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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May 14. 2020

서울혁신파크 안에 대학교가 있습니다

[혁신파크 5주년 기념 인터뷰] #2 지식순환협동조합


수능을 보지 않아도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있다. 내신과 면접, 논술 등으로 수시입학을 노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능점수가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학력이 없어도 자기소개서와 면접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다. 이 대학에는 학점 관리에 전전긍긍하는 학생도, 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하는 학생도 없다. 이들은 오히려 기업화되고 파편화되어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린 대학 교육을 비판하며, 공감과 협력을 토대로 협력사회를 가꾸어 나갈 대안적인 삶을 모색한다. 교수와 학생이 평등하게 만나고, 학생도 학교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장려한다. 대안적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이 대학의 이름은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하 지순협)’이다.


지순협에서는 한 해 평균 35명의 학생이 재학한다. 2019년에는 22명의 학생이 논물을 써서 졸업 과정을 통과했다. 2015년 강내희 전 중앙대학교 교수를 학장으로 추대하고 혁신파크에 입주했다.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이 지순협의 교수로 선다. 대학 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는 요즘, 지순협의 활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만하다. 경쟁 사회와 경쟁 교육을 넘어 더 좋은 삶과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용기를 키워가는 2년제 대안대학의 모습은 어떠할까? 서울혁신파크에서 지순협의 강정석 사무국장을 만나보았다.




강정석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Q.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줄여서 지순협은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더 이상 개인의 성장이 불가능한 공간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우리는 취업과 스펙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경쟁 위주의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대학이 되려고 해요. 자신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나빠져 가는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도록 생각하고, 실천하고, 용기를 키우는 곳이요. 그렇기 때문에 지순협 교육과정은 사회에 대한 학습과 자기성찰을 균형 있게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Q. 대안적인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대학의 형태로 만들었을까요? 이름은 대학인데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지금의 대학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경쟁적인 대학교육의 한계를 넘어 공감과 협력을 토대로 한 교육, 협력사회를 만들어갈 대안적인 삶을 생각해보는 장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대안대학이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기존에 있는 대학과 다른 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대안’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으니까요. 지순협은 학생이 의사결정 구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특징이 있었어요. 기존 대학은 등록금을 많이 내는데도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잖아요.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여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1인 1표 의사결정 권리 구조로 되어 있는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실현원칙을 가져오기로 했어요. 일반조합원이 37명, 선생님이 60명, 학생들이 40명 정도 돼요.


Q. 실질적으로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절차가 복잡해요. 총회나 조합원 교육이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투명하게 하려면 사실 일이 많아져요. 교육과정도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서 정하죠. 그런 프로세스들을 설계하는 게 중요한 운영의 원칙이 됩니다. 처음엔 헤맸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어요.


Q. 한국 교육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을까요? 지순협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대안대학 하나가 잘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죠. 다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어요. 해결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계속 문제를 다뤄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 다뤄내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강한 신념과 해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안고 가면 벽에 부딪쳤을 때 금방 무너집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좀 더 복잡하게요. 지순협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처음에 대안대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대안학교를 만들기 전 여러 선생님을 만나 조언을 들었어요. 그때 한 선생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 주셨어요. 지역에 뿌리를 내린 대안학교들은 워낙 공동체 중심적인 삶을 사는 데다 학교와 삶의 구분이 거의 없다고 해요. 그러다 졸업하고 바로 사회를 마주하게 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는 거죠. 지순협 대안대학은 이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단지 유예시켜주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이들에게 실질적인 직업과 관련된 내용을 연결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었죠. 그 말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저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에요. 창업이나 창직을 도와주는 곳은 아니니까요.


