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파크 5주년 기념 인터뷰] #5 금자동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에는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장난감들이 힘을 합쳐 역경을 극복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장난감이 버려지는 이유도 참 많다. 팔이 망가져서, 스프링이 튀어나와서, 새로운 장난감이 생겨서, 어른이 되었으니까.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지만 버려지는 장난감이 문제가 되는 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활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의 브렌트 벨 부회장은 버려진 장난감이 재활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말한다. 결국 주인을 잃은 장난감은 화력발전소나 열병합발전소에서 용광로에 들어가거나 땅에 묻힌다. 미세먼지를 뿜는 주범이 되거나 거의 영구적으로 썩지 않고 지구에 쌓인다. 장난감의 주원료인 플라스틱은 환경 문제의 주범이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폐기된 플라스틱은 63억 톤, 이 중 79%가 매립되거나 방치된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2050년엔 120억 톤에 달하는 폐플라스틱이 매립되거나 환경으로 유입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장난감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주범이 되다니. 버려진 장난감들의 복수인가 싶을 만큼 무서운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 지구를 구하는 영웅처럼 등장하는,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세계 최초이자 세계 유일의 기업이 있다. 장난감과 유아용품을 공유·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다. 1998년 유아·완구 재활용 사업을 위해 설립된 후 2015년 혁신파크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혁신파크 재생동은 보물창고다.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유아용품이 산더미처럼 정리되어 있다. 플라스틱 장난감과 봉제 인형, 레고와 퍼즐 뒤로 시민들이 금자동이를 통해 중고로 판매하는 유모차, 가전제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현란한 색색의 장난감 덕에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테마파크에 온 기분이 든다.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해 만든 냉장고 마그네틱을 하나 집어 든다. 손안에 꼭 들어오는 희망 하나를 가져가는 기분이다. 지구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가 궁금했다. 스스로를 혁신가, 피터팬, 꿈돌이, 가치생산자, 스토리텔러라 소개하는 박준성 대표를 만나 보았다.
Q. ‘금자동이’는 어떤 회사인가요?
저희는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이름이 ‘금자동이’다 보니까 저희를 점집으로 아는 사람도 많아요. (웃음) 무슨 무슨 동자라고 이름을 짓는 무속인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아이를 귀하게 키울 때 금이야, 옥이야 키운다고 하잖아요? 그런 생각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저희가 장난감을 재활용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단순히 버려진 장난감을 되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난감을 분해해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이용해 새로운 장난감을 만든다는 것이죠. 돈이 없어서 중고를 활용하자는 게 아닙니다. 재활용은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새로운 소비문화라고 봐야 해요.
Q.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기업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장난감을 재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구로공단이 있던 자리에서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사랑공부방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주위에 버려지는 장난감과 유아용품을 보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1998년, 유모차 10대로 시작했어요. 10만 원을 주고 산 유모차로 하루만에 100만 원을 벌었죠. 그렇게 사업이 커졌어요. 사업하다 보니 장난감으로 인한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플라스틱 제품도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재활용을 염두에 둔 제품, 한 번 소비되고 버릴 제품. 두 번째 중 가장 심각한 게 장난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사업 시작한 지 십 년 만에요.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버렸던 장난감들이 재활용되지 않고 묻히거나 태워지고 있었던 거죠.
시릴 디옹은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대기오염이 인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설명한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4만 8천 명이 대기 오염으로 조기 사망하며 이는 교통사고 사망지수보다 10배나 높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와 비슷하다. 중국과 인도에서도 오염 물질로 인해 매년 11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플라스틱을 태우면서 나오는 유해물질도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한 요소다. 그렇다면 재활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장난감은 다른 생활용품보다 재활용이 어렵다.
Q. 장난감은 왜 재활용이 어렵나요?
장난감은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요. 고무와 플라스틱, 전자기기판 등 다양한 재료가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다 분리해서 각각 재활용하면 좋겠지만 분해하는 비용이 원료비보다 더 들어요. 게다가 잘 분리해서 재활용한다고 해도 플라스틱 1kg의 가격이 50원 정도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각되거나 매립되죠. 플라스틱 문제는 생존의 문제예요. 더이상 간과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버려지는 장난감이 한 해에 240만 톤입니다. 10년 더 장난감을 버리면 우리나라는 쓰레기로 쌓일 겁니다.
