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첫사랑:첫사랑의 반격

2장 <건축학개론〉- 서연은 왜 ’ 쌍년‘이 되었은가

by 유혜성

2장 <건축학개론〉 - “그 쌍년이 나야?”


“첫사랑의 반격은

내 이름을,

내 서사로 다시 부르는 일이다 “ _By유혜성



첫사랑,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할까


건축사 사무소 문이 열리고,

오랜만에 나타난 첫사랑이 이렇게 말한다.


“저… 집 하나 지어줄 수 있어요?”


2012년 개봉작 〈건축학개론〉(이용주 감독)은

스무 살의 설렘과

서른다섯의 쓸쓸한 현실이

한 채의 집을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영화다.


건축가 승민과

그의 첫사랑 서연.

이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제주도의 낡은 집,

그리고 그 집을 다시 짓는 설계도 위에

겹겹이 포개어 올린다.

잠깐, 이 영화 이야기


〈건축학개론〉은

스무 살의 과거와 서른다섯의 현재가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중심으로

교차하는 구조의 영화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승민과 서연은

같은 동네에 살며

조심스럽게 가까워진다.


지하철역을 함께 걸어 올라가고,

비 오는 날 폐가에 숨어들고,

이어폰을 나눠 끼며

말보다 많은 감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고백은 어긋나고,

오해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

눈 오는 날,

승민은 혼자 약속 장소를 떠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연락이 끊긴다.


15년 뒤,

건축가가 된 승민 앞에

서연이 다시 나타난다.


“저… 집 하나 지어줄 수 있어요?”


그 집은

서연의 아픈 아버지가 살던 제주도의 집이고,

그녀가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기 위해

끝내 마주해야 했던 공간이다.


이 영화는

그 집을 다시 짓는 과정을 통해

첫사랑이 어떻게 기억되었고,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현재형으로 되묻는다.


1. 왜 이 영화는 우리를 이렇게 오래 붙잡았을까


이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유난히 깊게 박힌 이유는

단지 ‘첫사랑 감성’ 때문만은 아니다.


90년대 초 캠퍼스의 공기,

워크맨과 CD플레이어,

집 전화기의 벨 소리,

잘못 걸었다가 다시 거는

용기 없는 전화.


이 모든 것이

‘첫사랑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내가 살았던 시대’를 함께 불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첫사랑 이야기를 빌려

집단 기억을 건드린다.

그 순간, 첫사랑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나의 청춘 서사가 된다.


2. “오빠 스무 살 때, 어떤 쌍년이 있었다며?”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이 대사에서 시작된다.


“오빠 스무 살 때,

어떤 쌍년이 있었다며?”


승민이 술김에 흘렸던 말은

어느새 요약되고,

왜곡되고,

현재의 연인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말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


“그 쌍년이… 나야?”


여기서 중요한 건

욕설 그 자체가 아니다.

첫사랑의 대상이

어떻게 ‘요약되는가’다.


스무 살의 승민에게 서연은

말 한 번 제대로 못 붙여본

숨 막히게 좋았던 첫사랑이었지만,


서른다섯의 승민에게 그 기억은

“나를 상처 준 여자”로 압축되고,

그 압축된 기억은

욕 하나로 정리된다.


누군가의 첫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귀에는

욕으로 처리된 과거의 여자가 될 때,

그 사람의 삶과 맥락은

그 순간 통째로 잘려나간다.


3. 서연에게는 아무 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서른다섯의 서연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녀는 이혼했고,

아버지를 돌봐야 했고,

제주도의 낡은 집을

혼자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서연에게는

아무 일도 없지 않았다.

다만 그 일들은

승민의 기억 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쌍년”이라는 말은

첫사랑에 대한 욕설이 아니라,

서연이 살아온 삶 전체를

너무 쉽게 축소해 버리는 말이 된다.


“그 쌍년이 나야?”라는 대사는

사실 이렇게도 들린다.


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거야?


4. 첫사랑의 대상에게도 서사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이 영화를

짝사랑에 실패한 남자의

성장담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틀어보면

이 영화는 이렇게도 읽힌다.


누구의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 채

엉킨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기 삶의 장소를

다시 찾으러 온 여자.


서연은

전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형 인물이다.


실패했고,

이혼했고,

집을 고치러 온 한 사람이다.


그 점이

이 첫사랑 이야기를

다른 서사들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다.


5. 첫사랑의 반격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큰 주제가

‘첫사랑의 반격’이라면,

〈건축학개론〉 속 서연은

아주 조용한 첫 번째 사례다.


첫사랑의 반격은

상대방을 향한 복수가 아니라,


“나, 그때

네 기억 속에만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


라고 말하는 일이다.

<그날 이후의 이야기〉


<건축학개론> 그 후


서연:


나는 집을 고치러 간 게 아니야.

그때의 나를 고치러 간 거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침묵하던 역할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었어.


집은 완성됐고,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됐어.


승민:


나는 네가 떠난 줄 알았고,

그래서 상처받았다고 믿었어.


그 믿음으로

너를 욕으로 줄이고,

기억을 편하게 만들었지.


집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알았어.

내가 지은 건 집이 아니라

뒤늦은 사과였다는 걸.


서연과 승민:


우리는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보다

조금 더 정직해졌다.


너는

내 첫사랑이었고,

나는

그 기억을 넘어서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었던

가장 정확한 작별이었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다시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욕으로 요약되지 않을 권리는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부터가,

이 책이 이어서 쓰려는

첫사랑의 반격이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참고문헌 · 자료


1.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명필름 제작, 2012.

2. 이용주,

「영화 〈건축학개론〉 감독 인터뷰」,

씨네 21, 2012년 3월호.

3. 김영진,

「첫사랑 영화의 세대적 기억과 감정의 윤리」,

한국영화연구, 제34호, 2013.

4. 정지혜,

「기억의 서사와 여성 인물의 현재성 -<건축학개론〉을 중심으로」,

영화와 젠더, 한국영상문화학회, 2014.


※ 본 장은 영화 텍스트와 감독 인터뷰, 한국 영화비평 담론을 바탕으로 작가의 해석을 덧붙인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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