좋아진 것

요즘 마음이 가는 것, 사소하게 끌리는 것 하나를 적는다.


어떤 감정의 흔적을 닮았지?

– 오래전에 좋아하던 것의 ‘미세한 잔향’ 일 수도 있고

– 새로운 시작 앞에서 생긴 ‘작은 설렘’ 일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문장:

“새로운 좋아함은, 대부분 아주 작은 변화에서 태어난다.”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된다.

좋아함은 언제나 미세한 흔들림에서 시작된다.


3.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지금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괜찮은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해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의 끝은 ‘종료’가 아니라

내 삶의 다음 챕터를 쓰기 위한 공백기이기 때문.


기억해야 할 문장:

“좋아하지 않을 권리를 허락할 때, 감정은 억압에서 풀려난다.”


감정은 억지로 붙들지 않아야

자기 리듬을 되찾고

다시 나를 데리고 앞으로 움직인다.


라이크 노트 - 혜성쌤의 감정 수업


좋아함의 품격은

끝까지 붙잡는 힘이 아니라,

필요할 때 놓아줄 수 있는 힘에 있다.


감정을 비워야

새로운 감정이 들어온다.

이건 상실이 아니라

감정의 호흡이 다시 깊어지는 과정이다.


좋아하지 않을 권리는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갱신하는 것이다.


감정의 흐름을 신뢰하라.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남의 과정이다.


당신의 감정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



더 단단하고, 더 여운 있게


좋아함도 언젠가 식는다.

그러나 그 식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계절로 이동하는 감정의 변화다.


예전처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서운해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감정은 멈추지 않고,

늘 나와 함께 성장하는 생물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고백해도 된다.

조금 낯설고, 조금 두렵고, 그러나 누구보다 진실하게.


“나는 이제 이것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아.

그 변화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


이 한 문장은

감정의 성숙이며,

좋아함의 자유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권리,


좋아하지 않을 권리다.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그 괜찮음 속에서

당신의 마음은 다시,

새로운 좋아함을 향해

고요히 이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참고문헌 및 각주


1.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2. 로이 F. 바우미스터 & 존 티어니, 《의지력》(Willpower, 2011)

3.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4.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 1878)


각주

¹ 감정적 에너지 소진(Emotional Depletion)

로이 F. 바우미스터(Roy F. Baumeister)의

‘자기 조절 자원 소진(ego depletion)’ 이론을 기반으로 확장된 개념.

집중·감정·의지는 모두 소모성 자원이며,

지속 사용 시 흥미 저하, 감정 둔화, 의욕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로이 F. 바우미스터 & 존 티어니, 《의지력》(Willpow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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