Q. 이렇게 재활용이 어려운 장난감, 금자동이에서는 어떤 해결책을 찾으셨나요?
금자동이의 주요 활동은 장난감 재활용과 중고품 판매, 장난감 학교 '쓸모'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먼저 장난감을 수거해서 분류하고 처리하는 재활용 작업을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장난감이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운데 분해를 하면 어쨌거나 재활용이 가능해져요. 판매 가능한 것은 중고로 판매하고, 판매가 어려운 건 색깔별 부품별로 분류해서 장난감 재료로 만들어요. 이런 부속품으로 새로운 장난감을 탄생시키는 것이 장난감학교 ‘쓸모’에서 하는 일입니다. 환경 교육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10년 동안 총 40만 명 정도의 아이와 학부모님들이 참여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장난감 조각들을 판매도 하고 있어요. 교사 연수 과정을 수강한 교사들에게는 kg당 10,000원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공급해 드려요. 버려질 장난감이 되살아나는 스토리를 혁신파크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장난감학교 ‘쓸모’는 장난감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으로 새로운 장난감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장난감의 ‘대변신’이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가족들, 노인층에서도 장난감 놀이를 좋아했다.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정도다. 2013년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심리치료에, 같은 해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조와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자 심리치유 박람회에서도 수업을 진행했다. 박 대표는 장난감 특유의 따뜻한 성질이 장난감을 만지는 사람의 가슴을 열게 하고 몰입하게 한다고 말했다.
Q. 금자동이 매장에 가면 주민들이 파는 물건도 만날 수 있던데요?
‘모두의 샵’이라는 공유매장을 만들었어요. 지역 주민이 장난감만 공유할 게 아니라 생활용품도 공유했으면 싶어서요. 저희가 위탁형태로 대신 판매해드리고 판매 금액의 70%를 드리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물건을 파는 것이다 보니 깨끗하게 정돈해서 가져오시더라고요. 판매하는 시민에게도 이익이 되고 중간판매자인 저희도 자립할 수 있어요. 실험적으로 해보았는데 지금은 안착이 되었습니다. 모두의 샵은 혁신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실험이었어요. 혁신파크의 성과물인 거죠.
박 대표는 혁신파크의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장난감 업사이클링 작품 전시회, 2016년 빤짝놀이터의 ‘어린이 벼룩시장’, 2017년 ‘내 맘대로 놀이터’, 2018년 극장동에서 열린 ‘미혼모 자립기금 마련 바자회’, 2019년 FAN5의 팹시티 캠퍼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제작워크숍 등 혁신파크의 내로라 하는 프로젝트에는 늘 금자동이가 함께했다. 덕분에 혁신파크도 빛이 났다.
Q. 혁신파크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시다면요?
처음에 이곳은 고립된 섬 같았어요. 질병관리본부 시절 기억 때문인지 시민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죠. 그런 이미지를 깬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은평구 엄마들만 1만 6천 명이 모인 커뮤니티 ‘은평맘 톡톡’하고 장난감 재활용 프로그램이죠. 어린이 플리마켓도 운영했고요.
당시에 운영 원칙이 있었어요. 시민을 끌고 가지는 않겠다는 거죠. 엄마들이 와서 회의를 하시면 저는 뒤에서 힘쓰는 일만 도와드렸어요. 시민이 주도가 되었다는 게 의미가 있었죠. 사실 플리마켓이라고 하면 행사 치르듯이, 일 하듯이 하잖아요. 대안학교나 공동육아 진영 아니면 시민이 직접 주도하는 행사는 많지 않죠. 그런 걸 만들어 낸 경험이 좋았어요.
Q. 장난감학교 ‘쓸모’도 40만 명이 다녀갔을 만큼 유명하다고 하고요. 경제적자립이 될까요?
쓸모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실 돈만 생각하면 이 일을 유지하기 힘들죠. 장난감 재활용하며 난 수익으로 적자를 보충하며 유지해왔어요. 장난감 재활용 사업을 소자본 창업처럼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렇게 버려진 장난감을 확보하고 보관하는 것은 큰일이거든요. 돈도 많이 들어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려면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식도 있어야 하고요.