Q. 그렇다면 지순협은 어떤 공간인가요?


쉽게 얘기하자면, 각자가 생각하는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죠. 지순협 학생들은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거예요. 정규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요. 깊은 고민을 한 끝에 온 거거든요. 앞서 말했던 진로나 직업에 대한 고민을 이런 질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삶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삶을 사게 될까, 살면서 닥치는 문제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2년 동안 공부하며 그런 고민을 깊게 하게 된다면 가지고 있는 불안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거예요. 삶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지순협을 졸업하려면 반드시 졸업논문을 써야 하는데요. 그런 것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지순협에는 대안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들이나, 중고교를 중퇴한 학생, 홈스쿨링을 한 학생, 일반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는 청년, 삶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직장인과 시민활동가가 다닌다. 다양한 학생이 모인 셈이다. 들어온 맥락은 다르지만, 그들에게 분명한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았다.


Q. 지순협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아무래도 대안학교 출신이 많아요. 대안학교에서 공부할 때 느꼈던 한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분들, 그러니까 좀 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이론’적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이곳으로 옵니다. 저희가 고등학교나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입학 설명회를 하는데, 그중에 한두 명이 들어온다고 보면 되죠. 작년부터는 일반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좀 늘었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가 ‘내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 회의가 온 학생들이요. 대학 다니다가 그만두고 온 학생들도 있어요. 올해는 현직 교사도 왔어요.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으실까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처음에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좀 힘들어했죠. 그렇지만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정치철학을 조금 더 상세하게 공부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결국 우리 학교를 졸업하며 만든 포트폴리오로 일반대학에도 합격했어요. 대안대학에서 대학으로 간 거죠. 부모님이 오히려 고마워하셨어요.


Q. 지순협의 교과과정을 꾸리는 핵심 논리가 ‘통섭’이라고 들었습니다. 교육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요?


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합하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으로만 풀어서는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업에서도 (적)노동-(녹)생태-(보라)페미니즘의 세 가지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들이 서로 얽혀서 설계되어 있어요. 그래서 통섭형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공부 분야가 나누어지지 않고 통합되어 있어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면서 학습할 수 있는 거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세계관, 사회관, 인간관의 변화를 체화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어요.


수업은 학년별로 7개씩 개설. 학기당 14개 과목이 돌아가요. 7~8학기는 졸업 학기라 수업이 없는 대신 1:1 개별 논문지도와 상담을 해요. 수업 외에도 학생들 요구에 맞춰 세미나를 진행하고요. 자본론 읽기, 칸트 순수이성비판 읽기, 역사스터디, 페미니즘, 물리학, 인지과학, 영화사 세미나 등이 있었죠.


지순협의 교육과정은 크게 '공통필수'와 '전공선택'으로 구성된다. '공통필수'는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며, '지식순환의 이념과 방법', '지식의 통섭', '워크숍'으로 꾸려진다. 워크숍은 ‘자기탐구 및 글쓰기’, ‘연기’, ‘수작워크숍’으로 구성된다. '전공선택'은 학생들이 입학할 때 선택하는 주/부전공이다. '예술인문학', '사회과학', '통합과학', '문화기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졸업할 때 논문이나 창작보고서도 이 주제로 쓰게 된다.


Q. 교과과정의 핵심내용이라고 알려진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겠어요?


노동(적)과 생태(녹), 그리고 페미니즘(보라)의 문제를 상호 교차시키는 관점을 통해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정치 문제, 기후위기 같은 생태환경이슈, 페미니즘 같은 것들이 하나로 묶여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단순히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가 사이버 성폭력 관련 기관에서 일하게 되고,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로 진출한 학생들이 많아요.


지순협은 시험이 없다. 대신 학기 말 진행되는 학예발표회를 통해 학업성취도를 확인한다. 학예발표회는 한 학기 동안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자리다. 이 과정에 교수진의 든든한 지원이 함께 있다. 지순협에는 담임 교수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담임 교수진은 발표 내용을 피드백하고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공유함으로써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해진다.


Q. 어떤 분들이 강단에 서시나요?


각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분들을 섭외하려고 노력하죠. 저희가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 섭외하게 되는데, 선생님들끼리도 상호 비판을 많이 하고 공부를 위해 세미나도 자주 여세요. 교수가 학기마다 강의계획서를 제출해서 교과위원들로부터 수정 제안을 받는 절차도 있어요. 이런 협력을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교육이 이뤄지는 거죠.