Q. 사업하시면서 고민이 되는 점도 생기시겠어요.
음...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 저희 같은 사람들의 동력은 무한한 상상력을 외적으로 표현해 내는 힘이거든요. 그런데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게 힘들죠. 여유가 있겠습니까. 사회적 기업가들이?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려고 하는데요. 힘든 일이죠. 저는 사회적기업가가 기업가로 불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러라고 불려야죠. 실현가능한 꿈을 꾸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요. 숫자로 환산되는 수익 말고 다른 가치를 인정해주는 평가의 도구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만들었다고 믿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훌륭한 단체들이 혁신파크에서 결과물을 많이 냈어요. 불특정 다수가 혁신파크 이제까지 뭐 했냐, 뭔가 보여줘야하지 않냐 물으면 자존심이 상하죠.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 활동이 겉으로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다 읽지도 못할 만큼 많은 아카이빙을 보여주고 싶어요.
Q. 금자동이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러 같습니다.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경험을 하나 소개해주시겠어요?
저희에게는 기부나무가 있어요. 팔기 애매한 것들을 가져와서 넣고, 필요한 것들은 가져가는 겁니다. 다만 여기에 이야기를 담죠. ‘내가 신혼 때 쓰던 여행 가방입니다. 지금은 더 큰 게 있어서 내놓습니다.’ 이렇게요. 공유나 나눔, 순환은 물건만 판매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스토리가 함께 전달이 되었을 때 물건의 소중함을 시민들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자동이가 서울혁신파크와 함께 한 지도 벌써 5년이다. 금자동이는 1998년 창업해 2013년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지만 혁신파크에 오기 전에는 재정적으로 어렵고, 심리적으로도 번아웃 상태였다. 장난감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혁신파크에 들어오며 금자동이는 변했다. 새로운 일을 꿈꿀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대표는 혁신파크 공간이 금자동이를 치유하고 성장시켰다고 믿는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장난감 재활용 사업의 특성상 넓은 공간을 찾아 외곽으로 가다보니 고립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과거와 달랐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지 않아도 혁신가들과 함께 모여 있으면 안정감도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만큼 혁신파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Q.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트루’라는 환경 운동 단체를 만들었어요. 토이 리사이클 유니온이에요. 소형복합플라스틱 장난감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환경교육을 하고 빈민지역에 장난감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NGO가 되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을 좀 더 잘할 수 있어요. 사회적기업 방식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을 사회 운동으로 보완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을 저희 활동에 참여시키고 싶습니다. 참여자들은 우리와 함께 하는 환경운동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요. 트루에서 세컨라이프 토이 팩토리라는 장난감 재활용 공장도 만들 예정이에요. 모토가 ‘장난감은 장난감 답게’입니다. 장난감은 아이들 사랑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버려지더라도 사랑과 추억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죠. 그런 것들이 쓰레기장으로 가는 건 옳지 않아요. 그 안에 사랑과 꿈, 희망을 추출해 장난감이 필요한 데로 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처럼요. 재미있고 신비로운 일이겠죠? (어떻게 회원이 되나요?) 월 만 원 이상만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장난감을 가져갈 수 있는 장난감 오픈데이에도 참여할 수 있고요.
Q. 사회적기업가로서는 중견에 접어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이제 사회적기업에 뛰어들려하는 청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선배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면서도 정당하게 자기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눈 위에서 함부로 비틀거리며 걷지 말라고요. 사회적기업에서 저희가 벌써 중견이잖아요. 똑바로 걸어야죠. 제가 혁신파크에서 걷는 발걸음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습니다.
장난감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다음편이 나온다면 아마 ‘재활용 장난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모델이 금자동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기업가에겐 수치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박 대표의 말을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혁신파크가 배경이 되고 금자동이의 재활용 장난감이 주인공이 된다. 플라스틱 재활용 장난감이 지구를 지킬 수도 있으리라. 금자동이가 그런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 ㅣ박초롱
사진 ㅣ서울혁신센터 홍보문화팀