워크숍 수업의 경우에는 졸업생들이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요. 몸 수업은 졸업생 중에 퍼포먼스 팀을 만들어 활동하는 분이 가르칩니다.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가 되고,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가 되기도 하는 순환을 추구하는 것이죠.


Q. 강의가 일반 대학과 많이 다른가요?


지순협 교수님들은 일반 대학과는 완전히 다른 강의를 체험하신다고 해요. 수업이 끝나도 질문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죠. 토론도 계속하고요. 선생님이 예시를 잘못 들거나, 학생이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그것에 대해 함께 토론하기도 해요.


Q. 강의의 수준이 높아지겠네요.


대안대학이라고 학생을 보살펴주는 일만 하는 건 아니에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교과과정의 수준이 높은 편이죠. 좋은 논문이 많이 나왔어요. 미디어 이론을 활용하여 닷페이스의 콘텐츠를 분석하거나 수원 행궁동의 문화적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문도 썼어요. ‘20대 남성 현상’에 대한 비판적 연구도 있고요. 주제들이 우리 삶, 혹은 사회와 관련된 영역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어떤 학생은 정치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푸코, 데리다, 들뢰즈를 공부했고 알튀세르에게 꽂혔죠. 일본어 번역서들을 직접 구해서 읽고 포럼에서도 관련 발표를 한 적도 있었어요. 지적으로 넓어지고 확장되는 거죠.


지순협은 올해 벌써 6년 차다. 사무국장은 현재 다른 대안대학과의 네트워크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혁신파크 안에서 이뤄지는 네크워크는 없는지 궁금했다.


Q. 혁신파크 안에서도 협업 프로젝트나 네트워크를 이룬 일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이곳의 많은 단체와 협업할 계획이 있었는데 생각처럼은 잘 안 되었어요. 기억에 남는 걸 꼽아보자면 2016년 피아노숲에서 저희 조합원과 시민들이 <밀쓰콘 서당>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지순협의 여러 선생님이 삶, 경제,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시대의 고민을 나누는 장이었죠. 2019년 12월에는 <인류세의 쟁점들>이라는 주제로 강내희 학장이 오픈 강연을 하기도 했고요. ‘구르는 돌’이라는, 크리킨디센터의 책방 운영을 학생들이 맡아서 진행한 적도 있어요.


Q. 요즘 지순협의 이슈는 무엇이 있나요?


당연히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요. 6년 정도 해보니까 일반 협동조합으로는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사회적기업에서 말하는 ‘사회적’과 맥락이 달라서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지만, 향후 거기까지 나아가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교육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수정과 성찰도 이슈입니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도, 시대가 원하는 것도 계속 달라지죠. 또 조합원이면서 학생이 아닌 분들을 위한 교육도 준비하고 있어요. 후원금을 내는 회원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분들에게도 강의를 들으실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교육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테크놀로지가 교육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거든요. 중세와 현대의 거리 풍경은 달라졌지만, 교실 모습은 그대로라며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교실 풍경만 같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프로젝트 베이스러닝, 코딩학교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2020년 신입생 모집이 끝났는데, 어떤 학생들이 함께하게 되었나요?


대안학교 졸업생부터 현직 교사, 예술가 등 다양한 분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3월부터 2020년 2학기 신입생 모집을 또 진행합니다. 올해 지순협에 입학할 마지막 찬스이죠.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높다.”


<사피엔스>를 쓴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의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지순협에서라면 다르지 않을까. 이곳에서 배우고 체화한 삶의 기술은 평생 학생들을 지탱하지 않을까?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은 혁신파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협력사회’를 꿈꾸는 지순협이 지향하는 가치는 혁신파크의 그것과 결이 같았다. 강내희 학장의 말대로 지순협이 아방가르드 운동이자 새롭고 큰 교육실험이라면 지난 5년간 혁신파크에서 성장한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순협은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글 박초롱

사진 서울혁신센터 홍보문화팀


* 곧 발행되는 서울혁신파크 5주년 기념집 <미래를 만져보실래요?> 에 수록 예정인 혁신가 인터뷰입니다. 출간될 책의 내용은 본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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